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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저의 세계일주를 소개합니다

부산일보에서 제 여행경험을 소개하고 싶단 제의를 해왔습니다. 세계일주 관련 기획을 하던 중 제 소식을 들었다네요. 누군가를 취재한 경험은 많지만, 막상 그 대상이 되려니 쑥스럽더군요. 창원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 시간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뱉어 낸 것 같은데, 신문지면은 '축약'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못다 실린 얘기는 이곳 블로그를 통해 공유할 생각입니다.  

아래는 부산일보 지난달 20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그래, 어디가 가장 좋던가요?"

지구 한 바퀴를 꼬박 돌고 왔다는 윤유빈(29·경남 창원시 반림동)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2008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정확히 365일 2시간 동안 5대양 6대주 30개 국가 135개 도시를 여행했다. 그에게 대뜸 물었다.

"100곳의 여행지엔 100가지 색깔이 있듯 여행지도 우열을 가릴 수는 없죠. 그래도 꼭 꼽으라면 남미를 택하겠습니다. 자연경관도 수려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열정적입니다. 1년 내내 축제 분위기에 사는 그들을 마주하면 에너지가 전이 되는 느낌을 받아요."

'지구별 누비기(jigubon.tistory.com)'라는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윤씨의 필명은 '탄탈로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음식을 훔친 죄과로 영원한 갈증과 굶주림의 형벌에 고통 받는 존재다. 윤씨가 세계 일주라는 모험에 나선 것도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같은 동경 때문이었다. 경남의 한 일간지에서 사회부 기자 생활을 하던 그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하면서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뒤져 6개월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지난해 4월 직장 생활을 통해 모아 둔 2천500만원의 여행 경비와 가방 3개를 짊어지고 중국을 시작으로 1년 간의 장도에 올랐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안정된 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갔을 때 얻을 것과 잃어야 할 것을 따져 보고. 결국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란 생각으로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 스스로를 다잡았죠."

'끊임없이 비우고, 끊임없이 배우자'는 다짐 아래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거쳐 북미와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순의 여정으로 남극을 제외한 '지구별' 대륙을 모두 섭렵하자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낯섦은 곧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아찔한 순간도 많이 겪었다. 중국 칭다오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윤씨가 떠나온 지 불과 3일 만에 쓰촨 성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사정을 모른 채 2주 뒤 태연히 집에 연락을 했을 때는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어렵게 구한 음식을 강도를 만나 빼앗기기도 했고, 실크로드를 지날 때는 꼬박 40시간 동안을 비좁은 열차에 웅크리고 있는 바람에 이틀 동안 앓아눕기도 했다. 여행 1년 만에 몸무게가 11㎏나 빠졌다.

무엇보다 힘든 건 지독한 외로움에 여행의 목표 의식과 방향성을 잃는 것. 장기 여행자들의 상당수는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여행의 매너리즘에 시달린다. 아름다운 풍광을 봐도 별 감흥을 못 느끼게 되고 결국 중도 귀국하고 만다.

"당장 비행기 표만 끊으면 편안히 돌아갈 수 있다는 악마 같은 유혹이 수시로 괴롭혔어요. 그럴 때 마다 내가 뭣 때문에 이 길을 나섰는지 초심을 되새겼죠."

윤씨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편견을 깬 것이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아 하면 '악의 축'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막상 가보니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시리아인이었어요. 반대로 쿠바의 경우 많은 여행서적들이 강아지도 춤을 추는 지상 낙원이라고 미화하지만 실상은 미국의 금수 조치 때문에 돈이 있어도 사 먹을 게 없어요."

긴 여행에서 돌아와 백수가 된 그는 요즘 여행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 다음은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 "후회요? 없습니다. 1년 동안 입에 단 내 날 정도로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더 단단해진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과 경험들이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되겠죠. 후회하지 않으려면 당장 짐을 꾸려 떠나보세요."

박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