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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미국.

떠나는 길에 몇 자 남깁니다.

돌이켜보면, 당신을 느끼고 체험하는 과정은 참 힘겨웠습니다.

당신은 안보를 구실로 한낱 여행자를 가혹하게 다뤘어요. 당신 앞에서 저는 늘 잠재적 '해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무슨 얘기냐고요?

명분 없는 전쟁으로 미국의 젊은이들 역시 희생을 치렀다. 이라크 전쟁에서 숨진 이들의 군번 줄이 빼곡하다.


공항에 들어섭니다. 심문이 시작되죠. 언제나 저는 열외로 분류, 한쪽으로 내몰립니다. 이상한 기계가 '휙휙'하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온몸을 훑고 성분을 알 수 없는 약품으로 제 소지품을 마구 문지릅니다. 선택의 여지없이 지문을 채취당합니다. 차가운 바닥에 짐을 쏟아내고 일일이 해명해야 합니다.(도대체 속옷 따위가 뭐 그리 위협적이라는 건지) 그렇게 한참을 들쑤시고는 고작 비행기 표에 통과해도 좋다는 도장 하나를 '꽝' 박습니다. 마치 가축에 등급 낙인을 찍듯.

매 순간 저는 온몸이 발가벗겨지는 모욕을 느꼈습니다. 화가 났어요. 당신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언제나 인권을 부르짖던 당신이잖아요.

그러다 당신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더군요.

'그라운드 제로'에 섰습니다. 지난 2001년 9월 11일의 참상을 그대로 보존한 곳 말이죠. 뉴욕 맨해튼 마천루 사이의 휑한 터가 어찌나 슬퍼 보이던지. 무고한 희생이 떠올라 고갤 숙였습니다.

그제야 당신이 신경병 환자처럼 군 연유를 알겠더군요. 아울러 당신이 참 가엾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스턴 '자유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국 독립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의 무덤이 있다.


  보스턴 '자유의 길'을 따라가다 보면 미국 독립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의 무덤이 있다.   
 
당신은 친구도 많지만, 그만큼 적도 많습니다. 왜일까요? 자유·민주·인권 등 누가 봐도 옳다고 생각하는 보편적 가치를 부르짖는 당신인데….

한 번이라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그저 앞선 자를 향한 뒤처진 자들의 시기 어린 질투 정도로 치부해 버린 건 아닌지요.

제 얘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당신이 답을 찾는데 도움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여행을 통해 당신의 '어제'와 '오늘'을 봤습니다. 참 많이 변했더군요. 애석하게도 그 변화는 부정적입니다. 아마도 그 괴리가 오늘날 당신의 위상을 흔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외치던 당신…이익 앞에 눈이 멀어 변해 버렸군요

보스턴에서 당신의 과거를 따라 걸었습니다. '자유의 길'이란 이름의 보도를 따라가니, 당신의 건국 역사가 한눈에 들어오더군요.



영국의 식민지 시절, 지배자의 폭압에 항거해 독립전쟁을 일으킨 미국은 막강한 해군력을 지닌 영국을 제압하고 독립을 이룬다. 사진은 당시 큰 공을 세운 미국 측 군함.

영국의 식민지였던 당신은 지배층의 중상주의와 과도한 세금 책정으로 고통을 겪었죠. 이에 항거해 보스턴에 정박해 있던 영국 동인도회사의 차를 모두 바다에 던진 기막힌 사건을 일으켰더군요. 사람들은 이를 두고 당신이 독립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며 '보스턴 차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이후 당신은 전면전으로 불거진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 독립을 쟁취합니다. 당신은 선언합니다. 자유와 민주, 인권의 가치를 최고의 선으로 여기겠다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영원히 지켜내겠다고.

그랬던 당신이 변했습니다. 워싱턴 D.C에서 본 당신의 현재 모습은 안타까울 만큼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당신을 쥐고 흔드는 위정자들이 모인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을 방문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시위대였습니다. 떠들썩한 시위가 아니었어요. 홀로 피켓을 든 채 침묵을 지키는 이들이 대다수였죠. 그 침묵의 소리는 제가 들어본 어떤 구호보다 우렁찼습니다.

그들은 당신더러 '추악한 전쟁'을 멈추라고 요구합니다. 또 당신네 이익에 따라 자행하고 있는 많은 일에 대해 자유·민주·인권의 소중한 가치를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 충고합니다.

지난 2003년 당신은 이라크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당신의 우방조차 명분 없는 전쟁에 반대했죠. 당신은 저들이 무시무시한 무기를 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후 당신이 들고 나온 것은 무기가 아닌 석유였습니다. 애초에 가공할 만한 '대량살상무기'따윈 없었던 거죠.

수도 워싱턴 D.C의 백악관 앞에는 미국의 오만과 독선을 탓하는 일인 침묵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난이 빗발치자 당신은 새로운 레토릭을 구사합니다. 폭정과 억압에 찌든 이라크 국민을 구출하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겠노라고. 그 말을 믿는 사람은 드뭅니다. 이미 수십 만의 인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멈추지 않는 폭탄테러로 희생자는 늘고 있습니다. 모두 당신의 오만과 독선 탓입니다.

이라크 문제는 한 예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네 위정자들의 손익 계산에 따라 진행된 많은 일이 자유·민주·인권의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 당신이 겪는 시련은 당신이 자초한 바입니다. 진정성을 상실한 당신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 역시 헛구호에 불과합니다. 자연히 친구보단 적이 늘 수밖에요.

초심으로 돌아가세요. 소중한 가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나 독립을 쟁취했던 그때의 마음을 잃지 마세요. 언제나 당신을 지켜보겠습니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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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똘레랑스 2009.04.25 1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가 지켜봐도 미국이란 나라는 쉽게 변하지 않을것 같네요.....!!!! 자국의 이익 앞에서는 짐승의 모습을 하도 많이 봐와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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