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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누비기'에 해당되는 글 52건

  1. 2009.10.26 저렇게 춤 추다가 죽는 거 아닐까... (7)
  2. 2009.09.28 중동 모래사막에서 미아 될 뻔한 사연 (10)
  3. 2009.09.17 저의 세계일주를 소개합니다 (17)
  4. 2009.09.09 이스터섬 모아이 빨간 모자의 비밀이 밝혀졌다? (10)
  5. 2009.08.30 히말라야 중턱에 한국의 수제비를 파는 집이 있다 (17)
  6. 2009.08.07 히말라야는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7)
  7. 2009.08.02 한국 청양고추의 자존심을 걸고 멕시코인과 매운맛 대결 (7)
  8. 2009.07.15 죽었다 살아나는 섬을 아는가? (9)
  9. 2009.07.14 "1년간의 세계일주", 내가 바라본 지구촌 6대륙 (13)
  10. 2009.07.08 156명이 죽었답니다. 제 친구들은 무사할까요? (64)
  11. 2009.06.28 한국은 구제불능한 나라라더니... (10)
  12. 2009.05.19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가는 한류(?) (13)
  13. 2009.05.04 365일 두시간만에 여행이 끝났습니다 (44)
  14. 2009.04.29 야생사자를 보니 인간의 욕심이 부끄러웠다 (27)
  15. 2009.04.28 8개국 청년들과 아프리카를 횡단하다 (4)
  16. 2009.04.26 만델라 이후에도 인종차별은 살아 있었다 (33)
  17. 2009.04.24 피라미드 정상엔 바가지 상술이 있었다 (9)
  18. 2009.04.22 시리아 여행에서 편견의 무서움을 알았다 (36)
  19. 2009.04.22 여행길에서 나의 편견과 이중잣대를 생각하다 (4)
  20. 2009.04.21 이스탄불은 문명충돌 위기 어떻게 극복했나 (34)
  21. 2009.04.20 유럽에 비해 한국청년들은 너무 착하다 (168)
  22. 2009.04.19 단조로운 유럽보다 모로코의 혼잡함이 좋다 (9)
  23. 2009.04.18 세계여행길에서 느낀 서양과 동양의 차이 (8)
  24. 2009.04.17 여행길에 맞은 서른, 나에게 길을 묻다 (13)
  25. 2009.04.17 마추픽추에서 가진자의 잔혹함을 보았다 (12)
  26. 2009.04.16 에콰도르의 불평등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8)
  27. 2009.04.14 눈앞 이웃나라…그러나 넘기 힘든 국경 (1)
  28. 2009.04.14 어제도 한 장…오늘도 한 장…책 없이 독서를 한다
  29. 2009.04.14 세계의 끝에 선 기분을 아시나요? (9)
  30. 2009.04.13 아르헨티나에서 실컷 쇠고기를 먹었다 (1)
 

내가 스페인의 안달루시아라는 지명을 처음 들은 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를 통해서였다. 여행을 시작하기 한 해 전으로 기억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 뮤지컬은 잘 알려진 대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곱추>를 원작으로 한다. 극 중반께 여주인공 에스메랄다가 부르는 노래가 있다. <보헤미안>이란 곡인데 가사 중에 안달루시아가 자주 등장한다. 집시였던 에스메랄다는 유랑생활을 숙명으로 여기던 그들 조상과 마찬가지로 떠도는 생활에 익숙하다. 파리에 정착한 그녀는 삶이 고달플 때면 이 노래를 부르며 집시에게 자유를 선사했던 안달루시아를 그린다.


“맨 발로 뛰놀았던 그곳,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안달루시아!”


그래서일까. 내 상상 속 안달루시아는 집시 에스메랄다를 닮았다. 아리따운 외모에 쾌활한 성격, 자유분방하고 생동감 넘치던 그녀의 이미지는 그대로 안달루시아에 투영됐다. 스페인 아니 유럽 여행을 통틀어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주저 없이 안달루시아를 꼽았던 이유다.


안달루시아의 주도 세비야에 도착하고서 나는 환호성을 내질렀다. 눈앞의 풍경이 내가 그려왔던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때의 영화로움을 뽐내려는 듯 안달루시아 곳곳에 남아있는 이슬람의 흔적, 가톨릭 문화와 더불어 도심을 수놓고 있는 그 모습이 생경하다. 성당의 첨탑과 이슬람을 상징하는 격자 타일의 어색한 동거, 이슬람 건축의 결정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그 옆에 늘어선 고딕 양식의 엇박자, 이교의 풍경이 한 데 뒤섞인 이곳이 바로 안달루시아다.


                                                        <사진출처 : 스페인 관광청>                                       

이슬람과 가톨릭의 어색한 듯 어색하지 않은 부조화는 오히려 묘한 매력을 발산했다. 곱디고운 얼굴을 하고는 선머슴처럼 뛰놀던 에스메랄다, 외모와 성격의 부조화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했던 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균형 잡힌 것보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다울 때가 있다.

절기에 맞춰 불어오는 소소리바람은 지중해의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훈풍으로 바뀌어 귓가를 간지럼 태운다. 에스메랄다의 속삭임처럼 달콤하다.


안달루시아에 머무는 동안 나는 왜 그토록 에스메랄다가 이곳을 동경했는지 깨달았다. 이베리아반도 남부에 위치한 안달루시아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아프리카 대륙과 지척이다. 지리적 특성 상 두 대륙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 또한 세비야를 비롯해 코르도바, 그라나다 등지에서 이슬람 문화를 쉽게 발견할 수 있듯 이곳은 가톨릭과 이슬람이 때로는 공존하고 때로는 다투던 종교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인종과 종교가 얽히고설킨 까닭에 안달루시아는 다른 유럽지역보다 이질적인 것에 관용적이었다. 세계 각지를 떠돌며 온갖 박해와 탄압을 받았던 집시들에게 안달루시아의 관용은 눈물겨웠으리라.


이런 까닭에 안달루시아 지역엔 집시의 문화와 풍습이 많이 남아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시들의 춤인 플라멩코다.


                                                         <사진출처 : 스페인 관광청>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본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여행하며 숱하게 많은 종류의 춤을 봤지만 이토록 진한 감동을 주는 춤은 처음 이었다. 사실 플라멩코보다 기교적으로 뛰어난 춤은 많다. 관능미로 치자면 아르헨티나의 탱고가, 화려함으론 브라질의 삼바나 인도의 밸리가, 흥겨움으론 콜롬비아와 쿠바의 살사가 플라멩코보다 한 수 위다. 이런 열세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건 플라멩코가 발하는 열정이다.


플라멩코는 15~16세기 경 안달루시아로 흘러들어온 집시들이 만들었다. 예능에 재능을 보인 집시들은 자신들 고유의 노래에 안달루시아 지역의 가락을 혼합하고, 이에 맞춰 춤을 쳤다. 그것이 플라멩코의 시초였다.


전 세계를 떠돌며 온갖 박해를 받았던 집시들의 춤사위는 삶의 애환을 담은 슬픈 몸짓이다. 그래서 플라멩코는 화려하거나 흥겹기보다는 소박하고 절제된 느낌을 준다.


한을 풀려는 듯 저들은 동작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쏟는다. 속세의 무거운 짐을 벗어던지려는 손발 짓은 때론 처절하다. 무희들은 언제나 무대에서 스러져 죽을 각오로 춤을 춘다. 빛과 그림자, 밝음과 어둠이 빚어내는 ‘안달루시아의 영혼’ 플라멩코가 열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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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맨큐 2009.10.29 15: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랜만이예요..탄타로스님..

    글 기다리다가..목이 빠졌었다는..ㅋㅋㅋ

    탄타로스님의 글은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를 던질 때가 있어요..

    오늘도 그러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제발..!!!자주 업데이트 좀 시켜주셔요..*^^*

    • 탄타로스 2009.10.30 23: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랜만이네요. 맨큐님! 먹고 살 궁리하느라 초금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늘 잊지 않고 찾아 주시는 맨큐님 덕에 힘내서 업데이트해요.

  2. 2009.11.30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igubon.idomin.com BlogIcon 탄타로스 2009.12.16 19: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답글이 늦었네요, 여행다녀와서 생업전선에서 뛰느라 정신없어요.ㅋ 준비하시다가 궁금하신 거 물어보시면 답변 드릴게요^^ 화이링~

  3.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4.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5. Favicon of http://fungames.im/games/adventure/ BlogIcon Adventure Games 2012.08.29 0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준비하시다가 궁

주말에 술을 좀 마셨습니다. 사실 과음했습니다. 간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나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날이 꼴딱 새는 줄 모르고…. 선배들껜 죄송한 말씀이나 서른 줄에 접어드니 확실히 몸 상태가 전 같지 않습니다. 피 끓던 스무 살 시절엔 이틀을 달아 마셔도 ‘조각 잠’이면 충분했는데, 지금은 종일 자도 숙취란 놈을 떼어 내기 힘듭니다. 뒤끝 중에서도 제일 괴로운 게 속병입니다. 평소에도 소화력이 왕성한 편이라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립니다. 술 마신 다음날은 아주 뒷간 문지방이 닳습니다. 뒤틀린 배를 움켜잡고 오만상을 쓰는 꼴이 제가 봐도 가관입니다. 하여튼 이놈의 ‘변’ 때문에 저는 고생을 참 많이 합니다. 세계일주 중 중동에서 미아가 될뻔 한 적이 있습니다. ‘변’ 때문에 겪은 ‘변(變)’이었지요.

추억의 부스러기 다섯 번째 이야기

                                                       <인디아나존스의 배경인 요르단 페트라>
 

시리아에서 요르단으로 이어지는 중동 여행의 백미는 역시 ‘잃어버린 도시’로 알려진 페트라다.

 

요르단 와디무사의 페트라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교차점에 위치, 선사시대부터 수 백 년 동안 상업의 중심지로 호황을 누렸다.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이 카라반의 도시는 6세기경 역사에서 모습을 감춘다. 여러 가설 중 지진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페트라는 1812년 무려 1200년 만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인디아나 존스-마지막 성배>의 배경지로 그 이름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페트라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함의 연속이었다. 영화 속 인디애나 존스처럼 나는 고대도시를 찾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페트라를 보기 위해선 먼저 시리아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요르단 수도인 암만으로 가야했다. 이 때 열악한 대중교통이 발목을 잡았다. 양 도시를 잇는 대중교통은 버스가 유일하다. 물론 가난한 배낭여행에게 그림의 떡인 항공편을 제외하고서 그렇다. 명세기 국경을 넘는 국제버스지만 그 체계가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편수도 얼마 없을뿐더러 소요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어느 나라건 이런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 우리로 치면 장거리 총알택시에 해당하는 자가용 운수업자들이 양 수도를 연결한다. 버스비보다 1.5배 정도 비싸지만 소요시간은 버스의 절반에도 못 미칠 정도로 빠르다. 시간을 금 쪽 같이 여기는 배낭족들에게 꽤나 매력적인 교통수단이다.


나는 옹기종기 모인 택시 중 하나를 잡아타고 기사의 요구대로 돈을 지불했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30분이 지나도 택시는 꼼짝하지 않는다. 영어가 통할 리 만무하니 영락없이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30분이 넘어도 갈 기미가 안 보인다. 기사에게 곤란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다짜고짜 손가락 4개를 펴든다. 아뿔싸! 4명이 찰 때까지 운행을 안 한단 얘기였다. 그게 그 바닥의 법칙인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새벽같이 서둘러 나온 보람도 없이 3시간을 꼬박 버티고서야 택시가 출발했다. 정오를 훌쩍 넘긴 후다.


택시 때문에 시간을 허비한지라 해가 지고서야 암만에 도착했다. 페트라가 있는 와디무사로 가기 위해선 다시 버스를 타야했다. 하루 종일 먹지 못한 탓에 속이 쓰려왔다. 하지만 와디무사 행 버스가 막차였던지라 공복을 부여잡고 버스에 올라야 했다.


이번엔 버스가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막차 출발시간은 지난 지 오래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와도 되는 분위기다. 올 때 보았던 버스정류장 입구의 케밥 집이 떠올랐다. 먹거리를 생각하자 배고픔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희망고문’이 따로 없다. 고민 끝에 잽싸게 입구로 뛰었다. 시계를 가리키며 케밥 집 주인을 다그쳤다. 포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케밥을 낚아채고는 부리나케 달렸다. 다행이다. 버스는 그 자리에 우직하게 서있다.


버스에 오르기 무섭게 게걸스럽게 케밥을 먹어치웠다. 행복했다. 한 숨 돌리고 나자 아랫배가 슬슬 아프기 시작했다. 난감했다. 참으려 발버둥 칠수록 소화력 왕성한 장은 방금 삼킨 케밥 덩어리를 가차 없이 밀어내고 있었다. 사막을 횡단하는 중동 버스다. 일단 출발하면 휴게소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뛰었다. 정류소 한편의 화장실에서 한바탕 일을 치렀다. 대충 옷을 추스르고 나왔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버스가 사라졌다. 가난한 여행자의 1년 치 생필품을 실은 채로.


죽으란 법은 없나보다. 여행을 통틀어 가장 고마운 은인이 ‘짠’하고 나타났다. 버스정류장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울상인 나를 보고는 그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패닉상태에 빠진 탓에 말도 제대로 안 나왔다.


