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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눈앞 이웃나라…그러나 넘기 힘든 국경

특정한 상황에서 악재가 반복될 때 이를 징크스라 한다. '국경 징크스'…, 거듭 찾아드는 불운의 사태를 나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나라 사이 경계가 곧 국경이다. 한 대륙 안에 여러 나라가 더부살이하는 만큼 남미에는 국경이 참 많다. 남미 지도를 펼쳐놓고 국경을 표시하면, 요리조리 그려진 빗금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베네수엘라에서 콜롬비아를 거쳐, 에콰도르 국경에 도착하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이어졌다. '국경 징크스'는 여행 7개월 만에 찾아온 최대 난적이다.



대개 국경 폭은 수백 미터를 넘지 않는다. 걸어서 5분이면 건널 수 있는 짧은 거리지만,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내겐 망망대해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한 짧은 거리…돈에 눈먼 '부패 경찰'과 실랑이
저렴한 요금에 현혹, 버스 잘못 타…거액 벌금에 복잡한 행정절차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콜롬비아로 향하는 길목. 국경을 앞두고 느닷없이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탓이다. 수개월 전 네팔·인도 국경에서 사기를 당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땐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지, 설마 또 그런 일이 생기겠어?'

스스로 위로하며 국경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베네수엘라 경찰 두 명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 명은 땅딸막한 키에 바싹 말랐고, 다른 이는 지나치게 체격이 컸다. 고목과 매미가 떠올랐다. 썩 좋은 인상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으레 하는 검문이겠거니 하고 요구에 응했다. 이어 짐을 풀란다. 1년 치 생필품으로 가득 찬 배낭을 풀어헤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양말 한 켤레, 팬티 한 장, 칫솔, 치약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통에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거참! 직업 정신 한 번 투철한 양반들이군.'

겨우 짐을 추스르고 돌아서는 찰나 '매미' 쪽이 나를 붙잡는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우니 다시 짐 검사를 해야겠단다.

황당함과 분노가 밀려왔다. 쏘아 보는 내게 '고목' 쪽이 지폐 한 장을 꺼내 흔들었다. 통과하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의미였다.

여행 전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경찰의 부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 검문을 빌미로 여행자의 돈을 갈취한다는 소문이었다.

'아무렴, 그래도 경찰인데'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일을 당한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여행자 사이에선 '베네수엘라 경찰 퇴치법'이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수첩과 펜을 꺼내 더듬거리는 스페인어로 물었다.

"당신들 이름이 뭐야? 이거 불법이잖아. 한국 대사관에 연락할 거야."

제복에 새겨진 이름을 적자, '고목'과 '매미'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기세가 오른 나는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그들을 몰아쳤다. 효과가 있었다.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두 경찰은 슬그머니 꽁지를 내뺐다.

당시엔 몰랐다. 그 일이 '국경 징크스'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벽녘에 베네수엘라 국경마을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콜롬비아 국경마을 쿠쿠타가 지척에 있다.

이제 두 마을 사이에 자리한 양국의 출입국 사무소만 들르면,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마을에서 출입국 사무소까지 이동하려고 여행자 대부분은 택시를 탄다. 서둘러 택시를 잡으려는데, 큼지막한 푯말을 단 낡은 버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푯말에는 '출입국 사무소행'이라고 적혀 있었다. 택시비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저렴한 가격이 구미를 당겼다.

서둘러 차에 올랐다. 버스 안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 현지인이었다.

한 시간가량을 달리던 차가 길 한 편에 정차하더니 시동을 껐다. 출입국 사무소라 생각하고 내렸건만,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국경의 삼엄함과 엄숙함 대신 저잣거리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행인에게 묻자 경악할 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콜롬비아란다.

버스가 출입국 사무소도 들르지 않고 베네수엘라에서 곧장 콜롬비아로 넘어온 것이다. 비자에 해당하는 출입국 도장을 받지 못한 나는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생업을 위해 양국을 오가는 현지인은 임의로 국경을 넘나드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하필 내가 탄 버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금전적·정신적·육체적·시간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자리한 이민국을 찾아가 거금의 벌금을 물고, 수일 동안 복잡한 행정절차에 시달리는 동안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 그것도 한밤중에.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국경 지역을 넘어가던 일부 차량의 유리창이 파손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로에 발이 묶인 채 걱정스레 파손된 차량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나는 콜롬비아를 떠나 에콰도르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시간을 허비한 탓도 있지만, 그보단 새로운 나라에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박한 바람은 수포로 돌아갔다. '국경 징크스'가 또다시 발목을 잡은 것.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간 국경 근처에서 나는 사흘 동안 발이 묶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폭우로 좁은 산길이 무너져 버스 운행이 중단된 탓이다.

사흘 내내 터미널에서 배수진을 친 끝에 겨우 에콰도르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한숨 돌리나 싶었건만, '국경 징크스'는 마지막까지 제 임무에 충실하다.

이번엔 한밤중 총격전이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간 국경지대인 루미차카 지역을 한 시간 남짓 남겨두고 국경으로 향하던 모든 차량이 멈춰 섰다.

수십 대의 군·경 차량이 사이렌을 울려대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예전보단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콜롬비아 국경 지역에선 반군 게릴라가 출몰하고 있다. 앞서 국경으로 떠났던 차량 중 일부가 유리창이 깨진 채 돌아오자 사람들의 술렁임은 더해갔다.

결국, 도로에서 새우잠을 잔 채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어슴푸레 새벽이 오자, 그제야 차량운행이 재개됐다. 에콰도르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날은 밝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