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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호주인의 질문 "한국 부모들은 다 부자야?"

호주 자동차 종단을 마쳤다. 동남쪽 멜버른을 떠나 캔버라, 시드니, 골드코스트, 브리즈번 등 3개 주 5개 도시를 여행한 지 한 달만이다. 여행 중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만났다. 이민자가 세운 나라인 만큼 호주는 다민족·다문화를 지향한다. 1800년대 중반 골드러시(Gold Rush)가 촉발한 이민 행렬은 이제 금광 대신 '삶의 여유'를 찾아 몰려드는 이들이 그 바통을 이어가고 있다.

'작은 지구촌' 호주에는 한국인, 그중에서도 청년이 많았다. 이들은 보통 세 부류로 나뉜다. 학위를 위해 '유학생 비자'를 발급받은 이들, 농장 등지에서 일을 하기 위해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소지한 이들, 그리고 따로 비자가 필요 없는 배낭여행자.

높은 파도와 황금빛 백사장 덕에 서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골드코스트의 '서퍼스 파라다이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젊은이들로 늘 북적이는 '작은 지구촌'에서 한국 청년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었다.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청년과 마주하며 느낀 바가 컸다. 특히 여러 가치관이 상존하는 호주인지라, 타국 청년과의 비교를 통해 세계 속 한국 젊은이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우선 한국 청년은 자립심이 약하다. 호주로 유학 온 많은 학생이 집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받고 있다. 대학생활 혹은 그 이후에도 부모가 뒷바라지하는 게 일상적인 한국에선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외국서 부모 지원으로 호화생활하는 '캥거루 족'

하지만 많은 외국인이 이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느 날, 여행 중 만난 호주 청년 앤드류(24)가 던진 질문에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있다.

"한국 부모들은 다 부자야? 왜 성인이 된 자식에게 돈을 보내주지? 언제까지 집에서 보살펴 주는 거야? 꼭 캥거루 같잖아. 어미 주머니 속에서 사는."

5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로부터 독립한 앤드류는 현재 빵집을 운영 중이다. 그동안 차곡차곡 돈을 모아온 그는 올해 말 약혼을 앞두고 있다. 앤드류처럼 대부분의 서구 청년은 십대 이후 제 살길을 찾아 나선다.

자립심과 겉치레는 '반비례' 한다. 스스로 벌어 쓰지 않는 한국 청년은 겉치레에 신경을 많이 쓴다. 10여 명의 외국인이 모여 사는 사촌동생 집에 'RICH GUY'란 별명을 가진 한국 학생이 있다. 우리말로 하자면 '부자 녀석'쯤 될까.

그가 그런 별명을 얻은 것은 겉치레 때문. 이제 20대 초반인 이 학생은 얼마 전 3000만 원이 넘는 일제 승용차를 샀다. 물론 부모가 사준 차다.

그가 고가의 차를 산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한인 친구들이 모두 그 정도 수준의 차를 몰고 다니기 때문이란다. 그는 '꿀리기 싫다'('지기 싫다'는 의미의 속어)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호주에서 차는 필수품이기에, 대부분의 청년이 자가 차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학생처럼 새 차, 그것도 고가의 차를 사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 오래된 중고차를 싸게 구입, 'PICK UP PART'란 폐차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을 사다 직접 차를 관리한다. 스스로 벌어 쓰는 만큼, 이들은 저렴하고 실용적인 차를 선호한다.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열린 퀸즐랜드 브리즈번에서 각국의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행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 청년은 상당히 폐쇄적이다. 이는 파티 문화가 발달한 호주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금빛 해안으로 유명한 골드코스트를 여행할 때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농장 일을 하는 이들과 배낭 여행객이 뒤섞인 숙소에 묵었다.

저녁에 파티가 열렸다. 호주에서 파티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거창한 모임이 아니다. 각자 준비해 온 먹을거리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게 전부다.

파티선 '꿔다 놓은 보릿자루'…폐쇄성 극복해야

파티는 정보를 교환하거나 다른 나라 친구와 사귈 좋은 기회다. 하지만 유독 한국 청년은 파티를 꺼린다. 설사 마지못해 참석하더라도, 한인끼리 모여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되기 일쑤다.

폐쇄성은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든다. 자동차 종단 중 경험한 한 국제행사에서 한국 청년의 모습이 그랬다. 천주교가 주최한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 호주에서 열린 역대 단일 대회를 통틀어 가장 큰 행사인 WYD는 대륙 전체를 축제 분위기로 물들였다.

운 좋게도 사촌동생과 나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수 만 명의 청년이 퀸즐랜드의 주도 브리즈번에서 행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열린 퀸즐랜드 브리즈번에서 각국의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행진하고 있다.


각 국 청년들은 저마다 넘치는 열정으로 행진을 이끌었다. 자국 국기를 두르고 무동을 타거나, '페이스 페인팅'을 한 채 노래와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나라별 국기가 휘날렸지만, 눈을 씻고 찾아 봐도 태극기는 없었다. 한국 청년들은 삼삼오오 흩어져 '쥐죽은 듯' 입장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사촌동생과 함께 고래고래 소리쳤다. "한국 파이팅!"

쭈뼛쭈뼛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몇몇이 이내 얼굴을 붉히더니 걸음을 재촉했다. '작은 지구촌'에서 목도한 한국 청년의 모습은 이처럼 작고 초라했다. 왜일까? '단일민족'이란 지극히 폐쇄적인 개념을 마치 우월적인 가치인 것처럼 배워온 탓일까.

승자가 독식하는 무한경쟁체제에 길들여져 마음을 열 여유가 없는 탓일까. 체면과 겉치레를 중시하는 한국의 풍토 탓일까. 이도 저도 아니라면 원래 한국 청년의 깜냥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것일까.

한국 청년의 범주에 속하는 나 역시 이러한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글은 한국 청년에게 고하는 글이자,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