"버스, 페트라, 화장실, 사라졌다“


횡설수설한 내 말을 알아들었나 보다. 어디선가 낡은 군용트럭을 몰고 오더니 타란다. 추격전이 벌어졌다. 버스의 이동경로를 정확히 아는지 그는 차선을 바꿔가며 맹렬히 달렸다. 20여분을 달렸을까. 먼발치에 신호대기 중인 버스가 보였다. 트럭은 버스 꽁무니에 붙어 경적을 울려댔다. 갓길에 정차한 버스에 오르자 기사가 ‘씩’하고 웃는다. 이보다 더 능글맞을 순 없다. 육두문자가 나오려는걸 간신히 참았다. 인원체크도 안하냐고 따져 물으려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은인이 떠올랐다. 경황이 없던 터라 이름조차 묻지 못했다.


앞으로 또 중동에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 기회가 닿는다면 요르단 암만에서 그를 찾아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마음이다. 암만 버스터미널에서 일하는 키 175cm 가량의 호리호리한 몸매, 수염이 얼굴을 뒤덮었던 아무개 씨께 감사드린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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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맨큐 2009.09.29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탄타로스님은 고생하셨겠지만..

    전..이글을 읽는데..씨익..웃음이..

    남들 평생 살면서 안해도 될..아니 못하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셨어요...ㅋㅋㅋ

    물론 당시는 가슴을 쓸어내리셨겠지만..

    글을 읽는 저는 상황을 떠 올려 봄 너무 재미있어요..^^;;;;

  2. 보라곰 2009.09.30 2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고생 하셨어요.
    전 탄타로스님보다 버스 운전사의 씩~하고 웃는 모습이 머리에 상상되어 웃음이 피식피식 나네요.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다고 느껴지는건 나와 같이 웃고 울고 하는 조금 다르게(?)생긴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는 거예요. 생소한 듯 하지만 따듯한 모습. 마치 그 기사아저씨 임현식아저씨처럼 멋쩍게 웃으셨을것 같아요^^

    • 탄타로스 2009.10.01 1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라곰님 말씀처럼 그런 것들이 여행의 묘미인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운다는 거. 지금은 돌이켜 추억삼을 수 있지만, 당시엔 능글맞게 웃는 모습이 얼마나 얄밉던지ㅋㅋㅋㅋㅋㅋ

  3. 보라곰 2009.10.01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정정할께요~임현식 아저씨처럼 능글맞게 웃으셨을것 같아요~ㅎㅎ
    탄타로스님 추석 잘 보내시고요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내가 너무 압박하는건가? ^^;

    • Favicon of https://jigubon.idomin.com BlogIcon 탄타로스 2009.10.05 10: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라곰님! 추석연휴 잘 보내셨어요? 요새 '사는문제'땜에 포스팅이 늦습니다. 보라곰님의 독려에 힘입어 열심히 써볼게요 모니터링 감사합니다^^

  4. 뽜머 2009.10.22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지에 또 지리셨세요?

    • 탄타로스 2009.10.26 1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인의 향기가 풀풀~저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인 듯. 인생 길게 보세요. 사람 입장 바뀌는 거 한 순간~깐족되다가 큰 코 다칩니다.ㅎㅎㅎㅎㅎㅎㅎㅎ

  5.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산일보에서 제 여행경험을 소개하고 싶단 제의를 해왔습니다. 세계일주 관련 기획을 하던 중 제 소식을 들었다네요. 누군가를 취재한 경험은 많지만, 막상 그 대상이 되려니 쑥스럽더군요. 창원의 한 커피숍에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한 시간 넘도록 많은 이야기를 뱉어 낸 것 같은데, 신문지면은 '축약'의 진수를 보여줬습니다. 못다 실린 얘기는 이곳 블로그를 통해 공유할 생각입니다.  

아래는 부산일보 지난달 20일자에 실린 기사입니다.



"그래, 어디가 가장 좋던가요?"

지구 한 바퀴를 꼬박 돌고 왔다는 윤유빈(29·경남 창원시 반림동)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 2008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정확히 365일 2시간 동안 5대양 6대주 30개 국가 135개 도시를 여행했다. 그에게 대뜸 물었다.

"100곳의 여행지엔 100가지 색깔이 있듯 여행지도 우열을 가릴 수는 없죠. 그래도 꼭 꼽으라면 남미를 택하겠습니다. 자연경관도 수려하지만 사람들이 너무나도 열정적입니다. 1년 내내 축제 분위기에 사는 그들을 마주하면 에너지가 전이 되는 느낌을 받아요."

'지구별 누비기(jigubon.tistory.com)'라는 여행 블로그를 운영하는 윤씨의 필명은 '탄탈로스'다. 그리스 신화에서 신들의 음식을 훔친 죄과로 영원한 갈증과 굶주림의 형벌에 고통 받는 존재다. 윤씨가 세계 일주라는 모험에 나선 것도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 같은 동경 때문이었다. 경남의 한 일간지에서 사회부 기자 생활을 하던 그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하면서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됐다,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인터넷과 관련 서적을 뒤져 6개월간의 준비 끝에 드디어 지난해 4월 직장 생활을 통해 모아 둔 2천500만원의 여행 경비와 가방 3개를 짊어지고 중국을 시작으로 1년 간의 장도에 올랐다.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안정된 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갔을 때 얻을 것과 잃어야 할 것을 따져 보고. 결국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란 생각으로 안 가면 후회할 것 같아 스스로를 다잡았죠."

'끊임없이 비우고, 끊임없이 배우자'는 다짐 아래 아시아, 오세아니아를 거쳐 북미와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순의 여정으로 남극을 제외한 '지구별' 대륙을 모두 섭렵하자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낯섦은 곧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었다. 아찔한 순간도 많이 겪었다. 중국 칭다오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윤씨가 떠나온 지 불과 3일 만에 쓰촨 성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사정을 모른 채 2주 뒤 태연히 집에 연락을 했을 때는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남아공에서는 어렵게 구한 음식을 강도를 만나 빼앗기기도 했고, 실크로드를 지날 때는 꼬박 40시간 동안을 비좁은 열차에 웅크리고 있는 바람에 이틀 동안 앓아눕기도 했다. 여행 1년 만에 몸무게가 11㎏나 빠졌다.

무엇보다 힘든 건 지독한 외로움에 여행의 목표 의식과 방향성을 잃는 것. 장기 여행자들의 상당수는 3개월 정도가 지나면 여행의 매너리즘에 시달린다. 아름다운 풍광을 봐도 별 감흥을 못 느끼게 되고 결국 중도 귀국하고 만다.

"당장 비행기 표만 끊으면 편안히 돌아갈 수 있다는 악마 같은 유혹이 수시로 괴롭혔어요. 그럴 때 마다 내가 뭣 때문에 이 길을 나섰는지 초심을 되새겼죠."

윤씨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편견을 깬 것이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강조했다. "시리아 하면 '악의 축'이란 이미지가 강한데 막상 가보니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시리아인이었어요. 반대로 쿠바의 경우 많은 여행서적들이 강아지도 춤을 추는 지상 낙원이라고 미화하지만 실상은 미국의 금수 조치 때문에 돈이 있어도 사 먹을 게 없어요."

긴 여행에서 돌아와 백수가 된 그는 요즘 여행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그 다음은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 "후회요? 없습니다. 1년 동안 입에 단 내 날 정도로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더 단단해진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고, 당시의 힘들었던 기억과 경험들이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되겠죠. 후회하지 않으려면 당장 짐을 꾸려 떠나보세요."

박태우 기자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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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ovessym.tistory.com BlogIcon 크리스탈 2009.09.17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뇽하세요...

    1년여의 여행을 저리 짧게 싣다니...
    부산일보 미워... ㅎㅎㅎㅎ

  2.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9.17 11: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축하합니다. ㅎㅎ 그런데 기사 하나 정정해야 되겠습니다. 맨 마지막에

    "긴 여행에서 돌아와 백수가 된 그는 요즘 여행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가 아니고

    "긴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이제 여행가에서 작가로 변신해 여행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기 출간하느라 바쁘신 분이 백수는 아니잖아요? 백수, 그거 엄청 힘든거랍니다.

  3. 보라곰 2009.09.17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년간의 세계여행을 저리도 간단하게 기사로 쓸 수 있다니...
    탄탈로스님의 생각이나 마음이 하나도 전달이 안되어 글읽기가 재미 없어지네요.
    블로그에 올라온 글이 훨씬 따뜻합니다.

  4. 맨큐 2009.09.21 09: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찌..저리도 성의없이..기사를 ㅡ,.ㅡ

    블로그를 한번만이라도 모니터링 했더라면..]

    훨씬 기사의 내용도 풍부해지고 재미있었을텐데..

  5. 니케 2009.09.22 2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건이 묶이네요- 그러고도 끈이 남기까지.. 모아이 빨간 모자만큼 미스테리로다.

  6. 다구 2009.09.23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창원사시는구나..
    저도창원사는데 한번뵙고싶네요^^

    여행기 잘보고있습니다
    더욱더 열정적으로 지구곳곳을 누벼주세요

  7. 진규 2009.10.02 16: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나오면 직접 싸인 받으러 가야지
    추석 잘 보내라

  8. 2011.11.05 2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 쓰촨 지진이 칭다오까지 영향을 미쳤나요?
    굉장히 부실한 게스트하우스였나봐요


세계일주 후 신문 읽는 방식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국제면부터 펴보는 습관이 생긴겁니다. 예전엔 1면부터 읽다가 국제면은 대충 훑고 넘어갔더랬습니다. 기껏해야 제목 혹은 리드문단에만 잠깐씩 눈길을 주곤 했죠. 지금은 국제면을 꼼꼼이 톺아봅니다.

오늘자(9월 8일) 신문 국제면에 '모아이 빨간 모자의 비밀 밝혀져'란 제하의 기사가 눈에 띕니다. 모아이는 칠레령 이스터섬의 거대한 인면석상을 말합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한국에선 서태지 뮤직비디오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수백구의 모아이 석상은 그 크기나 모양이 다양한데, 일부 모아이 머리위에 빨간색 모자가 씌어져 있습니다. 아래 모아이 사진 중 오른편 끝단의 모아이 머리 위에 둥근 덩어리가 씌어져 있는게 보이시죠? 기사에서 얘기하는 빨간 모자입니다.


모아이 몸통과 빨간 모자 제작에 사용된 돌은 그 재질이 서로 다릅니다. 몸통 제작에 사용된 돌은 그 성분과 출처가 일찌감치 밝혀졌지만, 빨간 모자 제작에 쓰인 돌에 대해선 그간 알려진 게 없었습니다. 오랜시간 이를 파헤친 학계가 드디어 빨간 돌 모자의 출처를 알아냈다는 게 기사의 요지입니다.

아래 사진은 화산섬인 이스터섬의 분화구입니다. 분화구 한 편이 부서진게 보이시나요? 이스터섬엔 이렇듯 드문드문 파인 분화구가 많습니다. 원주민들이 빨간 모자를 만들기 위해 붉은 화산암재를 캐낸 흔적이라네요. 분화구가 바로 빨간 모자 제작에 사용된 돌의 출처였던 것이죠. 이스터섬을 여행할 때 부서진 분화구를 보고 의아했는데 이제야 궁금증이 풀립니다.


근데 기사가 좀 불친철하단 생각을 했습니다. 기사는 이스터섬과 모아이에 관한 배경설명 없이 다짜고짜 빨간 모자 이야기를 꺼냅니다. 저처럼 여행을 다녀왔거나 고고학에 관심이 많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이스터섬과 모아이에 대한 제 여행글을 첨부합니다. 

<이스터섬과 모아이
>


섬은 본디 외롭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서서 늘 대상을 그려야 하는 숙명 탓이다. 뭍에서 수 십 리만 떨어져도 그러한데, 거리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곳에 자리한 섬은 오죽하랴. 이런 의미에서 이스터섬(Easter  Island)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섬이다.


칠레 령의 이스터섬은
본토에서 무려 3800km나 떨어져 있다.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동쪽 끝에 위치한 이 화산섬으로 가기위해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를 탔다. 5시간을 쉼 없이 날아서야 태평양 한 가운데 오도카니 자리한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섬의 원래 이름은
원주민 언어로 ‘큰섬’을 뜻하는 ‘라파누이’다. 이스터섬이란 명칭은 네덜란드 탐험가가 1722년 부활절(Easter day)에 섬을 발견한 데서 유래했다. 1888년 칠레가 섬을 소유한 이후 스페인어로 ‘이슬라데파스쿠아’라 명명했지만,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이스터섬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제국주의 냄새가 짙게 베인 ‘이스터섬’이나 ‘이슬라데파스쿠아’보다 ‘라파누이’란 본래 이름이 맘에 든다. 저들이 크리스마스에 제주도를 발견하고는, 제 멋대로 ‘크리스마스섬’ 따위로 부른다면 얼마나 어의가 없겠는가.


이스터섬이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은 거대한 인면석상 모아이 때문이다. 1m의 작은 석상에서부터 30m에 이르는 거대한 석상까지 이스터섬에는 550여 구의 모아이가 있다. 누가 무슨 연유로 모아이를 만들었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또 학계에선 당시 기술로 수 십 톤의 돌덩이를 정교하게 깎고, 이를 해안 곳곳으로 옮긴 사실을 불가사의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까닭에 부풀리기 좋아하는 몽상가들은 외계인설을 주장하거나, 모아이가 스스로 걸어 다니는 신물이었다고 믿는다. 황당한 얘기 같지만 실제 섬을 둘러보면 ‘진짜 그런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든다. 그 만큼 섬은 신비로 가득하다.


나는 오토바이를 한 대 빌려 섬을 돌아보았다. 야간 조명등, 나침반, 지도 등의 장비와 먹거리로 가득 찬 배낭을 두르고 고고학자라도 된 양 모아이를 찾아 나섰다.


