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할 때, 그 끝은 늘 참혹하다. 이긴 자는 사람이든 문화재든 진 자의 모든 것을 도륙한다. 힘의 균형이 기우는 순간 한쪽 문명은 폐허가 된다. 난무하는 살육과 파괴 속에 한 터럭의 자비도 없다.

'승자독식', 지난 10개월의 여정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미,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대륙을 막론하고 이 명제는 비켜간 적이 없다. 인류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문명이 힘의 논리에 스러져 갔는가. 잔혹하기 그지없는 인간사의 궤적을 훑다보면 번번이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현기증이 인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로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쳐 있다. 유럽대륙 너머 멀리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아시아 대륙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터키 이스탄불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코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던 여러 문명의 어우러짐, 지배와 피지배의 간극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승자의 관용, 2000년 고도 이스탄불은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승자독식'의 틀을 통쾌하게 무너뜨렸다.

이스탄불은 터키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역사 깊은 도시다. 도심을 관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동서로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을, 남북으로는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한다. 오래전부터 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종착지로서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던 만큼 이 도시는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아시아-유럽 사이 보르포루스 해협
동서양의 가교이자 문명충돌의 현장
'승자독식' 틀 깨고 기독-이슬람 공존


영토분쟁의 역사는 도시 이름의 변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로마 지배 하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접어들어 지금의 이름인 이스탄불로 굳어졌다. 지명과 함께 이스탄불을 둘러싼 패권 역시 변화를 겪었다. 기독교 문명의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이슬람교의 오스만투르크 시대로 권력이 이동한 것이다.

동서양의 가교 이스탄불에는 없는 게 없다. 터키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는 양 문명의 문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인간사에 만연해 있던 '승자독식'의 관행에 비추어 보자면, 패권을 쥔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철저히 파괴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복자는 폭력 대신 관용을 택했다. 그 덕에 이스탄불 내 동로마(비잔틴 제국) 시대의 기독교 유적을 비롯해 인근의 그리스 유적까지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관용을 베푼 주체가 다름 아닌 무슬림이었기 때문이다. 서구가 가공한 창을 통해 나는 이슬람이 호전적이고 무자비하다고 생각해왔다. 이곳 이스탄불에서 공고하게 굳어진 선입견의 벽을 허무는 동안 왜곡된 역사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구시가지에 우뚝 선 '아야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비잔틴 제국을 함락한 직후 오스만투르크는 파괴와 약탈을 금했다. 그들은 서구 기독교의 상징이던 소피아 성당을 가리켜 '같은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라며 보존을 명했다. 이후 성당은 무슬림 교회인 모스크로 사용됐다.

동서양의 가교 이스탄불에는 없는 게 없다. 터키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는 양 문명의 문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바다를 접한 이스탄불에는 해산물이 넘쳐난다. 낚시꾼들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의 관용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이스탄불 곳곳에서 목격한 타자에 대한 관대함은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로 각인된 이슬람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서구 사관의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오스만투르크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것도 이러한 관용 덕택인지 모른다. 대제국은 결코 총·칼로 유지될 수 없는 게 역사의 진리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배를 탔다. 이스탄불 유럽 측 영토인 '트라키야'를 출발해 아시아 쪽 땅인 '아나톨리아'까지 운행하는 배편이었다. 좁은 해협 사이로 아시아와 유럽이 지척에 놓여있다. 고갯짓만으로 양 대륙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멀리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가 마주보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상징물이 조화롭게 서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터키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트 바자르도 눈에 띈다. 실크로드의 종착지답게 시장엔 동·서양 문물이 한데 뒤섞여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은 동과 서, 고와 금이 함께 숨 쉬는 '관용'과 '공존'의 땅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Posted by 탄타로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보킈 2009.04.20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거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유럽역사도 같이 알아가는 거 같아 재밌어요., 유럽역사를 알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추천좀

    • 탄타로스 2009.04.23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 아래, <북반구어딘가>님 말씀대로,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추천합니다. 또 엄밀히 역사 책은 아니지만, 권삼윤씨의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 추천합니다. 동서양의 차이를 먹거리와 연관지어 꽤 흥미롭게 읽힙니다.

