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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이스탄불은 문명충돌 위기 어떻게 극복했나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할 때, 그 끝은 늘 참혹하다. 이긴 자는 사람이든 문화재든 진 자의 모든 것을 도륙한다. 힘의 균형이 기우는 순간 한쪽 문명은 폐허가 된다. 난무하는 살육과 파괴 속에 한 터럭의 자비도 없다.

'승자독식', 지난 10개월의 여정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미,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대륙을 막론하고 이 명제는 비켜간 적이 없다. 인류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문명이 힘의 논리에 스러져 갔는가. 잔혹하기 그지없는 인간사의 궤적을 훑다보면 번번이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현기증이 인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로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쳐 있다. 유럽대륙 너머 멀리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아시아 대륙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터키 이스탄불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코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던 여러 문명의 어우러짐, 지배와 피지배의 간극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승자의 관용, 2000년 고도 이스탄불은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승자독식'의 틀을 통쾌하게 무너뜨렸다.

이스탄불은 터키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역사 깊은 도시다. 도심을 관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동서로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을, 남북으로는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한다. 오래전부터 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종착지로서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던 만큼 이 도시는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아시아-유럽 사이 보르포루스 해협
동서양의 가교이자 문명충돌의 현장
'승자독식' 틀 깨고 기독-이슬람 공존


영토분쟁의 역사는 도시 이름의 변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로마 지배 하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접어들어 지금의 이름인 이스탄불로 굳어졌다. 지명과 함께 이스탄불을 둘러싼 패권 역시 변화를 겪었다. 기독교 문명의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이슬람교의 오스만투르크 시대로 권력이 이동한 것이다.

동서양의 가교 이스탄불에는 없는 게 없다. 터키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는 양 문명의 문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인간사에 만연해 있던 '승자독식'의 관행에 비추어 보자면, 패권을 쥔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철저히 파괴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복자는 폭력 대신 관용을 택했다. 그 덕에 이스탄불 내 동로마(비잔틴 제국) 시대의 기독교 유적을 비롯해 인근의 그리스 유적까지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관용을 베푼 주체가 다름 아닌 무슬림이었기 때문이다. 서구가 가공한 창을 통해 나는 이슬람이 호전적이고 무자비하다고 생각해왔다. 이곳 이스탄불에서 공고하게 굳어진 선입견의 벽을 허무는 동안 왜곡된 역사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구시가지에 우뚝 선 '아야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비잔틴 제국을 함락한 직후 오스만투르크는 파괴와 약탈을 금했다. 그들은 서구 기독교의 상징이던 소피아 성당을 가리켜 '같은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라며 보존을 명했다. 이후 성당은 무슬림 교회인 모스크로 사용됐다.

동서양의 가교 이스탄불에는 없는 게 없다. 터키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는 양 문명의 문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바다를 접한 이스탄불에는 해산물이 넘쳐난다. 낚시꾼들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의 관용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이스탄불 곳곳에서 목격한 타자에 대한 관대함은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로 각인된 이슬람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서구 사관의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오스만투르크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것도 이러한 관용 덕택인지 모른다. 대제국은 결코 총·칼로 유지될 수 없는 게 역사의 진리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배를 탔다. 이스탄불 유럽 측 영토인 '트라키야'를 출발해 아시아 쪽 땅인 '아나톨리아'까지 운행하는 배편이었다. 좁은 해협 사이로 아시아와 유럽이 지척에 놓여있다. 고갯짓만으로 양 대륙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멀리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가 마주보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상징물이 조화롭게 서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터키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트 바자르도 눈에 띈다. 실크로드의 종착지답게 시장엔 동·서양 문물이 한데 뒤섞여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은 동과 서, 고와 금이 함께 숨 쉬는 '관용'과 '공존'의 땅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