모아이는 주로 해안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아후’라 불리는 제단 위에 우뚝 선 모아이의 자태는 웅장했다. 이들 모두 섬의 동쪽에 자리한 라노라라쿠 언덕에서 만들어졌다. 모아이 제조 공장에 해당하는 라노라라쿠에서 수 십 킬로나 떨어진 해안까지 이 거대한 모아이가 옮겨진 것이다.


섬은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황량하다. 모아이 이동에 사용할 목재 지렛대나 수레를 만들 수 없다는 얘기다. 어림잡아 수 천 명에 불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주민의 인력만으로 이를 행하는 것 역시 믿기 힘든 일이다.


이 때문에 이스터섬의 모아이는 한 동안 고고학계에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과학의 발달로 방사선탄소연대법 등 새로운 측정기법이 등장한 후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학계에서는 모아이가 만들어진 시기의 이스터섬은 산림으로 울창했을 거라 추측한다. 또 지금까지 알려진 것 보다 훨씬 많은 수의 원주민이 살았을 거라 짐작하고 있다. 그러다가 ‘어떤 일’을 계기로 섬이 급속히 쇠퇴, 결국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섬으로 전락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떤 일’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먼저 자멸설이다. 각 부족들이 경쟁적으로 모아이 석상을 만들면서 무리하게 목재를 채벌한 결과 토양침식으로 섬이 황폐화 됐다는 것이다. 원주민 스스로가 사람과 가축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가설이다. 이는 오랫동안 정설처럼 굳어졌고, 이스터섬은 인간이 환경을 파괴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사례가 됐다.


하지만 최근 이에 반하는 가설이 나왔다. 자멸설은 이스터섬을 침략한 자들의 자기합리화일 뿐 섬의 황폐화는 오히려 외부인 때문이라 것.


반대측은 유럽인이 원주민을 노예로 끌고 가 섬의 인구가 급속히 줄었다고 주장한다. 또 산림고갈 역시 이들의 배에 섞여 들어온 쥐떼가 급격히 증가, 야자나무 씨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 탓이라고 믿는다.


진실은 모아이만이 안다. 자멸설이든 타멸설이든 하나같이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비극이란 점에서 이스터섬이 주는 교훈을 허투루 여겨선 안된다.


<지구별단상>



모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너는 진실을 알고 있지? 어째서 섬이 이 지경이 된거니?”

침묵으로 일관하던 녀석은 내가 물러서지 않고 채근하자 그제야 입을 연다.

“개구리는 시내나 도랑에서 나는데 꼭 인가의 계단이나 뜰 사이를 기웃거려. 그러다 닭에게 잡혀 번번이 목숨을 잃지. 개구리가 저 있어야 할 데 있지 않고, 인가를 찾는 이유는 땅이 기름져 벌레가 많기 때문이야. 한 끼 배불리 먹자고 목숨을 버리는 셈이지. 작은 이익만 보고 후에 따를 재앙은 생각지 못하는 거야. 세상엔 인간개구리가 너무 많아.”

그렇다. 세상에는 인간개구리가 너무 많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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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라곰 2009.09.09 0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세상에는 보통의 인간개구리보다 탐욕스런 인간개구리가 많습니다.
    거기에 먹이사슬까지 역행하죠. 모아이만 보더라도 그 옛날부터 인간의 힘은
    참으로 위대했는데 그 사실은 잊고 쉽게만 살려고 하는것 같아요.
    아침부터 댓글이 너무 무겁죠?^^
    참! 덕분에 모르던 동사를 알게되었어요.<톺아보다>
    이럴때 저의 무지함을 새삼 느끼네요. 읽다보면 좋은 글도 많고 국어공부도 되고
    아주 좋아요~

    • 탄타로스 2009.09.12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잊어선 안되는 가치도 있는데...암튼 인간은 모든지 쉽게 잊는것 같아요.보라곰님 고견 감사합니다. ^^

  2. 맨큐 2009.09.15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톺아보다 - 샅샅이 톺아 나가면서 살피다

    오늘 처음으로 알게된 동사..^^;;;;

    묵직한 마음으로 인간개구리가 안되고자 다짐하며 아침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좋은 글 감사해요..

    • 탄타로스 2009.09.17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가 모르는 순우리말이 참 많더군요. 어디선간 주워들으면 응용해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맨큐님 모니터링 감사해요^^

  3. Favicon of http://ayoteacher.tistory.com BlogIcon 아이살앙 2009.11.17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님 :) 저는 자전거로 돌고...걸어다니고 ㅋㅋ 힘들었다능 ㅋㅋ
    역시 순우리말 오나전 좋아요 !! ㅋ
    근데 오타가 하나 있어요 형님!!!
    어의가 없다 아니죠 -> 어이가 없다 ^-^;;

  4. ... 2010.03.04 12: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나전은.. 어디 나라 말인가요...

  5.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6. 흐흠 2012.03.16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의...... 어이가 없네요


점심에 수제비를 먹었습니다. 일명 '항아리 수제비', 항아리만큼 커다란 그릇에 한가득 담긴 수제비가 참 맛났습니다. 문득 히말라야 중턱에서 먹었던 '뗌뚝'이 떠오릅니다.

추억의 부스러기 네번째 이야기……

향신료가 강한 인도 음식에 슬슬 진저리가 처질 즈음, 다람살라(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히말라야 중턱의 고산 도시)에 도착했다. 티베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만큼 먹거리 역시 티베트 전통음식이 주류를 이뤘다.


티베트 음식은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다. 우리네 청포묵을 빼다 박은 ‘라핑’을 비롯해 수제비와 흡사한 ‘뗌뚝’, 칼국수를 닮은 ‘뚝빠’, 만두와 비슷한 ‘모모’ 등 식욕 잃은 한국여행자에게 다람살라는 ‘미각재활훈련센터’같은 곳이다.

                            <우리네 수제비와 만두를 뺴다 박은 티베트 전통음식 '똄뚝'과 '모모'>

한날 이곳저곳을 쏘다니다 라핑을 파는 노점을 발견했다. 히말라야 산중턱에 자리해 조금만 움직여도 체력소모가 많은 탓에 무척 허기진 상태였다. 라핑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또 한 그릇을 시켰다. 먹는데 정신팔려있던 나를 주인아주머니가 빤히 쳐다본다. 그러더니 바닥을 드러낸 그릇에 라핑을 한 가득 담아주며 웃는다. 그렇게 서 너 그릇을 비우고야 포만감이 밀려왔다.

                                      <청포묵과 닮은 라핑을 한 가득 담아주시는 아주머니>

돈을 내미는데 아주머니가 한사코 한 그릇 값만 받겠단다. 실랑이 끝에 두 그릇 값을 지불하기로 했다. 음식 맛 뿐 아니라 후덕한 인심 또한 한국의 그것을 닮았다.


다람살라에 머무는 내내 그 집을 찾았다. 영어를 못하는 아주머니와 티베트어를 못하는 나, 우리는 늘 말이 없다. 아주머니는 멀리서 내 모습이 보이면 큰 대접에 라핑을 듬뿍 담아 놓는다. 바닥이 보일라치면 다시금 라핑을 퍼 담기를 반복하고는 씩 웃는다. 라핑을 입 한 가득 우겨넣은 채로 나도 웃는다.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진솔하고 따뜻한 대화였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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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oflove.tistory.com BlogIcon 워크투리멤버 2009.08.30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말라야에서 먹는 수제비 맛이란 정말 최고겠어요!^^

  2.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8.30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수제비네^-^

  3. 11 2009.08.30 14: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으로 마지막 글 훈훈합니다.

  4. 로즈마리 2009.08.31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모모가 더 맛있어 보여요 ~~;;ㅎㅎ
    보기에는 수제비 빈죽을 해서 넣은게 아니라 후라이팬 같은데다가
    살짝 익혀 잘라서 넣은것처럼 보이네요
    우쨌든 맛나보입니다 ~~^^

    • 탄타로스 2009.09.03 2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모도 맛있답니다. 생긴 건 울 수제비랑 조금 다른데 암튼 맛은 거의 비슷했죠^^

  5. 퐈머 2009.09.03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천원을 선불로 내고 먹는 만두가 더 맛있을 듯

  6. 맨큐 2009.09.04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맛있겠다..
    집에 가서..수제비 해먹어야겠다..^^

    아주머니도 우리네 엄마같고..탄타로스님 정말 부러워요..

  7. Favicon of http://cotton100.tistory.com BlogIcon june 2009.09.06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맛있어 보이네요...
    저도 언젠가 꼭 가서 먹고 싶네요^^

  8. 보라곰 2009.09.08 1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아주머니의 인심! 음식을 파는게 아니라 정을 팔고 계셨네요.
    이런것이야 말로 인지상정인데 현실은 그것이 너무 메말랐죠?
    그마음이 너무나 감사하고 귀하네요^^ 여행다니시면서 배는 고팠겠지만 인정은
    듬뿍 느끼고 오셨겠어요~

    • 탄타로스 2009.09.09 00: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 기억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짠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선 점차 사라져가는 풍경이라 더 그러네요.^^

  9. Favicon of http://www.unny.com BlogIcon montreal florist 2010.04.25 04: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사람 입맛에 딱맞는 군여, 재밌네여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가 히말라야 8000m 14좌 완등까지 단 1개 봉우리만을 남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난 3일 8068m 가셔브룸Ⅰ정상을 밟은 오 씨가 마지막 남은 안나푸르나(8091m) 등정에 성공할 경우,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기록하게 된답니다. 기쁜 일입니다. 근데 가슴 한 편이 쓰리고 아릿합니다. 얼마 전 낭가파르바트 하산 도중 추락사한 고(故) 고미영 씨 때문입니다.

고미영 씨 사고 이후 대한민국 산악계로 쓴소리가 쏟아졌습니다. ‘여성 세계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란 타이틀을 놓고 벌어진 오 씨와 고 씨 간 무리한 경쟁이 화를 불러왔단 비난이었습니다. ‘최고’ 혹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아야 비로소 조명 받는 산악계의 ‘승자독식주의’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서로를 격려하며 선의의 경쟁을 펼쳐온 두 여성 산악인을 ‘과열경쟁’의 희생양으로 삼는 건 옳지 않다는 겁니다. 실제로 오 씨와 고 씨는 한국에 머물 때 매일 만날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죠. 누군가가 해외원정길에 나설 때면 진심을 다해 응원하는 그런 사이였다죠.

‘과열 경쟁’에 따른 인재였는지, ‘선의의 경쟁’에도 어쩔 수 없었던 불의의 사고였는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이 결코 히말라야를 두고 세속적인 다툼을 벌이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제가 본 히말라야는 ‘어머니’이고 ‘스승’이었습니다. 산을 동경하는 사람들은 산을 닮기 마련입니다. 히말라야를 오롯이 가슴에 품은 그들에게 그런 옹졸한 마음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안나푸르나 등정을 남겨 둔 오은선 씨를 응원하며, 고(故) 고미영 씨를 애도하며 지난날 히말라야에 올랐던 저의 단상을 바칩니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이름이 희한하네. 도시 이름에 웬 만두냐."

어렸을 적 지도를 펴놓고 친구들과 한바탕 웃었던 기억이 난다.

네팔이란 나라는 그렇게 생소한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머리가 굵어진 후에도 마찬가지. 왕이 다스리는 나라(현재는 공화국으로 전환 중이다), 국민소득에 비해 행복지수가 높은 후진국 정도가 네팔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적어도 네팔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고작 보름간의 여정으로 네팔에 대해 논한다는 건 건방을 떠는 일이다. 다만, 이번 여정을 통해 나는 히말라야 중턱에 자리한 이 힌두인의 나라에 대해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네팔은 산악국가다. 만년설의 히말라야 산맥이 나라 전체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다.

수도 카트만두를 거쳐 히말라야 등정을 위한 베이스캠프인 포카라에 발을 디디는 순간, 네팔인에게 산은 숙명이란 걸 깨닫는다.

포카라에서는 고개만 돌리면 8000m급의 설산이 눈에 밟힌다. 여염집 담장 뒤로, 골목길 전신주 너머로 어김없이 웅장한 산이 자리하고 있다. 심지어 뒷간에 앉아 일을 보다 고개를 들어도 처마 사이로 히말라야를 감상할 수 있다.

네팔인은 히말라야를 '어머니'라 부른다. 그래서일까. 산을 닮은 그들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착했다. 그 덕에 여행 내내 사주경계를 늦추지 않던 나는 모처럼 홀가분한 기분으로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다.

히말라야가 자식들에게 물려준 건 비단 심성만이 아니다. 포카라는 대자연을 만끽하려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연일 북새통을 이룬다. 이들이 지출하는 관광비용은 도시를 떠받치는 주요 수입원이다. 히말라야는 변변한 공장 하나 없는 포카라의 젖줄인 셈이다.

히말라야의 또 다른 이름은 '스승'이다. 산을 오르려, 혹은 그저 산을 바라보려 네팔을 찾는 이들 모두 제 나름대로 깨달음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애써 배우려 하지 않아도 '트레킹'을 통해 거대한 설산을 마주할 때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나 역시도.

등산과 맥을 같이하는 트레킹의 목적은 8000m급의 설산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 산을 오르거나, 좌우로 횡단하는 행위다. 등산로가 한정된 우리네 산에 비해 규모가 큰 히말라야의 트레킹 코스는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나는 3000m 상당에 자리한 푼힐(Poon Hill) 전망대를 목표로 나흘짜리 코스를 택한 후 히말라야에 발을 디뎠다. 산이라면 군대에서 지겹도록 오르내린 예비역 병장이다. 자신에 찬 발걸음이 가볍다. 콧노래도 새어 나온다.

