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구별 누비기

결국 인도에서 사기를 당했다

"너 인도 가거든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라. 워낙 땅덩어리도 넓고, 사람도 많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더라. 특히 사기꾼 조심하고."

세계 일주를 시작하기 전, 인도를 여행했던 친구가 충고했다. 당시 나는 녀석에게 "너처럼 어수룩한 애들이나 사기를 당한다"며 퉁을 놓았다.

맙소사! 인도 땅에 발을 딛자마자 사기를 당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극(?)은 인도와 네팔의 국경 도시, 소나울리에서 발생했다. 네팔 여행을 마치고 인도의 바라나시로 향하던 중 '그'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이다.

양국 국경에서 바라나시로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타야 한다. 여행자 대부분은 기차를 택한다. 쾌적하고 빠른데다 안전하기 때문. 다만, 기차는, 당일 예매가 안 돼, 국경 근처에서 하루를 지내야 한다.

10억 인구의 인도에는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진 속 인파 속에는 분명히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 한 단면으로 전체를 판단하기엔 인도는 너무도 넓고 큰 나라다.

반면 현지인이 이용하는 이른바 '로컬버스'는 잦은 정차와 연착, 낙후된 시설로 여행자가 피하는 교통수단이다. 특히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에서 10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은 고생을 자초하는 일이다. 돈만 내면 바로 탈 수 있다는 장점은 이 같은 단점들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10억 다민족 국가 인도…혹독한 신고식

출입국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인도 땅을 밟았다. 그때 '그'가 다가왔다. 상냥한 목소리로 합장을 한 채 '나마스떼'(두 손을 모은 채 하는 인도의 인사말)를 외치는 '그'. 온화한 표정, 순박한 눈빛, 말쑥한 차림, 유창한 영어, 한눈에 호감을 주는 인상이다. 담소 끝에 '그'가 말했다.

"기차 타려면 여기서 하루 묵어야 하는데, 시간이랑 돈이 아깝지 않아요? 제가 여행사를 하는데 외국인을 위한 관광버스가 있어요. 로컬버스보단 조금 비싸지만 시설이 끝내줘요. 정차 없이 한 번에 바라나시로 가기 때문에 10시간도 안 걸려요. 지금 몇 자리 안 남았는데 빨리 예약하면 탈 수 있어요."

이미 경계를 풀어 제친 나는 순순히 '그'의 뒤를 쫓았다. 골목골목을 누빈 끝에 허름한 사무소에 당도했다. 무허가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그곳에는 변변한 간판조차 없다. 마음 한 편에서 '의심'이라는 여행자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할 즈음, '그'가 결정타를 날렸다.

최신시설의 버스 사진이 박힌 티켓을 눈앞에 내밀더니 친절히 좌석번호를 확인해 준 것. 인도정부의 사업자 허가번호는 물론 차량보험 인증서까지 첨부된 티켓 앞에 모든 의혹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길로 나는 로컬버스의 4배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표를 샀다. 부담스러운 비용이었지만, 기차를 타고자 지출해야 할 체류비와 소요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수지가 맞는 장사라 여겼다. 표를 들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내게 '그'가 말했다.

"친구는 운이 좋은 거예요. 이 버스 인기가 많아서 좌석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한 시간 있다가 버스가 도착할 겁니다.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잠시 갔다 올게요. 이따 봐요."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 시간 후면 온다던 버스도 '그'도 두 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했구나….'

인도의 로컬버스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이다. 인도 국경에서 호객꾼에게 속아 정상가보다 4배나 비싼 값을 치르고 탄 로컬버스. 15시간의 여정이 15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집채만한 배낭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멍하게 하늘을 보니, 무심하게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다.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를 찾아 나설까 하다 이내 마음을 접었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요, '모래 언덕에서 바늘 찾기'다.

모든 걸 체념한 순간, 먼발치에서 뿌연 흙먼지가 일더니 버스 한 대가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나타난 버스는 70~80년대에 우리나라 도로를 누볐을 법한 낡은 '고철 덩어리'다.

멀뚱멀뚱 나를 보던 버스 안내원이 바라나시행이니 어서 타란다. 내가 표를 내밀자, 그가 '씩'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바보 같은 외국인이 또 낚였군' 하는 눈치다. 모든 게 확실해졌다. 애초에 외국인을 위한 관광버스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버스 안은 겉모습보다 더 가관이었다. 과일 꾸러미와 채소 나부랭이, 짜 파티(인도 전통음식)를 한 짐 실은 광주리, 심지어 병아리로 가득 찬 닭장도 보인다, 시장판이 따로 없다. 그뿐이랴. 딱딱한 등받이 의자에 코를 자극하는 차량 매연, 귀를 찢을 듯 시끄러운 엔진 소리…, 로컬버스의 악명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티켓에 적힌 좌석번호를 차장에게 제시하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아무 데나 앉으란다. 두 서넛 남은 빈자리 모두 상태가 좋지 않다. 등받이가 휘었거나, 주위에 토사물이 가득했다. 하는 수 없이 삐딱한 등받이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쳤다. 버스는 복장이 터지도록 느렸다. 30분에 한 번꼴로 간이 정류장에 정차하는 통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꼼짝없이 차안에서 밤을 지새울 판이다.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 왜 그리도 구슬픈지.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아 낼 뻔했다.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는데 낯이 뜨겁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 안의 현지인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로컬버스를 타는 외국인이 낯선가 보다. 평소 같으면 웃음으로 넘길 상황이지만, 그 순간엔 시선 하나하나가 짜증스럽기만 했다.

여기저기서 호기심 어린 질문이 쏟아졌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모든 인도인이 '그'로 보였기 때문이다. 배낭을 꽉 움켜쥔 채 부실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끊어질 듯 쑤셨다. 한밤의 열대야에 땀이 그칠 줄 모른다.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간 탓에 미치도록 목이 탔다.

지옥 같은 밤을 보낸 끝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물 두통을 사 단숨에 비운 후 그늘을 찾아 앉았다. 10억여 명의 인구 대국답게 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간 앞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더니, 차오르던 분노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바삐 움직이는 인파를 보며, 저 중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 혼자 중얼거렸다. 마치 주술을 외듯.
나의 인도 여정은 그렇게 호된 '신고식'으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