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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여행길에 맞은 서른, 나에게 길을 묻다

길 위에서 나이 한 살을 더했다. 서른이다.

서른이란 놈은 참 고약하다. 유랑생활에 정신없던 내 뒷덜미를 녀석은 인정사정없이 붙들었다. 무방비 상태였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느라 녀석이 다가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피 끓는 젊음', '눈부시게 푸른 청춘'에 이별을 고하자면, 무언가를 정리하고 결의해야 하지 않는가. 녀석의 기습에 그저 멍하게 20대를 떠나보내야 했다. 느닷없이.

이 글은 서른을 맞은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의 단상이다. 아니 그보단 푸념 혹은 끼적임에 가깝다.

'서른이 뭐 별거냐!', 일찍이 서른을 맞이한 선배들의 질책이 귓전을 맴돈다. 하지만 초보에겐 뭐든 두렵고 막막한 법. 당신들의 격려를 바란다. 아울러 올해 서른이 된 1980년 생 동지들의 공감을, 예비 서른의 기로에 선 후배들의 위로를 기대해 본다.

볼리비아의 우유니는 20억 톤이 넘는 소금으로 가득하다. 천지가 온통 하얀 소금사막에 서서 서른의 삶을 생각했다.


남미 여정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 한달, 나는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고생은 자초한 측면이 컸다.
 
남미에 관심이 많던 나는 세계일주 전체 일정 중 많은 날을 이곳에 할애했다. 좀 여유 있게 돌아 볼 요량이었다. 그 여유가 과했나 보다. 남미 여정 초·중반에 늑장을 부린 탓에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 달 남짓한 시간 안에 볼리비아와 파라과이를 거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까지 가야했다. 넓디넓은 남미대륙임을 감안할 때 이동하는 것 만해도 벅찬 동선이다. 하물며 봐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당에….

이 기간 나는 침대에서 잔 날보다 버스에서 눈을 붙인 날이 더 많다. 시간을 벌기 위해 야간 버스에 올라 새우잠을 잤다. 50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국제버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면부족으로 머릿속은 늘 공허했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여행이라기보단 차라리 극기훈련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서른은 줄기차게 내 뒤를 밟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승냥이처럼 까치발을 하고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왔던 것이다.

소금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버려진 철길이 있다. 소금과 함께 광물을 실어 나르던 열차가 운행을 멈추자, 철길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철길을 위로하려는 듯 두 사람이 선로 위를 걷고 있다.

이를 자각했을 때 나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에 서있었다. 서른 즈음, 정확히 새해를 열흘 앞둔 시점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세계 최대 규모의 염호다. 염분을 가득 머금은 호수가 뜨거운 태양아래 증발, 20억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금밭이 생겨났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새하얀 소금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사이에 서 있자니 천지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허공에 발을 디딘 듯 몽롱한 기분이 드는가 하면, '하얀 방'에 갇힌 듯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공감각 기능을 담당하는 뇌 일부가 녹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소금 결정체가 반사하는 볕 때문에 부신 눈을 뜰 수 없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눈이 먼 사람들, 모든 게 새하얗게 보이는 '백색공포'가 책의 소재였다. 문득 눈이 멀까 두려워졌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서른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녀석은 이미 목전에 와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소금사막을 캔버스 삼아 서른의 삶을 그려보지만 허사다. 볕을 머금은 소금처럼 머릿속이 온통 회백색이다. 그 와중에도 불안감만은 고개를 쳐들고 생각의 언저리에 자리 잡는다.

'여행 끝나고 돌아가면 뭘 해야 하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라는데 이대로 백수로 늙는 것은 아닐까? 친구들 중엔 벌써 대리를 단 놈도 있고, 가정을 꾸린 놈도 있는데 이대로 뒤처지는 건 아닐까? 여행 후 내게 남는 건 뭘까?'

사치스런 감상을 접고 다시 길에 섰다. 숨 가쁘게 내달려 겨우 목적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서른을 하루 남겨둔 12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신은 6일을 만든 후 마지막 7일째인 휴일을 브라질에 주셨다."

놀기 좋아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브라질 국민의 한량 기질은 세계 최고임이 틀림없다. 맥주를 홀짝이며 삼바 음악에 몸을 흔드는 이들이 지천에 널렸다. 2월의 카니발과 더불어 브라질 최고의 축제로 꼽히는 신년행사가 어떨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의 해안가는 새해를 맞으려 몰려든 수 만 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불꽃은 밤하늘을 수놓았고, 삼바리듬에 맞춘 물라토의 몸짓은 지상을 수놓았다. 축제가 최고조에 달할 즈음, 모두가 한 목소리로 숫자를 셌다.

브라질의 이구아수 폭포.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답게 낙폭과 물량이 어마어마하다. 물 떨어지는 굉음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축포가 터졌다. 2009년 새해가 밝은 것이다. 백사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함성이 파도소리를 잠재웠다. 여기저기 얼싸안은 사람들이 새로운 한해를 축복하며 볼인사를 나눴다.

그 열기에 휘둘려 잠시 내가 서른이 됐다는 사실을 잊었다. 북적거림은 새벽 동이 틀 무렵에야 잦아들었다. 다시금 서른의 무게가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코파카바나 해변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바다는 수 만 명이 버리고 간 부유물로 가득했다. 이른 새벽 출렁이는 파도에 부유물이 춤을 춘다. 앞선 파도가 해안가로 가져다 놓은 부유물을 뒤이은 파도가 다시 바다로 쓸어간다.

공자는 서른을 일컬어 '이립'이라 했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그의 바람과 달리 서른을 맞은 나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코파카바나 해변을 떠도는 부유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