한 시간이나 채 지났을까. 평탄하던 산길이 굽이치더니,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 듯 흘렀다. 좀 전의 거만함을 탓하는지 히말라야의 산등성이는 점점 더 경사를 높였다. 기다시피 산을 오르다 보니 짜증이 밀려왔다. 악을 쓰며 걷기를 수 시간, 한계가 왔다. 다리가 꼬이고 발목이 제 맘대로 꺾이더니, 결국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무렇게나 등을 기대고 돌아앉는 순간, 히말라야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쉼 없이 산을 오르느라, 그동안 등 뒤로 펼쳐진 풍광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산등성이를 바라봤다. 5월의 녹음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의 계곡이 장관을 이뤘다.

인생도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만 보고 달려오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스쳐 보내야 할까. 그중에는 분명히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무언가가 있으리라. 가끔은 삶에도 '쉼표'가 필요한 이유다.

우여곡절 끝에 해발 3000m 높이에 자리한 푼힐 전망대에 올랐다. 이른 새벽의 일출, 설산을 휘감는 벌건 빛의 향연은 그간의 고생을 충분히 보상할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트레킹 코스로 푼힐을 선택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다양한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보니 가끔 트랙킹 코스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때가 있다. 누구는 "더 높은 곳에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는 "왼쪽 쪽 측면이 훨씬 멋있다"고도 말한다.

이에 대해 십수 년간 트랙킹 가이드를 해 온 현지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설산은 어느 지점에서 바라보나 그 만의 독특한 멋이 있다. 고도가 높건 낮건, 좌·우측이건 상관없이 하나같이 경외롭다. 당신은 그저 자신의 취향과 시간, 체력을 고려해 적절한 목표를 정하면 된다."

좀 뜬금없긴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소싯적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꿈은 원대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학창시절 통지표 귀퉁이의 '희망사항'란에 소박한 꿈을 적었다간 주위에서 타박이 날아들기 일쑤다. 자의든 타의든 열에 아홉은 '과학자'나 '의사', '판·검사'를 적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후에도 지향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 명예, 권력, 돈 등 행복을 재는 잣대가 정해져 있다.

자꾸만 현지 가이드의 말이 귓전을 맴돈다.

"고도가 높건 낮건, 좌·우측이건 하나같이 경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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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맨큐 2009.08.12 1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에...동감합니다..

    점심도 건너뛰고 (몰입하다보니^^;;;)그 동안 들르지 못해 읽지 못하였던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이 제 하루의 쉼표겠죠?ㅋㅋ

    p.s 질문 있습니다!! 연재는 계속 되시는 거죠? 소재가 무궁무진 할 것 같은데..(그래야합니다)^^''
    5월말에서 6월초까지 한 달 가량 글이 올라오지 않아 그 때 잠시 방황했더랬습니다..

    이제 다시 점심시간 순례를 시작해야겠군요..탄타로스님..다시한번 좋은 글 감사해요^^__

    • 탄타로스 2009.08.12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맨큐님 모니터링에 늘 힘을 냅니다. 먹고 살길 찾다보니 뜸할 때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끊기지 않게 열심히 글 올려볼까 합니다.^^

  2. 니케 2009.08.20 2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말라야 사진으로만 봤지만 탄타로스님 글만으로도 히말라야의 위엄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계속 재미난 글 많이 올려주세요~^^

  3. 퐈머 2009.09.03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트만두에서 만두값 달라고 하면 농부들이 봉기할까요?

    • 탄타로스 2009.09.03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울 이문동 어디선가 만두값 달라고 봉기하던 한 농부가 생각나네요. 참 의로운 친구였는데...

  4.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세계일주증후군’의 여파로 무직 증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자발적 백수라 딱히 조급하거나 초조하진 않네요. 다만 함께 놀 이가 없어 조금 적적합니다. 뭐 상관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입에 단 내 날 정도로 혼자다녔으니 말이죠. 방바닥을 구르다 그것도 싫증나면 제 보물 상자를 열어봅니다.  5대양 6대주가 오롯하게 담겨 있습니다. 구석에서 일기장을 꺼내듭니다. 1년 여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탓에 꼬질꼬질하기가 ‘거지발싸개’ 수준입니다. 외양이야 어떻든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청년백수의 기를 살려주기에 충분합니다. 일기장에서 몇몇 글들을 발견합니다. 분명 직접 쓴 글이건만 낯섭니다. 여행 중 다니던 신문사에 연재를 했더랬습니다. 아마도 그때 발탁한 ‘주연’들 말고도 ‘보조출연자’들이 여럿 있었나 봅니다. 알아보기 힘들게 휘갈긴 걸로 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단상들을 끼적여 놓은 듯합니다. 뒤늦게야 그들을 챙깁니다.

추억의 부스러기 두번째 이야기, 멕시코 편


 “누렁아!”

곁눈질 한번 하더니 녀석은 고개를 돌린다. 흘겨보는 모양새가 영 기분 나쁘다. 슬쩍 부아가 치민다. 먹다 남은 타코 조각을 던졌다. 반응이 없다. 다시 한 조각. 녀석은 귀찮은지 몸을 일으켜 저만치 떨어진 그늘로 자리를 옮긴다.

그랬다. 나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료했다. 2시간 전에 시켜 딱딱하게 굳어버린 타코 주변에 파리가 들러붙는다. 새로운 놀이가 생각났다. ‘맨손으로 파리잡기’, 예전에 군대에서 침상 바닥에 앉은 파리를 상대로 곧잘 하던 놀이다. 살짝 오므린 손을 조심스럽게 뻗어 잽싸게 바닥을 쓸면 주먹 속에 파리가 산채로 잡힌다. 주먹 속에서 웽웽 거리는 놈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면 그 충격에 바둥거릴 뿐 달아날 생각을 못한다. 그렇게 생포한 파리 십 수마리가 지금 테이블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수도 멕시코시티를 떠나 푸에블라, 와하카, 팔랑케를 거쳐 이곳 산크리스토발에 왔다. 2주 동안 쭉 혼자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 혼자였던 적은 처음이다. 짧게나마 동선이 비슷한 여행자들과 함께 여행하곤 했더랬다. 사람이 그리웠다.

턱을 괴고 백일몽에 빠져들 찰라, 그가 말을 걸어왔다. 작달만한 키에 다부진 몸매, 전형적인 멕시칸이다. 곱슬머리 위에 비스듬히 눌러쓴 멕시코 전통모자 솜브렐라가 무척 잘 어울렸다. 자신을 후안이라고 소개한 그는 내 이름과 국적을 물었다.

“오! 꼬레아, 2002 월드컵, 부에노! 부에노!”

축구를 좋아한다는 그는 자국 리그에 대해 쉴 새 없이 떠들었다. 나 역시 얘기 상대가 그리웠던 터였다. 영어와 스페인어가 뒤섞여 혼잡하기 이를 데 없는 대화가 그렇게 시작됐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던 중 내가 테이블에 놓인 고추를 집어 먹었다. 타코를 시킬 때 나왔던 곁들이 음식이었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그가 물었다.

“맵지 않아? 신기하네. 우리 멕시칸만 매운 거 잘 먹는 줄 알았는데”

우스웠다. 청량고추에 길들여진 내게 멕시코 고추는 그저 파프리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고추장부터 시작해서 김치, 낙지볶음 등 나는 한국의 매운 음식을 열거하며 어깨에 힘을 줬다. 그러자 그가 내기를 제한했다. 매운 고추를 많이 먹는 사람에게 멕시코를 대표하는 술 데킬라를 사주자는 것. 방금 먹은 고추 수준이라면 한 바구니를 가져와도 문제없겠다 싶어 흔쾌히 응했다.

그가 종업원을 부르더니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잠시 후 종업원이 접시 가득 고추를 담아왔다. 모양새가 방금 전 먹은 고추와 사뭇 달랐다. 더 작고 더 두꺼웠다. 불안감이 밀려왔으나 이내 마음을 다 잡았다. 뭐 크게 다르겠나 싶었다.

그가 먼저 고추 하나를 집어먹더니 우물거린다. 만면에 웃음을 머금은 채. 내 차례다. 보란 듯이 고추 2개를 집어 삼켰다. 씹는 순간, 아차 싶었다. 뜨거운 기운이 입안에 감돌았다. 매웠다. 정말이지 죽을 만큼 매웠다. 청량고추보다 20배는 더 매웠다. 혀에 감각이 없다. 눈물이 핑 돈다. 당황하는 나를 보더니 그가 괜찮냐고 묻는다. 웃는 낯이다. 멀리서 종업원도 키득거린다.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번엔 그가 고추 2개를 먹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거드름을 피운다. 고추 하나를 집었든 나는 선뜻 입에 가져가기 못하고 망설였다. 그가 웃는다. 조소다. 그 꼴이 보기 싫어 나는 두 눈 지그시 감고 고추를 씹었다. 아! 진짜 맵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 따위 고추가 다 있담! 채소가 아니라 흉기다. 결국 나는 손을 들었다. 얼음물을 연거푸 들이켰지만, 불에 덴 듯 입안은 얼얼하기만 했다.

약속대로 그에게 데킬라를 사주었다. 속이 쓰렸다. 내기에서 졌기 때문인지, 매운 고추 때문인지 아무튼 무지하게 속 쓰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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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isdays.tistory.com BlogIcon 씨에스타 2009.08.03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페에서 보고 넘어왔어요. 좋은 글 많이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독자한명 추가요 ~ ^^

  2. Favicon of http://bacon.tistory.com BlogIcon Bacon 2009.08.06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할라피뇨에.. ㅡ_ㅡ;; 당하신건가요? ㅡ_ㅡ;;
    저도 미국에서는 멕시칸 고추를 김치처럼 먹는데.. (아무래도 서양음식들이 좀 기름져서...) 엄청 맵긴 하지만.. 조금씩 잘 먹으면..;; 매우 상큼하지요. @_@
    ㅎㅎ

    • 탄타로스 2009.08.06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할라피뇨보다 더 매웠던 듯 합니다. 저 역시 느끼한 기름음식 먹을 때 김치 역할을 한 할라피뇨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3. 보라곰 2009.08.22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V에서 봤어요 멕시코의 아~주 매운 고추들...우리의 청양고추는 그것들에 비하면 아가수준도 못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어요. 아무래도 그것에 당하신듯~
    글 잘보고 있어요. 여행병걸린 저로선 어디론가 뛰쳐가게끔 충동질 하는 글이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읽고 있죠 ㅠ.ㅠ

    • 탄타로스 2009.08.29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그것에 당했군요...직접경험이든 간접경험이든 얼른 여행병 치료하시길 바랄게요.^^ 제 글이 치료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듯 합니다.

  4.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옴팡지게 쏟아집니다. 이놈의 장맛비! ‘후두둑’하고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백수 마음을 처연하게 만듭니다. 달력을 보니 세계여행을 끝내고 한국 들어온 지 딱 석 달이 되는 날입니다. ‘세계일주증후군’의 여파로 무직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저로선 마땅히 할 일이 없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집니다. 막걸리와 파전 생각이 간절하건만, 그냥 ‘오징어짬뽕’ 한 봉지를 집어 듭니다. 영양실조 걸린 제 지갑 녀석의 사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 울적하여라.

이럴 땐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려야 합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 그리해야 합니다. 서둘러 제 보물 상자를 열었습니다. 5대양 6대주가 오롯하게 담겨 있습니다. 구석에서 일기장을 꺼내듭니다. 1년 여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은 탓에 꼬질꼬질하기가 ‘거지발싸개’ 수준입니다. 외양이야 어떻든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청년백수의 기를 살려주기에 충분합니다.

일기장에서 몇몇 글들을 발견합니다. 분명 직접 쓴 글이건만 낯섭니다. 여행 중 다니던 신문사에 연재를 했더랬습니다. 아마도 그때 발탁한 ‘주연’들 말고도 ‘보조출연자’들이 여럿 있었나 봅니다. 알아보기 힘들게 휘갈긴 걸로 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단상들을 끼적여 놓은 듯합니다. 뒤늦게야 그들을 챙깁니다.>



 

죽었다 살기를 반복하는 섬이 있다. 산토리니다.

그리스의 수십 개 섬 가운데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섬은 단연 산토리니. 백설기를 썰어놓은 듯 하얀 집은 저마다 옥빛 창문으로 멋을 내고서 지중해를 굽어본다. 마을 어귀마다 풍차가 돌고, 그 바람을 맞으며 살랑대는 빨래더미가 정겹다. 청정한 바다 위에 내려앉은 햇볕 조각이 파도에 반짝이고, 갈매기는 연신 자맥질을 한다. 보고 또 봐도 약비나지 않을 장면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을 찾아 매년 여름이면 수만의 인파가 산토리니로 몰려든다. 예약하지 않으면 숙소 잡기는 불가능하다. 식당과 상점, 기념품 가게 종사자들은 넘쳐나는 손님 덕에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그리스 본토와 섬을 오가는 페리가 하루에 십 수번 고동소리를 낸다. 생동감이 넘친다. 섬은 살아있다.

애석하게도 섬의 생명력은 짧다. 석 달 남짓한 성수기가 지나고 날이 선선해지면 섬 전체에 쩌렁하게 울려 퍼지던 뱃고동 소리가 줄기 시작한다. 섬의 심장박동도 함께 멎어간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 산토리니는 죽은 섬이 된다.

