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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주 후 신문 읽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국제면부터 펴보는 습관이 생긴겁니다. 예전엔 1면부터 읽다가 국제면은 대충 훑고 넘어갔더랬습니다. 기껏해야 제목 혹은 리드문단에만 잠깐씩 눈길을 주곤 했죠. 지금은 국제면을 꼼꼼이 톺아봅니다.

오늘자(9월 8일) 신문 국제면에 '모아이 빨간 모자의 비밀 밝혀져'란 제하의 기사가 눈에 띕니다. 모아이는 칠레령 이스터섬의 거대한 인면석상을 말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한국에선 서태지 뮤직비디오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수백구의 모아이 석상은 그 크기나 모양이 다양한데, 일부 모아이 머리위에 빨간색 모자가 씌어져 있습니다. 아래 모아이 사진 중 오른편 끝단의 모아이 머리 위에 둥근 덩어리가 씌어져 있는게 보이시죠? 기사에서 얘기하는 빨간 모자입니다.


모아이 몸통과 빨간 모자 제작에 사용된 돌은 그 재질이 서로 다릅니다. 몸통 제작에 사용된 돌은 그 성분과 출처가 일찌감치 밝혀졌지만, 빨간 모자 제작에 쓰인 돌에 대해선 그간 알려진 게 없었습니다. 오랜시간 이를 파헤친 학계가 드디어 빨간 돌 모자의 출처를 알아냈다는 게 기사의 요지입니다.

아래 사진은 화산섬인 이스터섬의 분화구입니다. 분화구 한 편이 부서진게 보이시나요? 이스터섬엔 이렇듯 드문드문 파인 분화구가 많습니다. 원주민들이 빨간 모자를 만들기 위해 붉은 화산암재를 캐낸 흔적이라네요. 분화구가 바로 빨간 모자 제작에 사용된 돌의 출처였던 것이죠. 이스터섬을 여행할 때 부서진 분화구를 보고 의아했는데 이제야 궁금증이 풀립니다.


근데 기사가 좀 불친철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기사는 이스터섬과 모아이에 관한 배경설명 없이 다짜고짜 빨간 모자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처럼 여행을 다녀왔거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이스터섬과 모아이에 대한 제 여행글을 첨부합니다. 

<이스터섬과 모아이
>


섬은 본디 외롭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서서 늘 대상을 그려야 하는 숙명 탓이다. 뭍에서 수 십 리만 떨어져도 그러한데,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곳에 자리한 섬은 오죽하랴. 이런 의미에서 이스터섬(Easter  Island)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섬이다.


칠레 령의 이스터섬은
본토에서 무려 3800km나 떨어져 있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이 화산섬으로 가기위해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탔다. 5시간을 쉼 없이 날아서야 태평양 한 가운데 오도카니 자리한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섬의 원래 이름은
원주민 언어로 ‘큰섬’을 뜻하는 ‘라파누이’다. 이스터섬이란 명칭은 네덜란드 탐험가가 1722년 부활절(Easter day)에 섬을 발견한 데서 유래했다. 1888년 칠레가 섬을 소유한 이후 스페인어로 ‘이슬라데파스쿠아’라 명명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이스터섬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제국주의 냄새가 짙게 베인 ‘이스터섬’이나 ‘이슬라데파스쿠아’보다 ‘라파누이’란 본래 이름이 맘에 든다. 저들이 크리스마스에 제주도를 발견하고는, 제 멋대로 ‘크리스마스섬’ 따위로 부른다면 얼마나 어의가 없겠는가.


이스터섬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거대한 인면석상 모아이 때문이다. 1m의 작은 석상에서부터 30m에 이르는 거대한 석상까지 이스터섬에는 550여 구의 모아이가 있다. 누가 무슨 연유로 모아이를 만들었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또 학계에선 당시 기술로 수 십 톤의 돌덩이를 정교하게 깎고, 이를 해안 곳곳으로 옮긴 사실을 불가사의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까닭에 부풀리기 좋아하는 몽상가들은 외계인설을 주장하거나, 모아이가 스스로 걸어 다니는 신물이었다고 믿는다. 황당한 얘기 같지만 실제 섬을 둘러보면 ‘진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든다. 그 만큼 섬은 신비로 가득하다.


나는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려 섬을 돌아보았다. 야간 조명등, 나침반, 지도 등의 장비와 먹거리로 가득 찬 배낭을 두르고 고고학자라도 된 양 모아이를 찾아 나섰다.


모아이는 주로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아후’라 불리는 제단 위에 우뚝 선 모아이의 자태는 웅장했다. 이들 모두 섬의 동쪽에 자리한 라노라라쿠 언덕에서 만들어졌다. 모아이 제조 공장에 해당하는 라노라라쿠에서 수 십 킬로나 떨어진 해안까지 이 거대한 모아이가 옮겨진 것이다.


섬은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황량하다. 모아이 이동에 사용할 목재 지렛대나 수레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어림잡아 수 천 명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민의 인력만으로 이를 행하는 것 역시 믿기 힘든 일이다.


이 때문에 이스터섬의 모아이는 한 동안 고고학계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방사선탄소연대법 등 새로운 측정기법이 등장한 후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학계에서는 모아이가 만들어진 시기의 이스터섬은 산림으로 울창했을 거라 추측한다. 또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많은 수의 원주민이 살았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섬이 급속히 쇠퇴, 결국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섬으로 전락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먼저 자멸설이다. 각 부족들이 경쟁적으로 모아이 석상을 만들면서 무리하게 목재를 채벌한 결과 토양침식으로 섬이 황폐화 됐다는 것이다. 원주민 스스로가 사람과 가축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이는 오랫동안 정설처럼 굳어졌고, 이스터섬은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됐다.


하지만 최근 이에 반하는 가설이 나왔다. 자멸설은 이스터섬을 침략한 자들의 자기합리화일 뿐 섬의 황폐화는 오히려 외부인 때문이라 것.


반대측은 유럽인이 원주민을 노예로 끌고 가 섬의 인구가 급속히 줄었다고 주장한다. 또 산림고갈 역시 이들의 배에 섞여 들어온 쥐떼가 급격히 증가, 야자나무 씨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 탓이라고 믿는다.


진실은 모아이만이 안다. 자멸설이든 타멸설이든 하나같이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란 점에서 이스터섬이 주는 교훈을 허투루 여겨선 안된다.


<지구별단상>



모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진실을 알고 있지? 어째서 섬이 이 지경이 된거니?”

침묵으로 일관하던 녀석은 내가 물러서지 않고 채근하자 그제야 입을 연다.

“개구리는 시내나 도랑에서 나는데 꼭 인가의 계단이나 뜰 사이를 기웃거려. 그러다 닭에게 잡혀 번번이 목숨을 잃지. 개구리가 저 있어야 할 데 있지 않고, 인가를 찾는 이유는 땅이 기름져 벌레가 많기 때문이야. 한 끼 배불리 먹자고 목숨을 버리는 셈이지. 작은 이익만 보고 후에 따를 재앙은 생각지 못하는 거야. 세상엔 인간개구리가 너무 많아.”

그렇다. 세상에는 인간개구리가 너무 많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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