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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인상은 대상에 대한 이미지를 좌우한다. 초입에서 호객꾼의 장난질(?)에 된통 당한 터라, 인도 여정의 첫 목적지인 바라나시가 달가울 리 없다.< 참고 : 인도에선 사기꾼 조심하세요 >

더구나 '죽음'을 터부시하는 우리네 정서상, 도시 한복판에서 공개적으로 화장하는 힌두교의 전통 장례식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방인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 인도인에게 바라나시는 성지다.

이 도시를 관통하는 '강가'(갠지스 강)는 4억여 종류의 힌두 신 중 으뜸으로 꼽힌다.

특히 인도인은 힌두 신앙에 따라 '강가'의 성스러운 물에 목욕을 하면 모든 죄업이 소멸하고, 이곳에서 죽어 화장한 재를 강물에 뿌리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난다고 믿고 있다. (윤회사상을 근본으로 하는 힌두교는 삶 자체를 고통이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 즉 다시 태어나지 않는 상태를 최고의 경지로 여긴다.) 연간 100만 명에 달하는 순례자와 임종을 앞둔 이들이 바라나시를 찾는 이유다.

힌두교의 전통 화장절차에 따라, 장정들이 시신을 강물에 적신 후 향나무 위에 올리고 있다. 사진은 네팔 카트만두에서 행해진 화장이다. 인도 바라나시에서는 화장터 촬영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인도 전역에서 몰려드는 힌두인으로 '강가'와 연결된 가트('강가'와 육지를 이어주는 계단)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들의 행동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낯설다.

가트 한쪽에서 젊은 장정들이 화장터로 시신을 나른다. 겹겹이 쌓인 향나무 위에 시신을 올린 후 가족들이 차례로 염을 하고, 이내 불을 붙인다. 상주로 보이는 남자가 장대로 향나무와 시신을 연방 뒤척인다. 옆에선 앞서 화장한 시신이 반쯤 타들어가고 있다.

수십 구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바라나시를 삼킬 듯 번져 오른다. 죽음을 기다리는 늙고 병든 사람들이 이를 빤히 쳐다본다. 비현실적인 모습 앞에 현기증이 일고, 시체 타는 역한 냄새에 헛구역질이 나온다.

강변에 접한 가트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있다. 수십 구의 시신이 한꺼번에 타기 때문에 메케한 연기와 냄새가 도시 전체를 휘감는다. 사진 역시 네팔의 가트만두에서 이뤄진 힌두의 전통 화장 모습.

주변의 모습은 더 경악스럽다. 맨발의 아이들이 타들어가는 시신 사이를 아무렇지 않게 뛰어다닌다. 그 사이로 행상을 하는 장사치가 눈에 들어온다.

화장터 앞 가트는 죄를 씻기 위해 목욕을 하는 순례자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들이 몸을 담그고 때론 마시기도 하는 '강가'에는 화장 후 흩뿌려진 재와 타다만 인골, 가축의 대소변과 온갖 쓰레기가 떠다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의식을 치르듯 그저 경건히 목욕에만 열중하고 있다.

인도 바라나시를 가로지르는 '강가'(갠지스강)에는 죄업을 씻기 위해 목욕을 하려는 순례자가 넘쳐난다. 이들은 타다만 시신을 비롯해 온갖 부유물이 떠다니는 강물에서 경건히 목욕의식을 행한다.

문화적 충격이었다. 엽기적인 광경에 진저리를 친 나는 애초 사흘이던 바라나시 일정을 줄이리라 마음먹었다. 솔직히 단 하루도 머물고 싶지 않을 만큼 끔찍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바라나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자발적인 선택이었다.

바라나시에 도착한 다음 날, 행여나 물이라도 튈까 가트 먼발치에서 서성이던 중 '강가'에서 목욕을 하던 한 남자가 보였다. 현지인과 다른 피부색과 생김새 때문인지 멀리서도 그 모습이 도드라졌다. 그의 이름은 안도(27), 내 또래의 일본인이었다. 나는 '강가'에 떠다니는 부유물을 가리키며, 안도에게 '괜찮으냐'고 물었다. 단번에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 그가 웃으며 말했다.