나는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던 2월의 어느 날 산토리니에 도착했다. 휑했다. 어쩌면 그들의 말이 옳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테네에서 산토리니 행을 결정했을 때 많은 이들이 만류했다. 숙소 리셉션의 청년은 하루도 못돼 후회할 거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의 말이 옳았다.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든다. 숙소를 찾는 일부터 꼬였다. 관광업 종사자가 대부분인 까닭에 산토리니 주민들은 비수기에 섬을 떠나곤 한다. 많은 수의 숙소가 문을 걸어 잠그거나, ‘수리 중’이란  푯말을 내걸고 있었다.

한참 동안 발품을 팔고서야 방 하나를 잡을 수 있었다. 시장기가 돌았다. 끼닐 때울 요량으로 식당을 찾아 나섰다. 여기서 또 일은 꼬인다. 도대체 문을 연 식당이 없다. ‘주인 사정으로 장기간 영업을 중지한다’는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공복감에다 피로까지 겹쳐 발걸음이 물먹은 솜 마냥 무겁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빵집이 보였다.

나흘째, 나는 12끼 째 빵을 먹고 있다. 퍽퍽한 밀가루 덩어리를 씹으며, 앞으로 평생 빵을 먹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지난 사흘 동안 내가 한 것이라곤 끼니 때 맞춰 빵을 사먹고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린 게 전부다. 그 마저도 비를 동반한 강풍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관광객은 물론이고 주민들은 다들 자취를 감췄다. 비수기 페리 운행 감축과 궂은 날씨로 언제 배가 뜰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죽은 섬에 고립됐다.

해질녘 둔덕에 올랐다. 섬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지대다. 황혼 무렵 섬의 자태는 형용하기 힘들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언젠간 이 섬에도 다시 뱃고동이 울리겠지. 꽃 피는 봄이 오고 다시 여름이 와 섬이 살아나거든 그 때 다시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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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죽었다 살아나는 섬을 아는가?" "몰라요!"

    나는 섬이 죽는다고 하기에 섬이 물에 빠지나 했더니 사람들이 싹 빠지는군요.

  2. Favicon of http://blog.daum.net/mylovemay BlogIcon 실비단안개 2009.07.15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1세의 딸이 해외여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산토리니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아주 가끔 둘이서 검색을 하는데,
    참고하라고 해야겠습니다.

    • 탄타로스 2009.07.15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비단안개님 안녕하세요~
      여름은 또 너무 복잡하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봄이나 가을이 가장 좋다더군요. 아무튼 진짜 아름다운 섬인 것은 분명합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ympro79 BlogIcon 맑은바람 2009.07.16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토리니
    이름만 들어도 맘에 설렙니다
    제가 지극히도 좋아하는 '조르바'가 생각나고
    저 또한 그곳에 가면 '조르바'처럼 단순하지만, 열정적으로
    삶을 그저 '사는 것'처럼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때문이지요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단순해'지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걸까요

    마치 제가 짧은 시간안에 세계여행을 한 것처럼
    엉덩이를 내내 들썩이며 읽었답니다.

    그리고 저의 '역마살'을 제대로 자극해주셨어요^^

    명쾌한 해석과 번뜩이는 재치! 말 그대로 감성과 지성, 이성이 3박자를 이룬 멋진 글때문에
    질투났지만, 행복했습니다.

    따뜻한 글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 탄타로스 2009.07.19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해요^^, 조르바 양반들 정말 인생 맛나게 살지요. 넘치는 칭찬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4. 보라곰 2009.09.09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 본 영화 [나의 로맨틱 가이드]의 주요 배경이 그리스 였는데
    화면 가득 이쁘고 파란 바다와 하늘만 보고 언젠간 저곳을 직접가서 보리라
    다짐했는데 이런 문제가 있는 곳일줄이야~
    그리스 여행시 꼭 참고해야겠어요.
    감사~


                                                             

아시아
저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 범주를 넓히면 동북아시아인, 더 확장하면 아시아인이 됩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을 테지요.

낯 뜨거운 고백이지만 여행 전 저는 스스로가 뿌리박고 사는 아시아를 우습게 여겼습니다. ‘아시아 문화가 다 거기서 거기지’하는 마음으로 무작정 다른 대륙을 동경하곤 했습니다. 문화사대주의 혹은 옥시덴탈리즘에 빠져 내 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했던 겁니다.

6개 대륙을 여행하고 난 후 제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아시아는 참 다채로운 문화를 지녔습니다. 동서로 유교∙불교∙힌두교∙이슬람교의 족적을 훑다보면 절로 감탄사가 새어 나옵니다. 찬란했던 문화의 유적은 물론이고 삶을 윤택하게 하는 정신적 가치들이 풍성합니다.

네팔의 히말라야에서, 인도의 갠지스강에서, 시리아의 모래사막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저는 아시아의 진면목에 눈을 뜹니다.

                                                                           <중국 만리장성>

남아메리카

여행이 끝나고 나니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어디가 가장 좋던가요?”

질문 앞에서 늘 망설입니다. 100곳의 여행지엔 100가지 색깔이 있다죠. 한낱 여행자의 시선에 가둬 우열을 가릴 만큼 세상은 단조롭지 않습니다. 화제를 돌려 슬쩍 넘어가 보지만 집요하게 추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숙고 끝에 저는 ‘남미’를 택합니다.

마야∙아스텍에서 잉카로 이어지는 고대문명은 남미의 백미입니다. 페루의 ‘마추픽추’, 볼리비아의 ‘소금사막’, 아르헨티나∙브라질의 ‘이과수 폭포’, 파타고니아의 ‘모레노 빙하’ 등 남미에는 자연이 빚은 역작이 즐비합니다.

하지만 제가 진짜 남미를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사람’때문입니다. 남미 사람들은 정말 열정적입니다. 흘러넘치는 에너지를 제 속에만 담아두기 힘든 탓일까요? 그들의 열정은 늘 밖을 향합니다. 그들을 마주하고 있자면 그 열정에 ‘감염’돼 덩달아 신이 납니다.

 


                                                                      <볼리비아 소금사막>

북아메리카
북아메리카의 맹주는 역시 미국입니다. 사실 한 대륙의 실세로만 묶어 두기에 이 나라의 존재감은 버거우리만큼 큽니다. 세계 최강대국이란 수식어가 적합하겠죠.

이 거대한 나라를 여행하는 내내 저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 어지러움의 실체는 다름 아닌 ‘모순’이었습니다. 그것은 미국이 늘 자랑스러워하는 자본주의, 지유민주주의, 인권 등 보편적가치의 모순입니다.

연중 불야성을 이루는 라스베이거스, 세계금융의 심장부 뉴욕, 그리고 디즈니랜드∙유니버셜스튜디오 등 ‘유희산업’의 끝을 보여주는 로스엔젤리스…, 역시 미국은 자본주의의 상징입니다. 반면 화려한 네온 뒤편에 어김없이 수많은 부랑자와 노숙자가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몰락과 함께 ‘유령도시’로 변한 디트로이트에선 자본의 잔인함을 목격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어떤가요? 9∙11의 참상을 드러낸 ‘그라운드제로’에서, 이라크 전쟁의 전사자를 추모하던 보스턴 ‘자유의 길’에서 저는 미국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이 가치가 때로는 불순한 의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낍니다.

                                                                                      <뉴욕 맨하튼>

                                                          <보스톤 이라크전 희생자 묘역>


유럽
유럽에 발을 딛기도 전에 저는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유럽스러움’을 한껏 경험했습니다.

과거 제국주의의 망령이 세계를 옥죄던 때 유럽은 전 대륙을 ‘자기복제’의 장으로 삼았습니다.

동서로 수많은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은 오죽하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을까요. 지금도 홍콩과 인도,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영국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남미 모든 나라는 언어부터 문화까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쌍생아와 다름없습니다. 남아프리카에는 독일어 간판이 즐비합니다.

유럽 패권주의는 하나같이 원주민을 억압하고, 그들의 문화를 말살했습니다. 폭정이 할퀴고 간 자리엔 강자의 ‘무자비’와 약자의 ‘신음’만 덩그렇습니다.

반감 탓인지 유럽 여행을 하는 내내 제 발걸음은 무거웠습니다. 제 글에서 ‘유럽의 낭만’을 찾기 힘든 까닭입니다.

                                                                  <그리스 아테네>



아프리카
 “세계일주? 그럼 아프리카도 다녀 온 거야?”

한국에 돌아오니 사람들이 묻습니다. 다른 대륙은 그러려니 하나봅니다. 꼭 아프리카만 따로 떼어 이리 확인하려 듭니다. 사람들이 검은 대륙을 ‘미지의 땅’으로 여긴다는 방증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아, 프, 리, 카”, 이 넉자를 되 내일 때면 서로 다른 감정이 솟아납니다.

오랜 식민지로 말미암아 ‘홀로서기’가 서툰 검은 대륙은 기아와 질병, 내전까지 더해져 지구촌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더딥니다. 문명과 거리를 둔만큼 소심한 여행자에게 이곳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반면 수 천 종의 동식물이 천연 그대로 보존된 생태계, 디지털 세상 속 아날로그 삶을 사는 아프리카 원주민 등 오직 아프리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인류∙생태학의 가치를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듯 벅차오릅니다.

미지의 대륙을 향한 이 상반된 감정은 묘한 설렘을 불러일으킵니다.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사막>

오세아니아
태평양 남쪽에 오도카니 자리한 섬나라 호주와 뉴질랜드. 이들을 포함한 오세아니아 대륙을 이야기할 때 자연을 빼놓을 수 없겠지요.

호주에서는 자동차로 종단을 했습니다. 멜버른을 출발해 캔버라, 시드니, 골드코스트를 거쳐 브리즈번에 이르는 동안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앞에 절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한밤중 원시림을 달리다 한편에 차를 세운 채 쏟아지던 별무리를 올려다보던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청정국가인 뉴질랜드가 품은 자연은 좀 더 정갈하고 소박한 느낌을 줍니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 뜯는 양 떼를 보고 있자면 ‘디지털 놀음’에 지친 마음이 절로 치유되는 것 같습니다.

오세아니아 여행은 다채로운 자연만큼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호주 도로를 달리다 ‘로드 킬’의 참상을 목격, 개발만능주의의 폐해를 되새깁니다, 호주 사회에 자리 잡은 한인들을 통해 대한민국 청년의 현주소를 가늠하고 이를 통해 자기성찰과 반성을 해봅니다, 뉴질랜드 마오리족은 문화의 다양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상기시켜 줍니다.

                                           <뉴질랜드 로토루아의 마오리족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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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2kim.idomin.com BlogIcon 김주완 2009.07.14 0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쓸데 없는 굵은 글씨체와 필요없는 공백이 거슬린다

    • 탄타로스 2009.07.14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장님! 잘 지내셨죠? 덕분에 저도 잘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편집이 영 그렇네요. 공백 최소화하고 글자크기 줄여봅니다. 근데 굵은 글자체 수정이 안되네요.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lovessym BlogIcon 크리스탈 2009.07.14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블러그가 여기였군요...

    멋진 종합 여행후기 잘 읽었어요.
    저도 언젠가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

  3.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7.15 0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훌륭한 글입니다. 관점도 훌륭하시고요. 세계 일주기를 책으로 한번 엮어보시면 어떠실지... 큰 작업이 되겠지만... 보람있는 일 아닐까 싶네요. 탄타로스님의 시각으로 본 세계를 함 보고 싶네요.

    • 탄타로스 2009.07.15 09: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늘 둘러보시고 힘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그래도 지금 책 작업 중입니다. 이미 출판사에 초안 넘겼어요. 올해 말이나 내년초 책 나오면 파비님께 드릴게요.^^

  4. Favicon of http://hbjunsa.idomin.com BlogIcon 늘 축제였음 2009.07.19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 후기 잘 보고 있음. 나도 약 6개월 만에 블로그 다시 시작했음. 조만간 놀러오시길.

  5. 맨큐 2009.08.12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탄타로스님..그럼 올해말이나 내년에..책으로 볼 수 있나요??*^^*
    (무척 기대)..사람들한테..이 블로그 소개만 했었는데..
    책으로 나온다면..더 좋을 것 같아요..

    선물도 하고,..아무튼 엄청 기대됩니다.

  6.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www.cbfi-icemachine.com BlogIcon ice makers 2011.12.29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什么东西来的

  8. Favicon of http://www.EmergencyAnyTimeLocksmith.net/sixteen.html BlogIcon Marlborough Locksmith 2012.02.10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antastic job! The information presented was invaluable. I hope that you carry on with the good work done. 들러주시면
    <a href="http://www.EmergencyAnyTimeLocksmith.net/sixteen.html">Marlborough Locksmith</a>

비보를 접한 지금 가슴이 먹먹합니다. 
중국 신장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중국 공안의 무차별 폭력으로 156명이 목숨을 잃었다지요. 신장위구르는 티베트와 더불어 중국의 강제 병합 아래 신음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지난해 4월 중국여행을 하던 중 위구르 전통공연단을 만났더랬습니다. 하룻밤 만에 우리는 허물없는 사이가 됐습니다. 
2008년 4월의 그 밤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실크로드 사막 초입에서 그들은 내게 말했습니다. 한족동화정책에 맞서 그들 고유의 문화를 지키겠다고. 공안의 무자비한 탄압이 난무하는 영상을 보던 중 그 결연했던 눈빛이 떠올라 명치 끝이 아립니다. 
내 친구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중국 대도시를 떠나 서쪽으로 향했다. 하루를 꼬박 달려 도착한 실크로드의 발원지 시안, 다시 하루를 내달려 당도한 실크로드 관문인 둔황. 두 도시에서 나는 과거 카라반이 이룩한 영화와 함께 '승자 독식'의 패권주의를 보았다.


