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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거대한 '모아이' 정말 외계인 아닐까?

섬은 본디 외롭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서서 늘 대상을 그려야 하는 숙명 탓이다. 뭍에서 수십 리만 떨어져도 그러한데,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곳에 자리한 섬은 오죽하랴. 이런 의미에서 이스터섬(Easter Island)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섬이다.

고독한 섬은 말이 없다

아후통가리키의 모아이. 해변을 등지고 육지를 바라보고 있는 석상은 수 백 년 동안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칠레령의 이스터섬은 본토에서 무려 3800km나 떨어져 있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이 화산섬으로 가기 위해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탔다. 5시간을 쉼 없이 날아서야 태평양 한 가운데 오도카니 자리한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섬의 원래 이름은 원주민 언어로 '큰섬'을 뜻하는 '라파누이'다. 이스터섬이란 명칭은 네덜란드 탐험가가 1722년 부활절(Easter day)에 섬을 발견한 데서 유래했다. 1888년 칠레가 섬을 소유한 이후 스페인어로 '이슬라데파스쿠아'라 명명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이스터섬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제국주의 냄새가 짙게 밴 '이스터섬'이나 '이슬라데파스쿠아'보다 '라파누이'란 본래 이름이 맘에 든다. 저들이 크리스마스에 제주도를 발견하고는, 제 멋대로 '크리스마스섬' 따위로 부른다면 얼마나 어이가 없겠는가.

이스터섬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거대한 인면석상 모아이 때문이다. 1m의 작은 석상에서부터 30m에 이르는 거대한 석상까지 이스터섬에는 550여 구의 모아이가 있다. 누가 무슨 연유로 모아이를 만들었는지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또 학계에선 당시 기술로 수십 톤의 돌덩이를 정교하게 깎고, 이를 해안 곳곳으로 옮긴 사실을 불가사의하게 여기고 있다.

한때 울창한 야자수림으로 가득했던 이스터섬은 인간의 탐욕으로 나무 한 그루 없는 황폐한 섬으로 변했다.

이런 까닭에 부풀리기 좋아하는 몽상가들은 외계인설을 주장하거나, 모아이가 스스로 걸어 다니는 신물이었다고 믿는다. 황당한 얘기 같지만 실제 섬을 둘러보면 '진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든다. 그 만큼 섬은 신비로 가득하다.

나는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려 섬을 돌아보았다. 야간 조명등, 나침반, 지도 등의 장비와 먹을거리로 가득 찬 배낭을 두르고 고고학자라도 된 양 모아이를 찾아 나섰다.

모아이는 주로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아후'라 불리는 제단 위에 우뚝 선 모아이의 자태는 웅장했다. 이들 모두 섬의 동쪽에 자리한 라노라라쿠 언덕에서 만들어졌다. 모아이 제조 공장에 해당하는 라노라라쿠에서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해안까지 이 거대한 모아이가 옮겨진 것이다.

섬은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황량하다. 모아이 이동에 사용할 목재 지렛대나 수레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어림잡아 수천 명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민의 인력만으로 이를 행하는 것 역시 믿기 힘든 일이다.

이 때문에 이스터섬의 모아이는 한 동안 고고학계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방사선탄소연대법 등 새로운 측정기법이 등장한 후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학계에서는 모아이가 만들어진 시기의 이스터섬은 산림으로 울창했을 거라 추측한다. 또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원주민이 살았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섬이 급속히 쇠퇴, 결국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섬으로 전락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먼저 자멸설이다. 각 부족들이 경쟁적으로 모아이 석상을 만들면서 무리하게 목재를 채벌한 결과 토양침식으로 섬이 황폐화됐다는 것이다. 원주민 스스로가 사람과 가축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이는 오랫동안 정설처럼 굳어졌고, 이스터섬은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됐다.

하지만 최근 이에 반하는 가설이 나왔다. 자멸설은 이스터섬을 침략한 자들의 자기합리화일 뿐 섬의 황폐화는 오히려 외부인 때문이라 것.

반대측은 유럽인이 원주민을 노예로 끌고 가 섬의 인구가 급속히 줄었다고 주장한다. 또 산림고갈 역시 이들의 배에 섞여 들어온 쥐떼가 급격히 증가, 야자나무 씨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 탓이라고 믿는다.

진실은 모아이만이 안다. 자멸설이든 타멸설이든 하나같이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란 점에서 이스터섬이 주는 교훈을 허투루 여겨선 안된다.

모아이를 만들던 라노라라쿠 언덕에는 제작 도중 무너져 머리만 남은 모아이가 가득하다.


[지구별 단상]"모아이, 넌 이 섬의 진실을 알고있지?" 
 
모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진실을 알고 있지? 어째서 섬이 이 지경이 된거니?"

침묵으로 일관하던 녀석은 내가 물러서지 않고 채근하자 그제야 입을 연다.

"개구리는 시내나 도랑에서 나는데 꼭 인가의 계단이나 뜰 사이를 기웃거려. 그러다 닭에게 잡혀 번번이 목숨을 잃지. 개구리가 저 있어야 할 데 있지 않고, 인가를 찾는 이유는 땅이 기름져 벌레가 많기 때문이야. 한 끼 배불리 먹자고 목숨을 버리는 셈이지. 작은 이익만 보고 후에 따를 재앙은 생각지 못하는 거야. 세상엔 인간개구리가 너무 많아."

그렇다. 세상에는 인간개구리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