거리 한복판에서의 화장, 그 죽음의 의식 곁으로 무심한 듯 흐르는 일상

"이 사람들 수 천 년 동안 여기서 화장하고, 빨래하고 목욕하고 살았어. 다들 멀쩡하잖아. 마음먹기 나름이지 뭐. 나 원래 바라나시에 나흘 정도만 머물 생각이었는데 너무 좋아서 몇 주 더 있으려고. 인도 이곳저곳 다녀봤지만 여기만큼 인도다운 곳은 없더라."

얼마나 머물 거냐는 그의 물음에 차마 오자마자 떠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오기가 치밀어 오른 나는 바라나시에 좀 더 머물러 보리라 결심했다. 지난 열흘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가트를 거닐며, 삶과 죽음이 함께하는 바라나시를 느꼈다. 해 질 녘, 작은 나룻배를 빌려 '강가'를 둘러보는 호사도 누렸다.

안도처럼 '강가'에 뛰어들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나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온갖 부유물이 떠다니는 '강가'에서 자맥질을 하는 이들을 보며, 더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는다. 종교에 대한 그들의 깊은 신앙에 감탄사가 나올 뿐이다. 을씨년스럽기만 하던 화장터의 풍경 앞에선 죽음에 초연한 그들에게 경외감마저 든다.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철옹성처럼 견고한 편견을 깨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좁은 시야에 갇혀 '내 것' 외에는 모두 미개하고 불결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 십상이다. 수 천 년 동안 이어진 인도인의 신성한 의식을 한낱 여행자가 하루 만에 제멋대로 재단했던 것처럼.

Posted by 탄타로스

"너 인도 가거든 정신 바짝 차리고 다녀라. 워낙 땅덩어리도 넓고, 사람도 많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더라. 특히 사기꾼 조심하고."

세계 일주를 시작하기 전, 인도를 여행했던 친구가 충고했다. 당시 나는 녀석에게 "너처럼 어수룩한 애들이나 사기를 당한다"며 퉁을 놓았다.

맙소사! 인도 땅에 발을 딛자마자 사기를 당했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비극(?)은 인도와 네팔의 국경 도시, 소나울리에서 발생했다. 네팔 여행을 마치고 인도의 바라나시로 향하던 중 '그'와의 악연이 시작된 것이다.

양국 국경에서 바라나시로 가려면 기차나 버스를 타야 한다. 여행자 대부분은 기차를 택한다. 쾌적하고 빠른데다 안전하기 때문. 다만, 기차는, 당일 예매가 안 돼, 국경 근처에서 하루를 지내야 한다.

10억 인구의 인도에는 그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진 속 인파 속에는 분명히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한다. 한 단면으로 전체를 판단하기엔 인도는 너무도 넓고 큰 나라다.

반면 현지인이 이용하는 이른바 '로컬버스'는 잦은 정차와 연착, 낙후된 시설로 여행자가 피하는 교통수단이다. 특히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에서 10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은 고생을 자초하는 일이다. 돈만 내면 바로 탈 수 있다는 장점은 이 같은 단점들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10억 다민족 국가 인도…혹독한 신고식

출입국사무소에서 수속을 마치고, 인도 땅을 밟았다. 그때 '그'가 다가왔다. 상냥한 목소리로 합장을 한 채 '나마스떼'(두 손을 모은 채 하는 인도의 인사말)를 외치는 '그'. 온화한 표정, 순박한 눈빛, 말쑥한 차림, 유창한 영어, 한눈에 호감을 주는 인상이다. 담소 끝에 '그'가 말했다.

"기차 타려면 여기서 하루 묵어야 하는데, 시간이랑 돈이 아깝지 않아요? 제가 여행사를 하는데 외국인을 위한 관광버스가 있어요. 로컬버스보단 조금 비싸지만 시설이 끝내줘요. 정차 없이 한 번에 바라나시로 가기 때문에 10시간도 안 걸려요. 지금 몇 자리 안 남았는데 빨리 예약하면 탈 수 있어요."

이미 경계를 풀어 제친 나는 순순히 '그'의 뒤를 쫓았다. 골목골목을 누빈 끝에 허름한 사무소에 당도했다. 무허가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그곳에는 변변한 간판조차 없다. 마음 한 편에서 '의심'이라는 여행자의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할 즈음, '그'가 결정타를 날렸다.