우리가 비단길이라 배워온 실크로드는 과거 동·서양의 상업, 문화, 교통의 교역로다. 한나라 때 수도 장안(현재 시안)을 떠나 서역길에 오른 여행가 장건이 실크로드의 기틀을 마련한 이후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서양의 로마까지 동서양의 교류가 꽃을 피우게 됐다.


둔황은 중국 쪽에선 실크로드의 출발지, 반대로 서역 쪽에선 종착지 역할을 하는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다. 실크로드 한가운데 위치한 타클라마칸 사막은 카라반의 목숨을 위협하는 장애물. 따라서 사막을 건너려는 자와 건너온 자 모두에게 실크로드의 관문인 둔황은 각별하다.


자신들의 안위를 신께 의지하려 곳곳에 지은 종교 사원, 각 민족의 언어로 쓰인 경전과 고문서 등은 둔황의 역사적 가치를 드높이고 있다. 그 중 불교 석굴의 백미로 꼽히는 '막고굴'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손꼽히는 인류의 자산이다. 이처럼 동·서양 문화가 맞닿은 실크로드, 그 이면에는 씁쓸하게도 '힘의 논리'가 만연해 있다.


우선 '실크로드'라는 용어부터가 그렇다. 당시 이 길을 통해 서방은 비단을, 동방은 보석과 직물을 주로 수입했다. '비단길'이란 이름 자체가 서방이 필요로 하는 품목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힘의 논리'는 청나라 시절 극에 달한다. 제국주의가 판을 치던 1900년대 초 서구열강은 청나라를 무력으로 개방한 후 대대적인 문화재 약탈을 감행한다. 실크로드의 관문인 둔황부터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이르기까지 수천 점의 문화재가 서방으로 흘러간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인의 분노는 대단했다. 둔황 막고굴을 관람할 때 일이다. 중국 현지인들과 함께 각 석굴을 돌아보던 중 한 지점에서 중국인 가이드가 입에 거품을 문다. 그의 시선이 멈춘 곳은 20세기 초 실크로드의 문화재 약탈 현황이 적힌 기록물. 그곳에는 당시 유물을 반출한 서구 탐험가들의 사진과 약력, 빼돌린 유물 개수가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함께 여행 중이던 일본인 친구 히로(25·교사)가 부연 설명을 해줬다. (당시 나는 역사 과목을 가르치다 여행에 나선 일본인 교사와 친분을 쌓았다.) 그는 "문화재 반출에 대한 중국인의 분노는 무서울 정도다. 앞으로 중국이 더 성장한다면, 현재 영국 대영박물관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퍼져 있는 그들의 문화재를 모두 되찾아 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해되는 대목이다. 어느 민족이건 자신들의 문화재가 약탈당한 것에 분노할 당연한 권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과연 중국은 순수하게 역사의 피해자일까'하는 의문이 고개를 든다.


실크로드가 낳은 인류의 문화유산은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로 갈수록 그 빛을 발한다. 티베트와 함께 중국 내 독립을 원하는 대표적인 소수민족인 위구르인은 자신들의 선조가 이룩한 문화유산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한족을 어떻게 바라볼까.


역사적 배경에서 그 답을 짐작할 수 있다. 원래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국에 속하지 않았다. 한 무제 때 잠시 중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랫동안 독립을 유지했다. 따라서 언어도 종교도, 생활방식도 중국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중국은 한 무제 때 이 지역을 지배한 전력을 바탕으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논리라면 같은 시기 한 무제에 멸망한 고조선을 근거로 한국도 중국 땅이라는 주장이 가능하다. 상상만으로도 섬뜩한 일이다.)


둔황 숙소에서 만난 위구르인은 중국과 소수민족 간의 이러한 이질감을 생생히 전해줬다. 한날 어디선가 들려오는 흥겨운 음악, 왁자지껄한 소리가 인도하는 곳에서 나는 위구르 전통음악 공연단과 인연을 맺었다.


위구르 전통복장을 걸치고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위구르어로 대화하던 그들은 나에게 찬란했던 고창고성(중국지배 전의 투르판 일대의 왕국)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설명했다. 영어, 위구르어, 한국어 그리고 손·발짓과 필담이 어우러진 대화였다.


그들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분명했다. 위구르인과 중국인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자신들 고유의 문화와 가치를 중국인이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것.


'강자는 약자의 것을, 약자는 더 약한 자의 것을…', 찬란한 고대문명을 낳은 실크로드에서 나는 그 이면을 분명히 목격했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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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알람 2009.07.08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이란 나라 북한이라 나라 이런 공산주위에서 신음하는 동료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워진다 국내에서 그렇게민주주위를 외치고 지금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가 뿌리채로 흔들린다고 통곡하는 젊은이 늙은이들의 외침이 이곳까지 전달이 안되서 어떻하죠? 해외 생활를 정말 누구보다 많이 하고 국내와 와서 느낀점 대한민국 민주주위보다 잘된 국가는 이 세상에 처음봅니다 민주주위라는 탈위에서 자기 이권만 주장하고 이용하는 민족은 이 지구상에는 없는것 같다 어떻게 서울한복판에서 노제를 지낸다고 소고기 수입반대에 많은 군중이 집결하는 나라도 이지구상에서 유례를 찿아 보기 힘들다. 그리고 국내에서 말잘하는 사람들이 왜? 중국이나 미국이나 그곳에서는 맞아죽을까 싶어서 말한마디 못하고 똥개가 집에서 짖고 밖에 끌고나가면 주둥이 닫고 낑깅 낑 하는 소리만 내는것 하고 무엇이ㅣ 틀리다 말인가 큰나라에가서 좀 민주주위를 한다고 하면 좋을것을.............

    • 알람끔 2009.07.08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한이나 중국 공산 주의에서 신음하는 동료? 개념이 없으시네.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부터 배우세요. 비유하고는 북한가서 신음이나 해라 꽃재비세끼야.

  3. 중국은.. 2009.07.08 1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생 자체가 워낙 다양한 민족으로 되어있어서 한곳이라도 독립을 주장하기 시작하면 걷잡을수없을정도로 국가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에.. 저렇게 독립을 주장하는것은 학살을 해서라도 막으려고 하는것이죠..
    중국의 기초정신이며 나라의 기반이라도 할수있는 '우리는 중국인'이라는 정신이 무너진다면 사실상 중국이라는 나라는 붕괴될수밖에 없으니까요.. 정말 슬픈일이네요

    • Favicon of https://jigubon.idomin.com BlogIcon 탄타로스 2009.07.09 00: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어려운 문젭니다. 저 역시 소수민족의 독립을 부추기는 건 현실적으로나 비합리적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사태처럼 소수민족에 대한 한족의 차별은 반드시 시정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슝마오 2009.07.08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개인적으로 우루무치에 한족,위구르족 혼혈 친구가 살고 있어 뉴스보며
    맘 졸이고 있답니다. 신장 사람들 굉장히 호탕하고 낙천적이고 한번 친구로 여기면
    가족같이 챙겨줍니다.

    중국 정부는 올림픽이라는 허상으로 one world, one dream을 외치고 중화민족주의를
    외쳐댔지만 이미 사회 곳곳에 너무도 깊숙히 자리잡은 갈등요소가 표출되고 있지요.

    아무튼 더는 죽거나 다치는 사람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되었으면 바랍니다.

  5. 후유~ 2009.07.08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질일이 터지고야 말았네요.
    사실 소수민족 차별은 예전부터 시한폭탄 같은 문제였잖아요.
    한족들이 공직 노른자위나 기득권 차지하고 개발이권도 나누어주지 않은 건 문제가 많다고 봐요.
    제가 가장 경악했던건 위구르 자치구에서 40회 이상의 핵실험을 했다는 거요!!!
    이것때문에 선천성 장애아로 태어나는 장족 아이들도 많다고 하던데......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요!
    한나라 국민이라고 여기지 않으니까 이런 핵실험도 감행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요!!!!
    이제부터라도 기득권을 나누고 소수민족의 문화 언어를 존중해서 잘 화합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 ㅋㅋ 2009.07.08 12:42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무지하시네요, 언론들에 휘둘려 머가
      원인인지 정확히 파악못하고 단편만 보고
      판단하니..참, 무지하다라고 할가 ..우물안
      개구리가 이럴때두고하는말이군요,
      중국현지에 가보세여,과연 중국의 소수민족들이
      한국언론에 비쳐진것처럼 억압받고 자유가 없이
      불쌍하게 사는것인가 말이죠. 물론 한족동화정책은
      분명히 있습니다만 티벳독립이요 위그르독립이요
      이러는건 전쟁을 부추기는겁니다. 잔인한 네티즌들.

    • 후유~ 2009.07.08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짧지 않게 유학 다녀왔거든요?
      다 보고 들은바가 있어서 하는 말이예요
      오랜기간은 아니지만 하미까지 여행도 다녀봤고요

      위구르족이 불쌍하게 사는 모습은 제가 듣고 상상한바 이상이더이다 나참...

    • ^^; 2009.07.08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전 중국을 좋아하지만 이런 면에선 회의감이 드네요.
      정작 타인들에게 자신들의 일(티벳, 위구르)에는 관여하지 말라고 하면서..
      북한에는 상당히 깊게 관여하고 있단 말이에요.
      (현재 북한의 중국 의존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
      그로인해 남북한의 통일로 인해 얻을 예상 피해액은 타국에 비해 중국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동아시아 매장량1위인 석유개발권, 광물자원매장량 세계 7위안에 드는 광물 개발권, 북한 내 도로건설사업, 항만의 부두건설사업 등.. 북한이 관여하지 않은 사업은 어의 없다고 볼 정도임)
      더군다나 이런 중국의 지원때문에 한반도의 통일이 점점 멀어지고 있구요.
      (미국과 남한이 강경책을 펼치면 북한은 아직 중국이 남아있으니 배째라 이런 식으로 나오고 북한은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이런식으로 악순환의 연속)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북한과 중국은 그런 사이가 아니라는 둥.. '이번 미사일 발사 시간도 북한은 우리에게 잘못 알려주었다.' 라는 식으로 나오지만.. 이건 그저 쇼에 불과하다는 걸 다들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6. 귀찮은고양이 2009.07.08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 나라 일이지만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뭔가 쓰려고 했는데 막상 쓰려니 갑갑할뿐입니다.
    신장 위구르도 그렇고, 티벳도 그렇고
    비록 중국 영토지만 그들의 문화와 역사, 존엄성을 인정해줬다면
    과연 이런 사태까지 일어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 이상 다치고 죽는 사람없이 잘 해결되어야할텐데...
    정말 슬픈 일입니다.

  7. 슬프네요 2009.07.08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이 일제와 다른게 뭔가요.
    우리나라도 조심해야 할듯 합니다. 특별히 북한이 걱정입니다.
    동북공정이 마음에 걸리네요.

  8. 야옹 2009.07.08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으면서 유지되는 관계는 언제나 불안하고 위태로워요.

    '위구르인의 시위때문에 피해를 입었으므로 이제 우리가 복수할 차례'라고 주장하는 한족들은
    정말로 한심하더군요.
    자기가 그간 누리던 평화가 누군가들의 희생으로 이뤄진 것이란 걸 조금이라도 인식한다면
    그런 말은 못할 겁니다.
    모든 국가나 사람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행동하겠지만
    그래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정말로 탐욕으로 똘똘뭉친 느낌이 들어요,
    어마어마한 인구수가 주는 막강한 이미지 때문에 더 흉폭해 보이기도 하고..

    아무튼 이번 사건이 원만하게 해결되고
    무엇보다 위구르 독립할 수 있기를 바래요.

  9. 우리집강쥐바기 2009.07.08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구르, 티벳의 독립을 지지합니다.
    약소 민족의 자유를 기원합니다.

    중국은 제국주의 야욕을 버리고 과거 자신들의 서양열강과 일제로부터 침략당한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10. 정말... 2009.07.08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걱정이 되는 일은..

    저렇게 위그르, 티벳..등.. 중국 소수민족문제가 전면으로 나오게 되면..

    중국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해결방법(?)은

    한반도내에서의 남북전쟁이 아닐까 합니다.

    미국경제문제 해결과 중국 소수민족문제 해결이 합쳐진다면

    힘없는 한반도는

    그들의 경제발전과 국내 안정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 푸헐헐 2009.07.08 17:57  댓글주소  수정/삭제

      연변등의 조선족짱께새끼들을 말살시키는게 가장 좋은 방법같은데~~

      조선족짱께씨 ㅎ

  11. Favicon of http://blog.daum.net/gnathia BlogIcon 달려라꼴찌 2009.07.08 16: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헉...그런일이...21세기에?