  2. 님의 글을 읽으면 왠지.. 2009.04.20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구는 무조건 악이면 불평등을 만드는 나쁜세력이고 이슬람은 관용을 베푸는 세력인것 같은 느낌이듭니다. 어떻게 소피아 성당이 남아있다고 이슬람이 관용을 배풀었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스페인에 있는 수많은 이슬람 사원들은 가톡릭에서 관용을 베풀어 남아있는 것이겠네요.. 공부좀 하세요. 이스탐불에 사는 카토릭 신자들이 피박을 받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하시면 사람의 외양만 보고 그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본래 역사관이라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서구의 역사관이 나쁘다 볼수 많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책보다는 훨씬 객관적이고 방대한 자료가 풍부하니까요.

    • 애비 2009.04.21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야 말로 공부를 좀 하세요.
      콘스탄티노플이 침략당한 역사를 볼때 같은 기독교(십자군)에 의한 약탈이 더 무자비하고 잔인했었답니다. 동시대의 무슬림세력은 당시의 서구 기독교(카톨릭) 문명에 비해 과학기술이나 문화면에서 뿐만 아니라 포용력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더 선진적인 집단이었습니다. 스페인이 고토회복중에 자행한 심각한 문명파괴가 어느정도였는지도 더 공부좀 하셔야 겠구요.

    • 허걱.. 2009.04.21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뭐병이네요.글쓴이의 글 어디에서 서구는 무조건 악이란 식의 글이 있죠? 서구의 눈에 의해서 왜곡된 이슬람 문명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안보이나요? 님은 공부 이전에 기본적인 글부터 읽는 훈련을 하세요.

    • Conor 2009.04.21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은 아예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의 씨를 말렸지. 다 때려 부수고 간신히 몇 개 남긴 것 중의 하나가 알함브라 정도.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서는 아즈텍이나 잉카의 문서들을 다 파괴하는 바람에 남아메리카의 고대사를 미스터리로 만들어 놓질 않나.

    • 흐음.. 2009.04.22 0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사람 왠지 기독교 일 것 같다..

  3. 북반부 어딘가 2009.04.2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스페인과 오토만 제국의 타 종교 대우하는 법은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님의 글을 읽으면 왠지' 님,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물론 아나토이아 반도 (지금의 터키) 가 착한사람들만 살았던곳은 절대 아닙니다. (사람사는곳인데 다 똑같죠 뭐.)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왠지 종교적 관용이 많았어요. 이슬람이 꼭 그렇다고 관용의 종교라는것은 아니지만 이지역에서는 이슬람교들이 굉장히 타 종교를 용납했었더라고요.

    한편 같은 시대 즈음 (16세기? 숫자에 약한터라..) 스페인에서는 Inquisition (한국말로는 뭔지 모르겠네요..)정책을 펼쳐서 이슬람인들이나 유대인을 다 죽이거나 추방시켰다지요.. 물론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그당시 스페인을 통일 시키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Isabella와 Ferdinand의 정치적 목적이였지만 이들이 카톨릭 신자였던것은 부인할수 없겠죠..

    유럽역사는 (땅덩이도 조그만게) 꽤 많은 비극과 인종/종교 차별들로 가득차있는 편입니다. 물론 가장 잘 알려졌기에 가장 심해 보이는것 같을수도 있겠네요..

    유럽인들이 인정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들의 오래된 우방인 북미에서는 인정하는 역사관인것 같네요..

    역사책은... 그냥 여러가지 많이 읽으세요. 손에 닽는대로.. 여러 가지 많은 책을 읽어야 여러가지 역사관을 고르게 경험하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만들수 있으니..

    만일 처음으로 유럽역사를 접하시는 터라 부담스러우시면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책 시리즈로 시작하시면 좋겠네요. 저같은 경우는 그 만화책들에서 지금 아는 유럽역사의 기초토대를 다 얻은듯...

    그후에 읽은 책들로는 이책들 내용들에 빠진것을 보충하는 정도였던것 같음...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4. 산체스 삐즈후안 2009.04.21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이슬람이 타종교에 관대했던건 사실인데 오스만제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역사적 팩트는 근거가 없는데요.

