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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밤을 기다리는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가다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왔다. 여행을 시작한 지 넉 달 만에 아시아와 오세아니아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디뎠다.

미국은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묘한 나라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자리한 거대한 태평양, 그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두 나라의 모습은 이질적이다. 짧은 역사 속에 다민족·다문화가 빚어낸 미국 사회는 오랜 기간 단일민족·단일문화를 고수해 온 한국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이 생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해 관광객 4000만 명이 뿌리는 돈만 6조 원

한편으로 우리는 미국에 너무도 익숙하다. 한국 정치·외교·경제 현안의 중심에는 늘 미국이 있다. 영화·드라마·음악·스포츠·음식 등 문화의 경우 'Made in USA'가 한반도를 점령한 지 오래다.

사막 한 가운데 조성된 라스베이거스에는 고급 호텔과 카지노가 즐비해 있다. 이들 건물은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로마의 콜로세움 등을 본떠 화려한 외관을 자랑한다.


이런 모순 탓일까. 미국 여행을 앞두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감정의 실체를 한마디로 표현하긴 힘들다. 마치 미국을 둘러싼 다양한 평가처럼 설렘과 두려움, 편안함과 불편함, 동경과 반감이 실타래처럼 얽힌 기분이다.

미국 여행은 서부와 동부로 나누어 계획을 세웠다. 한 나라 안에서도 동서 간에 3시간의 시차가 날 정도로 미국의 국토는 넓다. 자연히 서부와 동부 양 지역의 색깔 역시 확연히 다르다.

앞서 여행할 서부는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돋보이는 곳이다. 사막 한 가운데 조성된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비롯해 빙하가 빚어낸 작품인 그랜드캐니언·요세미티 국립공원, 해안을 따라 조성된 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와 서부 최대의 도시 로스앤젤레스 등 이름난 명소가 미국 서쪽에 즐비해 있다.

뉴질랜드를 떠나 미국 서부를 향해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을 날아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했다. 착륙 직전 창밖으로 펼쳐진 도심 풍경은 선잠을 확 깨울 만큼 장관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눈에 띄는 슬롯머신 '역시 카지노 도시답군'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답게 라스베이거스 공항은 입국 심사를 받기도 전에 '슬롯머신'을 접할 수 있다. 공항을 가득 메운 도박용 기계가 인상적이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배경으로 별처럼 반짝이는 라스베이거스. '불야성'이란 별칭답게 네온 불빛이 화려하다. 이를 보고 있자니, 영원히 동이 트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통로를 가득 메운 '슬롯머신'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 최대의 카지노 도시답다. 출입국 심사를 받기도 전에 도박이라니.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는데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들!"

멀리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외손자 돌잔치를 위해 미국에 사는 누나 집을 방문한 부모님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 좋게도 부모님과 나의 미국 방문 시점이 맞아 떨어져 함께 서부 여행을 하기로 계획했다.

오랜만에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에 근심의 빛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몰골은 수개월 고생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10㎏이나 살이 빠져 핼쑥해진 얼굴, 뙤약볕에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 치렁치렁 아무렇게 자란 머리칼, 얼굴을 뒤덮은 수염 등 '꼴'이 말이 아니었던 것.

카지노의 불빛은 꺼질 줄 모른다. 라스베이거스 시내에 자리한 카지노 거리에 초저녁부터 네온사인이 빛나고 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라스베이거스 밤거리로 나섰다.

수십 곳의 대형 카지노에서는 잠을 잊은 이들이 도박에 열중하고 있다. '슬롯머신'을 통과하는 동전소리가 끊이질 않고, 그 사이로 술과 시가를 나르는 팔등신 미녀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다른 한편에선 카드를 뒤집는 딜러의 손에 환호와 탄성이 교차하고, 환전창구 앞에선 수백, 수천 달러의 뭉칫돈이 아무렇지 않게 오간다. 고급호텔의 공연장에선 화려한 쇼가 객석을 달구고 있다.

한 해 관광객 4000만 명, 이들이 뿌리는 돈이 매년 6조 원에 달한다니 라스베이거스는 지상 최대의 '별천지'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