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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세계여행길에서 느낀 서양과 동양의 차이

나는 '길치'다. 초행길은 물론이고, 한두 번 다닌 곳에서도 헤맬 만큼 증상이 심각하다. 공간과 방향을 관장하는 우뇌반구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한달음으로 목적지에 닿는 이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마저 든다.

여행 전 신문사에서 일할 때 항상 남보다 먼저 취재현장으로 향해야 했다. 길에서 허비할 시간을 고려해서다.

이러한 노력에도 자주 길을 잃고, 제 시간에 늦곤 했다. 먼저 도착해 취재기자를 기다리는 사진부 선배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연히 세계일주 소식을 처음 접한 주변사람들의 걱정은 대단했다. 그들의 우려를 비웃으며 당차게 집을 떠났건만, 지난 9개월 동안 여기저기서 무던히도 헤매고 다녔다.

△ 밀과 고기를 주식으로 한 유목민의 후예답게 유럽인은 길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꾸려왔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어느 건물이든 문만 열면 눈앞에 길이 펼쳐진다.


목적지 코앞에서 하염없이 방황하다가 택시를 잡아타는 일이 허다했다. 같은 자리만 맴돌다 현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미로를 빠져나온 적도 많다. 객쩍고 멋쩍은 고백이지만,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밖에서도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랬던 내가 요즘 들어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한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며, 나는 단 한 번도 길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다.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조차 지도 한 장으로 어디든 찾을 수 있었다.

'갑자기 우뇌 전두엽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걸까? 숨겨져 있던 잠재력이 뒤늦게 빛을 발하는 건가?'

행복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감각 기능에 문제가 있는 '길치'란 얘기다.

그동안 내가 헤매지 않은 까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길이 그만큼 체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 먼저 둘러본 유럽 국가들 역시 잘 닦은 길을 소유하고 있었다. 유럽의 길은 광장을 중심으로 곧게 뻗어 있다. 종횡의 길엔 이름과 숫자가 표기돼, 다니기가 수월하다.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스페인의 네르하. 언제나 길을 만들어 떠나야 했던 서양인들에게 바닷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대서양을 길 삼아 새 터전을 향해 떠났다.

정방형으로 가지런히 난 길을 보면 와플파이가 떠오른다. 동이나 마을 등 큰 단위에 익숙한 우리에게 생경한 모습이다.

권삼윤 씨가 지은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는 책이 있다. 그 내용이 떠올라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책의 제목은 메타포다. 저자는 주식 개념을 들어 빵을 서양에, 밥을 동양에 비유하고 있다.

즉 서양에선 길이, 동양에선 마을이 중시된다는 뜻이다.

빵과 밥은 각각 밀과 쌀로 만든다. 건조한 유럽에서 잘 자라는 밀은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적은데다 영양분이 부족하다. 균형 잡힌 식단을 위해선 고기를 곁들여야 한다. 밀은 또한 지력을 약화시키는 까닭에 윤작이 힘들다. 가축에게 먹일 풀을 찾거나, 새로운 밀밭을 찾아 서양인은 끊임 없이 이동해야 했다. 그들 유목민에게 '길'은 숙명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많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스쳐지나간다. 개인주의를 가치관으로 하는 유럽인 사이에서 '나 홀로 여행자'의 고독감은 전에 없이 짙다.

반면 몬순지대의 혜택으로 물이 풍부한 동아시아는 벼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지녔다. 벼는 밀에 비해 수확량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한 완전식품이다. 특히 지력을 떨어뜨리지 않아 한 자리에서 윤작이 가능하다. 벼농사에 필요한 저수지나 댐 등의 관개시설 역시 정착생활을 부추겼다. 동양의 농경민에게 '마을'은 생존을 위한 단위였다.

주식이 낳은 양 문명의 특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모든 건물은 문을 열면 바로 길과 맞닿는다. 큰 길과 거리를 두고 주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네와 사뭇 다르다. 주소를 적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 유럽에선 길 이름을 주소 맨 앞에 적어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 '~번지'에 익숙한 나에겐 낯선 체계다.

'빵과 밥', '길과 마을'의 차이는 양 문명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에 유목민은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선시 한다. 대를 이어 한 곳에 머무는 농경민이 '우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상반된다.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고 있는 요즘, 전에 없던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집을 나선 지 9개월이 넘은 까닭도 있겠지만, 그보단 전혀 다른 가치관을 마주한 탓이 크리라.

유럽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다. 개인주의로 무장한 유목민의 후손들과 길을 걸을 때면, 고독감은 더 짙어진다.

문득 밥 짓는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빵이 만든 길 위에서, 나는 밥이 만든 마을을 사무치게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