  12. 행동하는 노동자 2009.07.08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인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자경단을 구성해 몽둥이를 들고 위그루인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일제의 극악무도함을 말하면서도 가슴 깊숙히 내재된 중국사대주의는 말하지 않더군요
    예를 들면 진시황이라고 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진시왕으로 말해야 함에도 황이라고 하는 것부터가 사대주의에 길들여진 경우가 아닐까요? 러시아 사대주의 미국사대주의 일본사대주의 영국사대주의 등등 교유과 언론은 그 떄 그 때 지배계급이 협조하는 국가에 대한 교육,언론 공세를 통해 민중들의 생각을 그 쪽으로 휩쓸고 가고 있네요
    빨리 통일이 되어 중국에게 힘있는 목소리를 미국에게 힘있는 목소리를 냈으면 합니다
    정말 중국 한족들의 행태를 보니 피가 거꾸러 쏟는 것 같습니다

  13. Favicon of http://어몬애ㅑㅁ@이ㅏㅁ너애ㅑㅕㅁ BlogIcon 니 친구가 위구르면 않죽었다 2009.07.08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쓴이야~ 니 친구가 위구르족이면 죽지는 않았을거다...죽은 사람대부분이 한족과 회족과 다른 민족이다..뭐? 중국공안탄압에 150명 죽었다구? 개소리 치지 마라...위구르족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마구 죽이구 있다..그러구 중국 가봐라..위구르 사람들에 대해서 다른 민족 사람들은 무서워하구 싫어한다...쫌만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칼질하구 대도시마다 위구르족 도둑들이 넘친다..솔직히 말해서 도둑이 아니라 강도다..대낮에 사람가방 훔치다 발각돼서 뭐라하면 곧장 폭력이다...니 친구두 그런 인간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14. 민구땡 2009.07.08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의나라 일이 아닌듯.. 한무제때 통치했던걸로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중국을 보면서 생각나는것..
    '동북공정' ...
    설마가 사람잡는다고 고구려 역사 자기네들에게 편입시키고 북한 망하고 나면 자기네 영토라고 할거같네요.. 한무제때 통치한걸로 자기영토라고우기는 판국에... 안타깝네요.. 친구분들 무사하시길 빕니다.

  15. 나다 2009.07.09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 보다가 한마디 남깁니다.
    저는 올해 3월까지 신쟝지역 우루무치와 투루판을 왔다갔다하며 장기거주를 한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저 위구르 .회족 친구들도 많이 있구요. 그들과 함께 생활도 해보았습니다.
    뭐 좀 그런말만 나오면 짱꼴라에 뭐 조선족 말 나오는데, 저는 한국인이며 종교는 없습니다.

    중국 공안의 무차별 폭력으로 156명이 목숨을 잃었다는건 아는데,
    먼저 시작된 위구르족 폭행을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하는건가요...
    위구르족이 한족만 죽인거 아닙니다. 무작정 잡히면 다 죽인겁니다.
    중국 공안이 한족만 있는것도 아니고요. 위구르인들도 많습니다.

    길거리에 있는 시민들한테 돌던지고,
    잡히면 도끼로 창자 까지게 찍어내고, 목 짤라버리고, 사시미칼같은걸로 몸을 짤라버리고,
    차.버스 무조건 뒤집어서 불질러버리고. 집하고 상점 불질르고.. 상상이 가는건가요?
    몇시간동안 이랬죠...공안이라도 나타나지 제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님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것이고, 우루무치 전체가 난장판이 될껍니다. 더 확장되겠죠..
    신장에서는 이런일이 작게 많이 있었으니까요..
    그들이 분명 한족만 죽인게 아니죠. 위구르족 회족 역시 많이 죽었습니다. 잡히면 바로 죽였습니다.

    중국시간 밤9시 10시에 일어난일...12시쯤부터 새벽에 중국싸이트에 사진들이 올라더군요.
    몇분안되어서 전부 삭제되었지만. 중국 정부 제공한 동영상이 아닌 일반 사람이 찍은..
    공안이 총을 쏴서 누군가가 희생을 해야만 끝이 보인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합니다.


    독립이니 뭐니 문제도 있고 광동 장난감공장 원한에다 미국 위구르 지도자 말에 따르며
    돈에 관련된것도 있고, 많은 문제들이 있겠지만.
    무작정 죄없는 시민들한테 폭행을 하는건 더 나쁜일이지 않을까요?
    정도가 지나치네요..

    님 친구분 그 시간에 얼다오치아오랑 난문 다시먼 이 정도 길거리에 없었으면 별일없을껍니다...

    • 탄타로스 2009.07.09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리있는 말씀이십니다. 저 역시 독립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건 현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인들에 대한 폭력에 대해선 몰랐어요, 사실이라면 그 역시 지탄 받아야 마땅하겠죠. 이 땅에서 폭력이 사라지길 간절하게 바라봅니다. 의견 감사해요

  16. BlogIcon 나다 2009.07.09 0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의견을 나쁘게 보지않아주셔서 고맙습니다.
    현재 신강 전역 통화 인터넷 등 통신이 두절되어 연락이 되질 않아 걱정스럽습니다.
    제가 오래 거주했던 지역이라 여러가지 생각도 나고 남일같지 않아서 말이 길어진것같네요.

    ㅡㅡ
    중국인들이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자경단을 구성해 몽둥이를 들고 위그루인들에게 달려드는 것을 보았습니다.'위구르인의 시위때문에 피해를 입었으므로 이제 우리가 복수할 차례'라고 주장하는 한족들은
    정말로 한심하더군요.
    ㅡㅡ

    위에 이 글을 보니, 정작 자신의 가족이 시위대의 칼로 인해 이유없는 죽음을 당했다면...
    복수할 생각도 없고, 몽둥이를 들 생각도... 그냥 죽음을 받아드릴분들 같습니다.

    한족 가족의 여동생이 죽음을 당하자 그의 오빠가 위구르족만 보면 살인충동을 느낀답니다.
    자기 사랑하는 가족이 이유없이 죽음을 당했다면... 제 정신이 아니겠죠... 한심한가요??
    그런 사람들이 한둘 모이고 모이면... 사상자가 엄청나답니다... 공식발표는 발표일뿐...

    저야 뭐 누가 좋고 나쁘다도 아니고, 이렇게 독립이 될지 그들 뜻을 이룰지 상관할바는 아니지만
    한족한테 사기도 당해보고, 이상하게 접근하는 위구르족도 만나면서 살아본 저로써
    많은분들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쳐 말하는것같아서 안타깝습니다.

    무자비한 폭력과 살인은 민족간을 차별을 떠나 할짓은 아니라고 봅니다..

  17. - 2009.07.09 0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어느쪽에서 서건 정당화 될 수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시한폭탄같은 문제를 끌고온 배경에는 많은 원인들이 중첩되어 이런 사태가 일어난 것 이겠지요. 잘은 모르지만 대량학살이라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18. 다분히 정치적인 문제... 2009.07.09 0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희 학과 특성상 중국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이 많은데, 중국에 체류한 기간이 오래될수록 한족과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긴장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토착민 위구르족은 이슬람교를 믿고 터키어를 쓰고 한족과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죠.;;
    제 친구 중 한명이 신장북부를 여행할때도 폭력사태가 발생했다던데.... 이상하게도 학교에 돌아와보니 다롄 사람들은 전혀 그 뉴스를 접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중공이 그런 뉴스를 완전히 통제하는 듯....
    보통 중국인들에게 물어봐도 다들 대답을 회피하고요...
    자신들은 그저 일반 백성이기 때문에 그런일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는데요 사실 그건 중국 일반 백성의 가장 큰 장점같아요. 아무 책임이 없는거... 제가 만난 사람마다 거의 대부분 자기를 일반백성이라고 부르고 다들 세상 돌아가는 일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태도가 은근 질리더라고요...너무 무책임한것 같기도 하고 안되보이기도 하고...

    가끔 학교얘들끼리 모여서 얘기해보면 신장이나 티베트에 꼭 가보지 않아도 중공이 고약한 식민통치를 할것 같다고 해요. 그냥 그렇게 짐작들 하는데...일단 인종차별이 심하거든요 꼭 서울에서 울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노동자 차별핟듯이요.
    종교는 뭐...전혀 존중할것 같지 않고 비중국적인 시각은 고려조차 안하는 경향이 있어요. 배타적 민족주의가 너무 심해서 그러는데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국제도시의 학생들도 그런 중화주의가 참 심하게 느껴져요. 말하다보면 좀 많이 보이죠...
    소수민족과의 관계개선 측면에서 글쎄요...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다민족국가랑은 너무나 달라요 태도도 그렇고 한족들이 다른 문화를 (서구 빼고) 존중한다는 게 일단 상상이 가질 않아요.

    아는 얘들은 투루판까지 여행다녀오고 그러던데 저는 거기까진 안가봤고... 근데 제가 보기엔 되게 아름다운 지역들이 너무 급하게 현대화되는 것 같았어요. 비교적 손이 덜 간 중국의 변방은 그대로 두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요. 구시가지 보존도 그렇죠. 그걸 보려고 관광객들이 오는건데...좀 안타까웠어요. 그러는 과정에서 소수민족들의 문화도 함께 없어져버리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두 중국에 몇년 공부했다고 주저리 주저리 썼는데 너무 허접한것 같아요.ㅠㅠ
    제가 중국에서 너무 안좋은 꼴을 많이 봤던터라 한족에 대해서 그닥 감정이 좋진 않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번 폭력사태가 기득권자인 한족측에 책임이 없다...라고 말할순 없을 것 같아요. 뭐 물론 외신들이 앞으로 더 자세한 소식을 전해주겠지만요.

  19. 1 2009.07.09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거 보다 더 한걸 겪었지만 우리에게는 학습효과가 없나 봅니다. 우리도 힘이 없으면 저런 상황을 맞이 하겠지요. 밖에서 횃불 같은 거 들고 반정부 시위해서 시민에게 피해주고 시국선언해서 국론분열하면 우린 약해질 뿐입니다.

  20. 김선도 2009.07.12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탑깝습니다...ㅠㅠ

  21.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국을 여행하다 한국인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국의 낯선 언어와 문화 사이에서 혼자 방황하던 ‘나 홀로 여행자’라면 내 나라 사람을 마주하는 기쁨은 배가된다. 아직 한국 여행자가 많지 않은 남미나 아프리카 등 오지에서 한국인끼리 만날 경우 옷깃이 스치는 순간 호형호제 할 정도로 돈독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일단 통성명이 끝나면 한국 배낭족들은 그간 여행하며 겪은 설움을 토로하고 맞장구치며 서로를 위로한다. ‘외국어 울렁증’ 탓에 단내 날 정도로 닫혀 있던 입들은 쉴 새 없이 한국어를 쏟아낸다.


이야기 도중에 종종 이런 말을 하는 아무개 씨들이 있다.

“내가 어디를 여행하다, 무슨 실수를 했는데 너무 창피했다. 외국인들이 다 쳐다보는 통에 ‘쓰미마생’하고 일본인인 척 했다.”

“나도 여행 중에 부끄러운 일이 있었는데 쳐다보는 현지인들에게 ‘니하오’하고 중국인인 척 한 적이 있다.”

어느 정도 농 섞인 얘길 터. 면 팔릴 일이 있을 땐 겉모습만 보고는 한중일 삼국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일본인 혹은 중국인 행세를 하는 게 애국하는 길이란 우스갯소리다.


얘길 듣다보면 문득 궁금증이 밀려온다. 여행자들이 종종 얼굴이 붉어질 만큼 부끄러운 실수를 한다는 말인 즉 배낭족에게도 분명 지켜야할 윤리가 있다는 것. 도대체 여행자 윤리란 뭘까? 그 나라의 법과 관습 지키기, 유적지나 유물 훼손하지 않기, 나와 다른 종교 존중하기, 뭐 이런 것들이 되지 싶다.


위에 언급한 윤리들은 하나같이 상식적이다. 너무나 당연해서 식상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미디어의 발달로 지구촌 곳곳의 문화 ‘엿보기’가 일상화된 지금, 대부분의 배낭족들은 이런 윤리들을 잘 지키는 편이다.


하지만 굉장히 중요함에도 대부분의 여행자가 당연한 듯 무시하는 윤리가 있다. 선입견으로 얼룩진 눈으로 타 민족을 재단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지구촌에는 헐벗고 굶주리는 이웃이 너무도 많다. 문명과 담을 쌓은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생활을 가까이서 보자면, 가슴 한편이 찌릿하다. 인도의 한 시골마을에서 목격한 삶의 현장은 처절했다. 수년째 이어진 가뭄으로 물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은 고육지책으로 우물 바닥에 고인 썩은 물을 펐다. 수도공급은 꿈같은 일이다. 수인성 전염병으로 아이들의 손발은 곪아터졌다. 마을에선 문명화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소달구지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었고, 많은 이들이 구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신발을 신은 이를 찾기 힘들다. 거리 한편에 거적을 깔고 자는 이가 지천이다.


남아메리카는 어떤가?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남미의 개발도상국에는 빈민가가 참 많다. 거리를 걷다보면 마약을 들이밀거나 성을 파는 이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불안정한 통화 탓에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보다 거리의 불법 환전이 유리한 나라가 다수다. 빈곤함은 공직자의 부정을 부추긴다. 베네수엘라에서 만난 부패한 경찰, 이유 없이 짐 검사를 반복하며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하던 그들을 떠올리면 두고두고 입맛이 쓰다. 에콰도르에서 만난 잉카후예들은 하나같이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아프리카의 사정은 더 열악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미비아로 넘어가는 도로가엔 차를 얻어 타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흡사 피난을 떠나는 난민의 모습이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역 주변에선 노상강도를 만났다. 가진 것 없는 추레한 배낭여행자도 그들 눈에는 ‘배부른 돼지’로 보인다. 돈이 없던 나는 그날 맨발신세를 면치 못했다. 네팔 어디쯤에서 산 값싼 신발을 그들은 감지덕지하며 벗겨갔다. 그나마 아프리카에서 잘 산다는 남아공이 이렇다.


이처럼 가난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는 개발도상국을 여행하는 배낭족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들은 왜 이토록 가난할까?”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할 때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여행자는 없다. 우리는(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여행자) 그들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이유를 그들 문화에서 비롯된 기질과 연관시킨다. 이런 판단은 객관적 근거보다는 미디어나 책 등 타자로부터 주입된 선입견을 바탕으로 한다.