    스페인 거주하면서 듣고 본 바로 양쪽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그래도 레꽁끼스타 이후의 스페인쪽이 오스만보다는 조금 더 나은거 같네요.

  5. Favicon of http://333hun.tistory.com BlogIcon 세미예 2009.04.21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문명충돌의 지역이었네요. 문명뿐만 아니라 종교의 완충지대이자 충돌지대이기도 하고요.
    그런 역사속을 잘 헤쳐 공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6. 마야 2009.04.2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고싶던 터키여행을 지금 준비하고 있어서 님의 글이 피부로 다가옵니다. 터키는 제게 '내 이름은 빨강'의 소설가 오르한파묵과 축구선수 '일한'의 나라죠. 그리스에 대한 글도 그렇고 여행 여정 속에서 사회를 읽는 님의 시각이 매우 깊이있어 보입니다.

    • 탄타로스 2009.04.23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이세요^^ 터키... 다시 한번 가고픈 나라입니다. 즐거운 여행하세요.

  7. 가나다 2009.04.2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이슬람이 관대해.... 마호메드가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코란 즉 알라를 믿지 않으면 죽였는데, 또는 큰 세금을 메기거나. 동양에서 서양으로 가는 중간에서 큰 시세차익을 노리고, 유목민인 만큼 강도짓하니 십자군이 만들어졌지.

    • 개독이구만.. 2009.04.21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금화를 삼켰을지도 모른다고 산채로 사람의 배를 갈라대는 돈에 환장한 악마인 십자군을 옹호하다니... 싸이코 개독답구나. 니네 야훼라는 잡귀가 그렇게 가르치디? 교회 목사같이 무식한 친구 말이나 믿고 있으니 그따위지. 불상때려부수는 니네 미개사막종교야 말로 지구에서 사라져야 할 종교다.

  8. abgp123 2009.04.2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스만투르크가 관용적이었던것은
    피정복민의 돈 때문이었지요. 어짜피 시작부터가 상인과 수컷의 종교였던 이슬람에서는
    만약 피 정복민이 금을 바칠수 만있다면 이슬람의 몇개의 계명과 부딪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더랍니다. 그리고 이익이 안된다고 생각했을때 안면에 철판깔고 모조리 뭉게 버렸지요.
    자기에게 반항한다고 "드라큘라"블라드 체뻬시의 아버지와 그 휘하의 보얄(귀족)들을
    개작살낸 화려한 과거가 묻혀서는 안되죠.
    어짜피 이익에 따라 흔들리는것입니다. 그리고 이재의 도가 밝았던 오스만의 술탄들은
    계산을 할줄 알았죠.
    성소피아성당으로 이슬람이 '관용'을 말씀하시는데 저런 아름다운건물을 부수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모르시는군요. 게다가 소피아를 둘러싼 4개의 모스크 미나렛은
    배경화면 정도로 보이싶니까?

    • 순진하시네요.... 2009.04.21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면 불국사 불지른 몽골군이나 잉카문명 박살낸 스페인군들도 무슨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고대사회에서 전쟁에서 이긴 군대가 약탈과 파괴를 하는 것은 거의 관행이나 다름없었는데 소피아 성당 부수는데 용기가 필요하다니요? 그러면 21세기에 바미얀의 불상들을 박살낸 탈레반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이겠군요.

      돈에따라 움직였으면 차라리 다행이지요. 광신적 믿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어차피 교회 목사들도 돈내놓으라고 신도들 세뇌하기 바쁠텐데요?

      그러면 오스만의 술탄들이 이재가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에 따라 움직여야 했단 말입니까? 기독교 원리주의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아서 불만이 있으신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남에 종교를 비방하는 종교는 더 천박해 보이네요.

  9. abgp123 2009.04.21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대채 순교하면 70명의 처녀가 기다리고있다는 (여자들은 모조리 레즈비언이 되란 말인지!)
    종교가 무슨 미래가있고 관용이 있다는 말인가요?
    과부 기둥서방한게 원통해서 이빨 부득부득 갈던 마호멧이 만든 종교인데.............

