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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

중동 모래사막에서 미아 될 뻔한 사연

주말에 술을 좀 마셨습니다. 사실 과음했습니다. 간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나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날이 꼴딱 새는 줄 모르고…. 선배들껜 죄송한 말씀이나 서른 줄에 접어드니 확실히 몸 상태가 전 같지 않습니다. 피 끓던 스무 살 시절엔 이틀을 달아 마셔도 ‘조각 잠’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종일 자도 숙취란 놈을 떼어 내기 힘듭니다. 뒤끝 중에서도 제일 괴로운 게 속병입니다. 평소에도 소화력이 왕성한 편이라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립니다. 술 마신 다음날은 아주 뒷간 문지방이 닳습니다. 뒤틀린 배를 움켜잡고 오만상을 쓰는 꼴이 제가 봐도 가관입니다. 하여튼 이놈의 ‘변’ 때문에 저는 고생을 참 많이 합니다. 세계일주 중 중동에서 미아가 될뻔 한 적이 있습니다. ‘변’ 때문에 겪은 ‘변(變)’이었지요.

추억의 부스러기 다섯 번째 이야기

                                                       <인디아나존스의 배경인 요르단 페트라>
 

시리아에서 요르단으로 이어지는 중동 여행의 백미는 역시 ‘잃어버린 도시’로 알려진 페트라다.

 

요르단 와디무사의 페트라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교차점에 위치, 선사시대부터 수 백 년 동안 상업의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다.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이 카라반의 도시는 6세기경 역사에서 모습을 감춘다. 여러 가설 중 지진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페트라는 1812년 무려 120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의 배경지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페트라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영화 속 인디애나 존스처럼 나는 고대도시를 찾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페트라를 보기 위해선 먼저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요르단 수도인 암만으로 가야했다. 이 때 열악한 대중교통이 발목을 잡았다. 양 도시를 잇는 대중교통은 버스가 유일하다. 물론 가난한 배낭여행에게 그림의 떡인 항공편을 제외하고서 그렇다. 명세기 국경을 넘는 국제버스지만 그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편수도 얼마 없을뿐더러 소요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어느 나라건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 우리로 치면 장거리 총알택시에 해당하는 자가용 운수업자들이 양 수도를 연결한다. 버스비보다 1.5배 정도 비싸지만 소요시간은 버스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빠르다. 시간을 금 쪽 같이 여기는 배낭족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나는 옹기종기 모인 택시 중 하나를 잡아타고 기사의 요구대로 돈을 지불했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도 택시는 꼼짝하지 않는다. 영어가 통할 리 만무하니 영락없이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30분이 넘어도 갈 기미가 안 보인다. 기사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다짜고짜 손가락 4개를 펴든다. 아뿔싸! 4명이 찰 때까지 운행을 안 한단 얘기였다. 그게 그 바닥의 법칙인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새벽같이 서둘러 나온 보람도 없이 3시간을 꼬박 버티고서야 택시가 출발했다. 정오를 훌쩍 넘긴 후다.


택시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지라 해가 지고서야 암만에 도착했다. 페트라가 있는 와디무사로 가기 위해선 다시 버스를 타야했다. 하루 종일 먹지 못한 탓에 속이 쓰려왔다. 하지만 와디무사 행 버스가 막차였던지라 공복을 부여잡고 버스에 올라야 했다.


이번엔 버스가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막차 출발시간은 지난 지 오래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와도 되는 분위기다. 올 때 보았던 버스정류장 입구의 케밥 집이 떠올랐다. 먹거리를 생각하자 배고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고민 끝에 잽싸게 입구로 뛰었다. 시계를 가리키며 케밥 집 주인을 다그쳤다. 포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케밥을 낚아채고는 부리나케 달렸다. 다행이다. 버스는 그 자리에 우직하게 서있다.


버스에 오르기 무섭게 게걸스럽게 케밥을 먹어치웠다. 행복했다. 한 숨 돌리고 나자 아랫배가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참으려 발버둥 칠수록 소화력 왕성한 장은 방금 삼킨 케밥 덩어리를 가차 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사막을 횡단하는 중동 버스다. 일단 출발하면 휴게소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뛰었다. 정류소 한편의 화장실에서 한바탕 일을 치렀다. 대충 옷을 추스르고 나왔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버스가 사라졌다. 가난한 여행자의 1년 치 생필품을 실은 채로.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여행을 통틀어 가장 고마운 은인이 ‘짠’하고 나타났다. 버스정류장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울상인 나를 보고는 그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패닉상태에 빠진 탓에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버스, 페트라, 화장실, 사라졌다“


횡설수설한 내 말을 알아들었나 보다. 어디선가 낡은 군용트럭을 몰고 오더니 타란다. 추격전이 벌어졌다. 버스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아는지 그는 차선을 바꿔가며 맹렬히 달렸다. 20여분을 달렸을까. 먼발치에 신호대기 중인 버스가 보였다. 트럭은 버스 꽁무니에 붙어 경적을 울려댔다. 갓길에 정차한 버스에 오르자 기사가 ‘씩’하고 웃는다. 이보다 더 능글맞을 순 없다. 육두문자가 나오려는걸 간신히 참았다. 인원체크도 안하냐고 따져 물으려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은인이 떠올랐다. 경황이 없던 터라 이름조차 묻지 못했다.


앞으로 또 중동에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기회가 닿는다면 요르단 암만에서 그를 찾아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암만 버스터미널에서 일하는 키 175cm 가량의 호리호리한 몸매, 수염이 얼굴을 뒤덮었던 아무개 씨께 감사드린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