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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유럽에 비해 한국청년들은 너무 착하다

그리스 여정을 코앞에 두고,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단다. 지난해 말 경찰의 총격으로 15세 소년이 숨진 뒤 촉발된 청년들의 봉기가 해를 넘어 극렬한 반정부 시위로 번지고 있었다.

이미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피해를 톡톡히 본 터라 불안감이 싹텄다. 지난해 4월과 7월, 티베트와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여행 계획이 어그러진 바 있다. 티베트는 중국 공안의 '문화학살'이, 자이살메르의 경우에는 폭탄테러가 원인이었다. 당시 이들 땅을 밟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이후 일정까지 차질을 빚는 바람에 새판을 짜느라 진땀 뺐던 것.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테네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며칠 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고 믿기 힘들만큼. 하지만 도심 곳곳에선 여전히 정부와 청년 간의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혹 이번에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터키와 중동,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육로이동의 거점이 그리스다. 베이스캠프에 발을 딛지 못하면 남은 여정은 물거품이 될 게 뻔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외신에 눈과 귀를 붙박았다.

신들의 축복일까. 다행히도 '신화의 나라'는 내게 여행을 허락했다. 1월 중순 들어 소요가 잦아든 그리스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안도감과 초조함이 뒤섞인 심정으로 수도 아테네에 도착했다.

오로지 입국 여부에만 신경 쓰느라 시위에 대해 톺아볼 여유가 없던 나는 그리스에 발을 딛고서야 사태의 본질을 깨달았다.

이번 시위는 경찰의 총격으로 한 소년이 숨지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한 달여 동안 이어진 반정부 시위의 밑바탕에는 만성적인 청년실업 문제가 깔려 있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낮은 급료의 일용직을 전전해야 하는 '700유로 세대'(우리네 '88만 원 세대'와 같은 개념)의 분노가 공권력을 향해 들불처럼 번진 것이다.

88만 원 세대, 700유로 세대의 분노에 공감하다

소강국면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아테네 곳곳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벽면마다 정부를 규탄하는 낙서가 가득했고, 갈기갈기 찢어진 그리스 국기가 을씨년스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공공기관 앞에선 제복의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를 섰고, 이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혼란의 흔적을 훑는 내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청년실업', '사상 최악의 취업난', '비정규직'…, 이런 용어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서양 너머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나라에서 온 '88만 원 세대'는 그리스의 '700유로 세대'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기린 파르테논 신전. 정녕 청년의 미래를 밝힐 지혜는 없는가? 답을 구해본들 여신은 묵묵부답이다.


문득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언컨대, 청년들이 겪는 실업의 고통은 그리스보다 한국에서 더 크고 깊다. 청년실업의 비율만을 놓고 보면 20%에 달하는 그리스가 7%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보다 심각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치가 아니라 취업을 향한 눈물겨운 과정과 그에 따른 상실감 등 현상의 이면으로 고개를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상황을 보라. 대학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교육에 가깝다. 적성이나 소질 따윈 헛구호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입시지옥에서 헤맨 후 대학생이 되면 상황이 나아지나? 어림없다.

상아탑은 직업훈련소로 바뀐 지 오래다. 신입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학점관리에 열을 쏟는다. 학점은 상대평가다. A등급을 위해 주저 없이 친구를 밟아야 한다. 교양? 캠퍼스의 낭만? 소가 웃을 일이다.

대학졸업을 앞두고는 취업을 위한 '~스터디'가 판을 친다. '면접대비 스터디', '합숙대비 스터디', '논술대비 스터디'…. 남녀 불문하고 성형 붐까지 인다. 토익 고득점, 고학점, 수 개의 자격증, 다수의 인턴 경험 등 너도 나도 이력서가 화려하다.

10년 세월 한결같이 취업에 매진하는 대한민국 청년, 그럼에도 그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허영심을 버리라고? 이러한 주문은 책임회피를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

작은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환경부터 조성하라. 몇몇 거대집단이 다 해먹는 기형적인 구조론 안 된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꼭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 달라. 입으로만 지역균형발전이니 중소기업 부양이니 떠들지 말고 이를 실현시켜 달라. 그런 다음 청년들에게 책임을 전가해도 늦지 않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의 여타 나라 청년들 중 대한민국에서처럼 치열한 과정을 겪는 이들이 있는가? 동의할 수 없다. 그리스 청년들이 작은 생채기에 아우성치는 동안,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안고도 대한민국 청년들은 현실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묵묵히. 이 얼마나 고운 심성인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그리스 전역을 휩쓴 반정부 시위가 소강상태를 맞았다. 찢어진 채 을씨년스럽게 펄럭이는 그리스 국기가 당시의 혼란을 말해주고 있다.


바야흐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청년 수난시대'다. 씁쓸함을 달래고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올랐다. 눈앞에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를 기린 곳이다. 난국을 헤쳐 나갈 답을 구해보지만, 그녀는 말이 없다.

미궁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리스신화의 청년 테세우스가 떠올랐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다이달로스의 미로를 헤매는 테세우스처럼 우리 청년들은 꼬일 대로 꼬인 취업시장에서 방황하고 있다.

테세우스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그를 사모하던 아리아드네 공주의 도움으로 청년은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온다. 입구에서부터 공주가 전해준 실타래를 솔솔 풀어가며, 이를 이정표 삼아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의 끝은 어떨까? 우리에겐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있나? 무엇을 이정표 삼아 이 미로를 빠져나올 것인가? 영원히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건 아닌가?"

수없이 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난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궁금증이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