  10. 2009.04.21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이슬람은 기독교보다는 관대했지요. 유태교,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강제 개종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성전을 믿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도 발칸반도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강제개종이 행해진 적 없습니다. 북아프리카(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라라고 하는 로마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구 중 3개가 있었던)에서도 강제개종은 없었습니다. 7-8세기에 이슬람에 정복되지만 실제로 이지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콥트어, 아람어 등의 언어를 아랍어로 바꾸게 된 것은 오히려 9-10세기 이슬람 분열기예요. 즉 이슬람 정치 세력이 약해 졌을 때 오히려 이 지역의 절대 다수 인구가 아랍화, 이슬람화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기독교 단성론자로 낙인찍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에 의해 탄압받았던 역사도 한 몫합니다만..)

    지하드(성전) 개념은 오히려 이슬람 초기 아라비아 부족 통일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이고, 제국확장기에는 적용안 됩니다. 문명이 아이들 장난이 아니고 그런 강압책만 있었다면 오히려 반발때문에 지배가 불가능해지지요. 그렇게 빠른 시간에 이슬람이 이전의 로마 제국 영토의 절반 이상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의 관용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그 반대는 전혀 아닙니다.

  11. 2009.04.21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슬람 통치자(특히 오스만 투르크)는 오히려 이교도를 우대했어요. 왜냐면 이슬람은 이론적으로 '움마'라고 하는 평등한 정치, 종교 공동체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 술탄(황제)의 전제권력을 확장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전제 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고 싶어도 이슬람 교리에 따라 신자는 자선세(자카트)만 내면 의무가 끝나기 때문에 함부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었어요. 그럴 경우 이슬람 공동체 내의 이슬람 신학자, 법학자(셰이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교도들은 인두세를 내기 때문에 술탄의 재정에 플러스 요인이 되지요. 또 이슬람 교리에 고리대와 이자놀이를 금지하기 때문에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이익(이슬람 지역은 상업이 발전된 지역이예요. 옛날부터)에 세금을 때리고 싶어도 쉽지 않지요. 그렇지만 이교도들에게는 가능하지요.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는 제국 전역에 걸쳐서 그리스인, 유대교도, 아르메니아인,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 이집트 콥트교도, 시리아 기독교도 들을 고용해서 어영상인으로 삼고, 심지어는 세금 징수까지도 시켰어요. 물론 이들은 술탄의 보호를 받았고..(집단 거주 지역이 있었지만,, 유럽의 게토처럼 강제격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형식)

    또 오스만 투르크는 이슬람 세계에 나중에 들어온 투르크계 종족이예요. 따라서 기존의 이슬람 세력 및 아랍인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도 이교도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발칸 반도에 대해서도 전혀 개종정책이 행해지지 않았고 발칸 출신들을 '예니체리 부대'로 편성해서 오히려 이집트, 아랍, 메소포타미아의 기성 이슬람세력-아랍인 들을 통제했어요. 심지어 아랍인들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서 루마니아 같은 지역은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 지도자(그리스 정교회)를 왕으로 보냈지요.

    어쨌든,, 이슬람 지역이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지역보다 종교적 관용이 많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전근대 유럽보다는 확실히 관용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니. 그리 아시길... 그리고 모르는 문제에 관해서는 함부로 댓글달지 마세요.. '카더라'는 신물나잖아요? 다들..?

  12. 2009.04.21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19세기 중반의 아르메니아, 그리스 대학살은 왜 일어났냐고 묻는다면,,, 그건 이미 그대 '민족주의'에 의한 '정치적 사건'이지 종교랑은 관계없는 거라고 얘기해야 되겠네요. 이전에 '술탄의 평화'아래 잘 지내던 이교도들이 서유럽에서 불어오는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이 각성이 되면서 '국가건설'요구-정치적 독립-가 생겨나면서 투르크 술탄의 타격을 받았던... 이건 챠르 러시아 치하의 여러 지역과 같은 상황이니. 종교와는 상관없어요.

