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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만델라 이후에도 인종차별은 살아 있었다

"믹스! 너 공사장에서 백인 본 적 있냐?"

"아니"

"그럼 주차요원 중에는? 아님 청소부, 경비원, 구걸하는 사람…, 아무튼 3D 업종 중에서."

"3D가 뭔데?"

"Dirty, Difficult, Dangerous에 해당하는 험한 일을 뜻하잖아."

"못 본 거 같은데."

"그렇지? 죄다 흑인이지. 왜 그럴까?"

"그야 흑인이 많으니까 그렇지. 남아공 인구의 80% 이상이 흑인이잖아. 신문사에서 일한 놈이 그것도 몰라?"

"근데 왜 호텔이나 레스토랑 사장, 좋은 차 주인은 몽땅 백인이지? 네 말대로 흑인이 다수면 그 중에 잘사는 사람도 많아야 하잖아?"

"유빈! 그게 뭐가 대수라고 발끈 하냐? 라디오 볼륨이나 높여봐. Bloody hell, bloody hell, blah blah…."

희망봉이 있는 케이프반도 끝자락. 이곳에서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난다.

애초 기대하지 않았지만, 녀석의 성의 없는 대답에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케이프타운 숙소에서 만난 호주 청년 믹스. 동갑내기 그 역시 '나 홀로 여행자'다. 죽이 잘 맞았던지라 우리는 곧잘 함께 여행하곤 했다.

그 날은 차를 빌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케이프타운에서 느낀 바, 구체적으로 '흑인과 백인의 관계'에 대해 백인인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영어 사전을 뒤적이며 준비했건만, 그와의 토론은 이렇듯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심통이 나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케이프타운에서 보냈던 지난날이 머리를 스쳤다.

일주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아래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그 즈음 내 심신 상태는 만신창이였다. 여행 끝자락의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중동과 이집트 여행에 쏟은 탓이다. 하필 마지막 여정지가 오지 중에 오지로 꼽히는 남부 아프리카라니. 무뎌진 여행자의 촉수는 벼린들 벼려질까나.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근심과 걱정, 무기력 사이로 언뜻언뜻 다른 성격의 감정이 비친다. 딱 꼬집어 설명하긴 힘들지만, 일종의 설렘 같은 거다. 두근거리고 흥분되는 그런 감정 말이다. 이 복잡함의 실체는 뭔가.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아프리카'였다.

'아, 프, 리, 카', 이 넉자를 되뇔 때면 내 안에 서로 다른 감정이 충돌한다. 오랜 식민통치로 말미암아 '홀로서기'가 서툰 검은 대륙은 기아와 질병, 내전까지 더해져 지구촌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더디다. 문명과 거리를 둔 만큼 소심한 여행자에게 이곳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고운 모래로 유명한 캠스베이.

반면 수천 종의 동식물이 천연 그대로 보존된 생태계, 디지털 세상 속 아날로그 삶을 사는 아프리카 원주민 등 오직 아프리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인류·생태학의 가치를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듯 벅차오른다.

양면의 감정을 끌어안은 채 발을 디딘 케이프타운은 남부 아프리카의 관문이다. 백인의 오랜 지배를 말해주듯 도처에 유럽 색채가 짙다.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본격적으로 남부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각국 비자부터 교통편 마련까지 생각보다 준비할 사항이 많다. 뜻하지 않게 체류일이 길어진 김에, 나는 케이프타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년에 월드컵을 개최하는 남아공은 지금 축구 열기로 뜨겁다. 전역에서 경기장, 숙소 등 인프라를 다지는 일이 한창이다. 케이프타운 국제공항 청사에선 월드컵 성공개최를 염원하는 입간판이 제일 먼저 관광객을 맞는다. 도심 곳곳에서도 이런저런 월드컵 관련 공사가 분주하게 진행 중이다.

내가 눈여겨 본 것은 공사현장의 인부다. 뙤약볕 아래 마른땀을 흘리는 이들 중 백인은 없다. 하나같이 흑인이다. 물론 전체인구의 84%가 흑인인 까닭에, 그만큼 흑인노동자가 많을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성립하려면, 화이트칼라 집단에도 흑인이 많아야 하는데 이건 또 그렇지 않다. 마치 흑인과 백인 사이에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사현장의 인부나 주차요원, 식당종업원, 환경미화원, 사설경비원 등 이른바 3D업종 종사자는 어김없이 흑인인 반면 이들을 부리는 윗선은 죄다 백인이란 얘기다. 적어도 내가 본 현실은 한 번도 이 공식을 벗어난 적이 없다.

케이프 반도의 펭귄섬.


역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떠올릴 수밖에. 남아공의 극단적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1948~1994년 사이 유색인종을 합법적으로 옥죄기 위해 시행된 악법이다.

1652년 네덜란드계 동인도회사를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패권주의 야욕에 사로잡힌 서구인이 앞 다퉈 남아공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유색인종을 탄압했다.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수 백 년 간 이어져 온 차별은 20세기 들어 아파르트헤이트란 이름으로 제도화됐다. 이 시기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참정권 부정', '이인종간 혼인금지', '거주이전의 제한' 등의 사슬에 묶여야 했다. 노예제도가 성행했던 '고릿적' 얘기가 아니다. 우주선이 은하계를 누비던 최근의 일이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기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집권한 후 많은 이들이 희망에 들떴다. 그들의 바람처럼 분명 남아공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오후 6시면 집 밖 통행이 금지됐던 흑인들은 이제 밤늦도록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극소수지만 백인들의 전유물이던 고급주택에도 흑인 거주자가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애석하게도 변화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아직도 남아공에서 흑백의 역할과 지위는 분명한 경계선 하에 놓여있다. 360년 간 사회전반을 장악해온 악습이 15년 만에 근절되기란 힘든 일일 터.

테이블마운틴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의 전경.


문제는 남아공의 변화를 저해하는 게 비단 시간 따위의 물리적 요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시기, 백인의 절반가량이 흑인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남아공을 떠났다. 현재 거주하는 백인들은 특정 지역을 요새화, 여전히 그들만의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악명 높던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를 명확하게 단죄하지 못한 것 역시 변화를 방해하는 요소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와 화합을 위한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헤이! 유빈!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거야? 이제 다 왔다고."

믹스가 퉁을 놓는 바람에 나는 회상의 장막을 걷어야 했다. 눈앞에 희망봉이 펼쳐져 있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 15세기 포르투갈 항해자가 이곳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이름 붙였단다.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길목인 이곳은 식민지 건설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거점이었다. 그들에겐 '희망'이었을지언정,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엔 '절망'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희망봉은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이다. 케이프 포인트에 올라 그들의 조우를 가만히 지켜본다. 두 바다는 소리 없이 몸을 섞는다.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물 색깔이나 지류의 배경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나 보다. 피부색으로 인종을 나누고, 국가의 배경을 따져가며 섞이지 못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입맛이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