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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8개국 청년들과 아프리카를 횡단하다

'마릴린 먼로', 멀리서 그녀가 다가온다. 이름에서 풍기는 요염한 이미지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육중한 몸이 꽤 듬직하다는 인상을 준다. 한 차례 굉음과 함께 그녀가 멈춰 섰다. 마릴린은 우리를 오지로 이끌 캠핑차다.

안전과 직결된 주요 임무를 띤 만큼 구성원 모두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이름을 지어준 이유다.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스왑콥문트. 산악 오토바이로 사막을 횡단하자,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트럭킹'을 통해 본격적으로 남부아프리카 나미비아 여행에 나섰다. 트럭킹(Trucking)이란, 트럭을 개조해 만든 캠핑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종·횡단하는 것을 뜻한다. 텐트 한 동에 의지해 잠을 자고, 직접 끼니를 지어먹는 야영생활이 어떨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수천 종의 동식물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보고, 문명을 등진 채 살아가는 원주민,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사막과 초원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 속에 몸을 내맡기는 일은 분명 짜릿한 경험이다. 이런 까닭에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아프리카로 몰려들고 있다.

8개국 여행자 22명 일주일간 나미비아 '트럭킹'

우리 팀은 짐바브웨 출신 가이드 타바니를 중심으로 한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대만, 영국, 미국 등 8개국 22명으로 꾸려졌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끝내고 마릴린에 올랐다. 모두 말이 없다. 문화와 언어의 높다란 벽은 첫 만남의 어색함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미비아로 넘어가는 길목인 서더버그(Cederberg)에서 첫 야영을 시작했다. 텐트를 치는 일부터 밥 짓고 배식하는 일까지 낯설지 않은 게 없다. 그나마 군 생활을 마친 한국 젊은이 3인방의 손놀림이 가장 빠르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치고 외국 친구들을 도왔다.

8개국 22명의 젊은이로 구성된 오지 탐험 팀.


네덜란드에서 온 로즈가 물었다.

"너희는 야영생활을 많이 해봤나봐. 굉장히 익숙해 보이네."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서 지겹도록 텐트치고, 밥도 지어먹고 그래."

"군대? 다들 직업이 군인이야?"

"그런 게 아니고…"

로즈에게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외국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한국에 대해 잘 아는 대만인 인디가 중간 중간 부연 설명을 도왔다. 다들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번 풀어 헤쳐진 '이야기 보따리'는 닫힐 줄 몰랐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며 웃음꽃이 핀다. 어느새 악수를 청하고 어깨동무 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우리 앞의 벽은 그렇게 하나 둘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쏟아지는 별 빛 아래서.

"내일은 새벽 일찌감치 출발해야 합니다. 늦어도 5시 30분까지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릴린에 탑승해야 해요."

"어휴~"

팀장 가이드 타바니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 숨이 새어 나왔다. 출발시간에 맞추려면 적어도 새벽 4시 30분엔 일어나야했기 때문.

'듄45' 해돋이 장관·스왑콥문트 풍경에 넋 잃어

여정 닷새 째, 이번 트럭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듄(Dune)45'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두들 내일 펼쳐질 장관의 가치를 알기에 토를 달지 않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막 모래언덕인 듄45.


듄45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 모래언덕이다. 벌건 해를 머금은 사구 앞에 서면, 경험 많은 사진작가들조차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그 모습이 경이롭단다.

"어이! 다들 일어나라고."

이른 새벽녘, 먼저 일어난 친구들이 텐트 사이를 오가며 잠에 취한 이들을 깨웠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둡다. 여기저기서 손전등 빛이 어지러이 춤춘다. 마른 숨을 헐떡이던 마릴린이 힘겹게 엔진을 가동했다. 그녀 역시 장도에 지친 모양이다. 일제히 차에 올랐다. 피곤할 법도 한데, 다들 눈이 반짝인다. 마음들은 벌써 듄45를 오르고 있는 듯했다.

황량한 사막을 40분 남짓 달리자, 눈앞에 거대한 사구의 형체가 느껴졌다. 듄45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도한 녀석이다.

애타는 마음으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먼발치서 동이 터 올랐다. 벌건 빛이 모래언덕 한 쪽 면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반대편 경사면엔 검게 그림자가 졌다. 한 쪽은 빛을 받아 눈이 부실정도로 반짝이고, 다른 쪽은 칠흑처럼 어둡다. 선명한 색의 대비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듄45가 자리한 소쑤스플라이. 현지 가이드가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한 법을 설명하던 중 도마뱀을 잡아먹는 시늉을 하고 있다.

듄45의 감동을 뒤로한 채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스왑콥문트(Swakopmund), 나미비아 휴양도시로 유명한 이곳은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도시다. 메마른 사막 너머 일렁이는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막 옆에 바다라니!

그 생경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사막을 횡단, 해안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쿼드바이크(Quad Bike)라 불리는 네 발 달린 산악용 오토바이를 빌렸다. 구불구불한 모래언덕을 넘어 사막 한 가운데를 달리자니, 그 옛날의 카라반이라도 된 기분이다. 낙타대신 성능 좋은 오토바이가 있고, 교역품을 싣는 대신 한 가득 모험심을 실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뜨거운 모래 바람에 숨이 막힐 즈음, 어디선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풍겨왔다. 바다다. 진짜 사막 코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금방이라도 마른 땅을 적실 기세로 파도가 밀려든다.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그 사이 여정 일주일이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