  13. 개복치 2009.04.21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은 관용하지 않다로 논쟁이 붙은 거 같은데(반대쪽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 같고)

    인구통계학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어요

    '인류가 적정수준으로 머무르는데 제일 큰 공헌을 한 것은 기독교이다'

    기독교가 살인, 방화, 파괴, 약탈, 전쟁 등으로 인간을 많이 죽인 것을 말하는 것이죠

    이슬람이 상술적인 면이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기독교보다는 수백배 관대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가르치는 것만 달달 머리 속에 넣지 말고 세계를 크게 보세요

  14. 사피아 2009.04.22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애인이 터키에 있어...그를 만나러 갈거야..터키 남자야....역시 이스탄불 살지

  15. Favicon of http://blog.daum.net/ligase BlogIcon ring 2009.04.22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히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16. 김대현 2009.04.23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월에 신혼여행으로 이스탄불 갔다왔는데....위 사진을 보니까..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이스탄불만보면 서울하고 비교해도 못사는곳 아니구요...
    사람들도 친절하구 볼것도 많고 한번더 가고 싶네요..ㅎㅎㅎ
    근데 입장료가 생각보다 많이 비쌉니다.. 톨로 시작하는 궁전 26000원정도.아야 저기도 20000만원정도..
    먹는음식도 그렇구.ㅎㅎ

  17. 행인 2009.04.2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하면서 사실보단 이분법 논리만 가득 싣고 오진 마세요

저렇게 춤 추다가 죽는 거 아닐까...

내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라는 지명을 처음 들은 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서였다. 여행을 시작하기 한 해 전으로 기억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 뮤지컬은 잘 알려진 대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를 원작..

중동 모래사막에서 미아 될 뻔한 사연

주말에 술을 좀 마셨습니다. 사실 과음했습니다. 간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나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날이 꼴딱 새는 줄 모르고…. 선배들껜 죄송한 말씀이나 서른 줄에 접어드니 확실히 몸 상태가 전 같지 않습니다. 피 끓던 스무..

저의 세계일주를 소개합니다

부산일보에서 제 여행경험을 소개하고 싶단 제의를 해왔습니다. 세계일주 관련 기획을 하던 중 제 소식을 들었다네요. 누군가를 취재한 경험은 많지만, 막상 그 대상이 되려니 쑥스럽더군요. 창원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

이스터섬 모아이 빨간 모자의 비밀이 밝혀졌다?

세계일주 후 신문 읽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국제면부터 펴보는 습관이 생긴겁니다. 예전엔 1면부터 읽다가 국제면은 대충 훑고 넘어갔더랬습니다. 기껏해야 제목 혹은 리드문단에만 잠깐씩 눈길을 주곤 했죠. 지금은 국제면을 꼼..

히말라야 중턱에 한국의 수제비를 파는 집이 있다

점심에 수제비를 먹었습니다. 일명 '항아리 수제비', 항아리만큼 커다란 그릇에 한가득 담긴 수제비가 참 맛났습니다. 문득 히말라야 중턱에서 먹었던 '뗌뚝'이 떠오릅니다. 추억의 부스러기 네번째 이야기…… 향신료가 강한 인도 음..

히말라야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가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까지 단 1개 봉우리만을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3일 8068m 가셔브룸Ⅰ정상을 밟은 오 씨가 마지막 남은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할 경우, 여성으로..

한국 청양고추의 자존심을 걸고 멕시코인과 매운맛 대결

‘세계일주증후군’의 여파로 무직 증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발적 백수라 딱히 조급하거나 초조하진 않네요. 다만 함께 놀 이가 없어 조금 적적합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입에 단 내 날 정도로 혼자다녔으니 말이죠..

죽었다 살아나는 섬을 아는가?

<옴팡지게 쏟아집니다. 이놈의 장맛비! ‘후두둑’하고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백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듭니다. 달력을 보니 세계여행을 끝내고 한국 들어온 지 딱 석 달이 되는 날입니다. ‘세계일주증후군’의 여파로 무직 증상에 시..

"1년간의 세계일주", 내가 바라본 지구촌 6대륙

아시아 저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 범주를 넓히면 동북아시아인, 더 확장하면 아시아인이 됩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을 테지요. 낯 뜨거운 고백이지만 여행 전 저는 스스로가 뿌리박고 사는 아시아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아시아 ..

156명이 죽었답니다. 제 친구들은 무사할까요?

비보를 접한 지금 가슴이 먹먹합니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중국 공안의 무차별 폭력으로 156명이 목숨을 잃었다지요. 신장위구르는 티베트와 더불어 중국의 강제 병합 아래 신음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해 4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