최신시설의 버스 사진이 박힌 티켓을 눈앞에 내밀더니 친절히 좌석번호를 확인해 준 것. 인도정부의 사업자 허가번호는 물론 차량보험 인증서까지 첨부된 티켓 앞에 모든 의혹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길로 나는 로컬버스의 4배에 달하는 거금을 주고 표를 샀다. 부담스러운 비용이었지만, 기차를 타고자 지출해야 할 체류비와 소요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수지가 맞는 장사라 여겼다. 표를 들고 아이처럼 좋아하던 내게 '그'가 말했다.

"친구는 운이 좋은 거예요. 이 버스 인기가 많아서 좌석 구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한 시간 있다가 버스가 도착할 겁니다. 저는 볼 일이 있어서 잠시 갔다 올게요. 이따 봐요." 그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 시간 후면 온다던 버스도 '그'도 두 시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했구나….'

인도의 로컬버스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이다. 인도 국경에서 호객꾼에게 속아 정상가보다 4배나 비싼 값을 치르고 탄 로컬버스. 15시간의 여정이 15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집채만한 배낭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멍하게 하늘을 보니, 무심하게도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다. 짧은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그'를 찾아 나설까 하다 이내 마음을 접었다.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요, '모래 언덕에서 바늘 찾기'다.

모든 걸 체념한 순간, 먼발치에서 뿌연 흙먼지가 일더니 버스 한 대가 다가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끄러운 굉음과 함께 나타난 버스는 70~80년대에 우리나라 도로를 누볐을 법한 낡은 '고철 덩어리'다.

멀뚱멀뚱 나를 보던 버스 안내원이 바라나시행이니 어서 타란다. 내가 표를 내밀자, 그가 '씩'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바보 같은 외국인이 또 낚였군' 하는 눈치다. 모든 게 확실해졌다. 애초에 외국인을 위한 관광버스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버스 안은 겉모습보다 더 가관이었다. 과일 꾸러미와 채소 나부랭이, 짜 파티(인도 전통음식)를 한 짐 실은 광주리, 심지어 병아리로 가득 찬 닭장도 보인다, 시장판이 따로 없다. 그뿐이랴. 딱딱한 등받이 의자에 코를 자극하는 차량 매연, 귀를 찢을 듯 시끄러운 엔진 소리…, 로컬버스의 악명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티켓에 적힌 좌석번호를 차장에게 제시하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아무 데나 앉으란다. 두 서넛 남은 빈자리 모두 상태가 좋지 않다. 등받이가 휘었거나, 주위에 토사물이 가득했다. 하는 수 없이 삐딱한 등받이 의자에 엉덩이를 반쯤 걸쳤다. 버스는 복장이 터지도록 느렸다. 30분에 한 번꼴로 간이 정류장에 정차하는 통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꼼짝없이 차안에서 밤을 지새울 판이다. 창밖으로 지는 노을이 왜 그리도 구슬픈지. 하마터면 왈칵 눈물을 쏟아 낼 뻔했다.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는데 낯이 뜨겁다. 주위를 둘러보니 차 안의 현지인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로컬버스를 타는 외국인이 낯선가 보다. 평소 같으면 웃음으로 넘길 상황이지만, 그 순간엔 시선 하나하나가 짜증스럽기만 했다.

여기저기서 호기심 어린 질문이 쏟아졌지만, 침묵으로 일관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후 모든 인도인이 '그'로 보였기 때문이다. 배낭을 꽉 움켜쥔 채 부실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허리가 끊어질 듯 쑤셨다. 한밤의 열대야에 땀이 그칠 줄 모른다. 온몸에 수분이 빠져나간 탓에 미치도록 목이 탔다.

지옥 같은 밤을 보낸 끝에 바라나시에 도착했다. 물 두통을 사 단숨에 비운 후 그늘을 찾아 앉았다. 10억여 명의 인구 대국답게 거리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시간 앞에 아물지 않는 상처는 없다더니, 차오르던 분노가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바삐 움직이는 인파를 보며, 저 중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을 거라 혼자 중얼거렸다. 마치 주술을 외듯.
나의 인도 여정은 그렇게 호된 '신고식'으로 시작됐다.

Posted by 탄타로스
 강가(갠지스강), 인도인은 이곳에서 죽고, 화장하고, 재를 뿌린다.

고통스런 삶의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다.

대척에 놓인 삶과 죽음, 그러나 바라나시에선 언제나 삶 곁에 죽음이, 죽음 곁에 삶이 공존한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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