예컨대 인도가 가난한 이유를 우리는 그들 삶을 관통하는 힌두교 떄문이라고 단정 짓는 경향이 있다. 카스트제도라든가 미신적 요소가 짙은 종교의 특성이 인도 경제를 후진적으로 만든다고 믿는다. 남미의 후진성을 탓할 때는 흔히들 놀기 좋아하는 ‘한량 기질’에 혐의를 둔다. 내일에 대한 계획이나 투자 없이 그저 오늘 하루를 즐기는데 혈안이 된 호모 루덴스(유희인간)적 유전자가 발전을 저해한다고 재단한다. 아프리카의 경우 선천적으로 게으른 국민성이 빈곤함을 벗지 못하는 이유라고 속단한다.


이런 선입견은 오래도록 지구촌 패권을 장악해온 서구에서 비롯됐다. 17, 18세기에 걸쳐 세계지도를 펴놓고 ‘땅따먹기’에 열을 올리며 개발도상국들을 식민화했던 유럽 열강의 시각인 것이다. '문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이들의 주장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장하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문화주의의 한계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다. 강대국이 제도화한 신자유주의의 맹점을 파헤친 이 책에서 장 교수는 ‘9장 게으른 일본인과 도둑질 잘하는 독일인’을 통해 문화주의와 경제발전의 필연성을 경계하고 있다.


장 교수는 “문화는 변화한다. 많은 문화주의자들이 은연중 전제하는 것처럼 문화를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며 “경제 발전에 확실하게 좋거나 나쁜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근거로 그는 독일과 일본, 한국 등을 예로 들고 있다. 19세기 중반 독일 경제의 비약적 발전이 있기 전 영국인들은 독인인을 ‘둔하고 굼뜨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로 정의 내렸다. 또 일본이나 한국 역시 유교라는 전근대적인 사상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한 지금의 평가는 어떤가? 둔하고 굼뜨고 정직하지 못하다던 독인인들은 철두철미하고 차분한 민족으로 변모해 있다. 전근대적 사상으로 경제발전에 걸림돌이라던 동아시아의 유교는 오히려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 가치들을 품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 마디로 이들 나라의 경제발전을 전후로 해 문화주의자의 평가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는 얘기다. 이런 근거들을 바탕으로 장 교수는 개발도상국의 후진성은 온전히 문화적 기질에 따른 것이 아니라 열악했던 경제환경이 안고 있는 한계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 환경이 긍정적으로 변화하면 해당 국가 사람들의 기질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장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지금 개발도상국들이 처한 열악한 경제환경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따지는 일이 가난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이미 언급했듯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서구열강, 정확히 유럽 여러 나라의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의 착취는 오랜 시간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자립을 방해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적 후진성이 그들의 기질 탓이라는 가해자의 주장은 자신들의 잘못을 가리려는 ‘물타기’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개발도상국의 가난을 문화적 기질 탓으로 여기는 것은 가해자인 서구 열강의 ‘책임회피’에 힘을 실어 주는 일이며, 피해자인 개발도상국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다. 여행자의 시각이 흐려질 때 한 사회가 처한 현실을 왜곡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여행자에게도 지켜야할 윤리가 있는 것이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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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lotusnegra.tistory.com BlogIcon lotus_negra 2009.06.28 2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이가는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2. Favicon of http://bacon.tistory.com BlogIcon Bacon 2009.07.08 09: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잘 읽고 갑니다. @_@

  3. 맨큐 2009.08.11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오랜만에..들어왔어요^^

    공감가는 글..잘 읽었어요

  4.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5.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fitch-sal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uk 2011.11.11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왜 저는 케이온이라고 읽을까요..?

  6. Favicon of http://www.burberrysalesbags.com BlogIcon burberry outlet 2011.11.1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게 있었나.. 그런데 제작자가 출신이 일본인가? 콘이 나와있네..

  7.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sale 2011.11.1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 만들었네 블로그 ^ ^ ; 링크할겡

 

                                                                            <인도 델리의 만수>

흔히들 한류(韓流)의 무대하면 중국, 대만,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만을 떠올린다. 용어 자체가 이 지역에 불어 닥친 한국 대중문화 열풍에서 비롯됐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부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류가 세계 곳곳에서 보다 광범위하게 넘실거리고 있단 얘기다. 지난 1년의 여정을 통해 느낀 바, 한류는 동아시아를 넘어 맹렬히 서진 중이다. 인도를 거쳐 중동 모래바람을 타고 유라시아의 가교 터키까지. 이 뿐이랴. 이집트를 거점으로 검은 대륙 아프리카 초입에 상륙한 한류의 기세는 등등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려면 한류에 대한 개념 확장이 필요하다. 서쪽의 한류는 동쪽의 그것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한류가 가수와 배우 등 한국 연예인의 인기를 바탕으로 한 ‘대중문화 열풍’을 의미한다면, 서진 중인 한류는 한국 여행자를 겨냥한 현지인의 ‘마케팅 열풍’을 의미한다. 동 한류가 한국 문화의 해외진출로 이뤄진 인위적인 현상이라면, 서 한류는 한국 여행자의 객심(客心)을 잡으려 현지인이 일으킨 자발적 현상이다.


먼저 인도를 보자.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자신을 ‘만수’라 소개하는 현지인을 많이 만나게 된다. 델리, 아그라, 카주라호, 바라나시 등 한국인 여행자가 몰리는 도시에는 어김없이 만수가 넘쳐난다. ‘왜?’, ‘언제?’, ‘어떻게?’ 만수라는 예명이 쓰이기 시작했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추측은 가능하다. 한국인을 상대하던 인도 관광업 종사자에게 누군가 푸근한 이미지의 만수라는 별칭을 붙여줬을 테고, 덕분에 그는 한국 여행자 사이에 유명인사가 됐으리라. 이에 수천 킬로 떨어진 도시까지 ‘만수 마케팅’이 퍼졌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수도 뉴델리의 여행자 거리인 빠하르간즈 골목에 조그만 상점이 있다. 이 가게의 주인 역시 만수다. 입구에 ‘만수네 짜이집’이라는 한글 간판이 떡하니 걸려있다. 만수는 한국인의 정서를 간파하고 있다. ‘에누리’는 기본이요, ‘덤’을 제공하고 ‘애프터서비스’도 확실히 해준다. 나이에 상관없이 남자에겐 ‘형’, 여자에겐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 친근함을 더한다. 어설픈 한국말로 농담도 곧 잘한다. 이러니 한국 여행자들은 거리가 멀더라도 웬만하면 ‘만수네 짜이집’을 찾는다. 만수의 성공에 자극받은 주변 상점들이 하나 둘 한글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만수의 아성을 쫒기에 힘이 부쳐 보인다.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의 만수는 어떤가. 강가(갠지스강)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조각배를 태워주는 만수 역시 자칭 지한파다. 동틀 무렵과 해질녘 강가의 신성한 일출∙일몰을 보려 강어귀로 나오면 어김없이 수 십 명의 조각배 호객꾼들이 붙는다. 서로들 자신의 배를 타라고 아우성이다. 어지러이 날아드는 영어와 인도어 사이에, “나 만수에요. 만수배 타요”하는 다소 어눌한 발음의 한국말이 들려온다. 만수다. 타국에서 그것도 현지인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우리말이 그저 신기하고 정겹다. 왠지 모를 신뢰감에 호객꾼을 비집고 만수 배에 오르게 된다.


한국 여행자의 객심을 잡는 보증수표인 만큼 인도의 관광업 종사자들은 너도 나도 만수로 개명(?)하고 있다. 자연히 만수들 사이에선 진위 논란이 한창이다. 서로 자신이 원조라 주장하는가 하면, 상대가 짝퉁이라며 험담을 늘어놓기도 한다. 바라나시 만수가 카주라호 만수와 ‘맞장’ 떴다는 미확인 소문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측면이 더 크다. 뼈 속까지 만수가 되기 위해 이들은 우리말을 독학하고 한국 문화와 정서를 배우려 노력한다. 자발적으로 한류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인도에 만수가 있다면 중동에는 지한파로 통하는 ‘한류 4대 천왕’이 있다. 이집트(지리상 북아프리카지만, 아랍국가란 특성상 중동으로 분류)의 ‘만도’와 요르단의 ‘지단’, 시리아의 ‘압둘라’, 터키의 ‘헥토르’가 그들이다.


이집트의 만도는 ‘4대 천왕’ 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파라오의 무덤 ‘왕가의 계곡’으로 유명한 룩소르에서 만도는 다양한 일을 한다. 요식업과 숙박업, 투어가이드 등 굵직한 일을 비롯해 기차표 예약이나 물품구입 등 여행객 편의를 위한 자질구레한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물론 그의 손님은 모두 한국 여행자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룩소르의 모든 길은 만도로 통한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독학했다고는 믿기 힘들만큼 훌륭한 한국어 실력과 한식 요리솜씨는 그가 한국인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를 방증한다.


시리아 하마의 숙박업소에서 매니저 일을 하는 압둘라 역시 한국인 여행자 사이에서 유명하다. 한국어 한마디 할 줄 모르는 그는 사람 됨됨이 하나로 객심을 사로잡은 경우다. 먼저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님 뒤치다꺼리에 여념 없는 그는 ‘손님이 왕’이어야 하는 한국정서에 꼭 들어맞는 인물이다. 요르단 와디럼 사막투어의 지단과 터키 페티에의 헥토르 역시 그들만의 노하우로 한국 여행자를 섭렵하고 있다.


지구촌 여기저기 발품을 팔아본 결과, 이렇듯 특정 국가의 여행자를 겨냥한 마케팅의 대상은 한국이 유일하다. 우리 보다 훨씬 오랜 세월 여행 인프라를 구축해온 유럽이나 북미, 일본을 상대로 이런 전략을 구사하는 현지인을 본 적이 없다.


왜 일까? 나름 고심 끝에 결론을 냈다. 한국은 해외여행의 족쇄가 풀린 지 올해로 고작 20년이다. 허나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 선진국에 수 십 년이나 뒤졌지만, 한국의 해외여행자 수는 단 기간 내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여행자는 넘쳐나건만, 이미 여행 노하우가 쌓인 선진국에 비해 한국의 여행 정보는 빈약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인 여행자의 여행 경로는 경험자의 수기에 좌우되는 경향이 크다. 예를 들어, 앞서 여행한 이가 ‘이집트 룩소르에 갔더니 만도라는 사람이 알아서 해주더라’는 정보를 주면, 많은 이들이 같은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는 얘기다. 현지 관광업 종사자들에게 한국 여행자는 무주공산이자, ‘무진장(無盡藏)의 곳집’인 셈이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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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ismee_amal BlogIcon 아말 2009.06.21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전 룩소르의 관광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요,
    우리 학생들도 만도를 능가하는 가이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트랙백 하나 달아놓고 가요^^

  2. 2009.06.23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이효선 2009.07.01 1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재미있고 신기하고, 꼭 비행기 타는 기분~ >ㅡ<

  4. Favicon of http://bacon.tistory.com BlogIcon Bacon 2009.07.08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재밌게 잘 쓰셨네요. 저는 제가 사는 미국을 중심으로 여행을 다니는 편이라 세상을 두비신 탄타로스님께는 못 미치겠지만.. 확실히 여행을 하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많은 것 같아요.
    탄타로스님 글에서도 그런 것들이 느껴지네요. 너무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5. G 2009.07.08 13: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헤헤헤 재미있어요.
    추천!! 만수야~~!!!

  6.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7.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fitch-sal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uk 2011.11.11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왜 저는 케이온이라고 읽을까요..?

  8. Favicon of http://www.burberrysalesbags.com BlogIcon burberry outlet 2011.11.11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9.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sale 2011.11.1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 만들었네 블로그 ^ ^ ; 링크할겡

여행이 끝났습니다. 지난해 4월 14일 오후 2시 홍콩행 비행기를 탔더랬지요. 이달 14일 오후 4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으니, 정확히 365일하고 2시간이 흘러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365일은 공전 주기라지요. 태양 둘레를 한 바퀴 돌던 지구를 따라 저 역시 그 '푸른 별' 안에서 공전을 한 셈입니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미,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순으로 6대륙, 30개국, 135개 도시에서 발품을 팔았습니다.

아프리카 남아공의 한 초원에서.


여행이 끝났습니다. 일상생활 틈틈이 저는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침에 눈 뜰 때 푹신한 침대와 상쾌한 향의 이불이 낯섭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혼자라는 사실이 마냥 신기합니다.

주머니 사정 상 여행 내내 예닐곱 명이 함께 생활하는 값싼 기숙사형 숙소에서 자야했습니다. 아마 거기에 길들여진 탓이겠죠.

끼니때도 마찬가집니다. 김치 한 접시로도 밥을 거뜬히 비웁니다. 빵 조각으로 연명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성찬입니다. 허리춤을 옭아매던 '복대'(귀중품 보관을 위해 바지 안에 차도록 만들어진 지갑)도, 자물쇠를 채운 무거운 배낭도 필요 없습니다. 더는 길 위에서 헤매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속으로 되뇝니다. '아! 진짜 여행이 끝났구나. 여긴 한국이구나'하고 말입니다.

세상에 눈뜨려 6대륙 30개국 135개 도시서 발품
여행은 채우고 비우는 과정…좋은 기억만 남아


여행이 끝났습니다. 마냥 좋을 줄 알았습니다. 여행 말미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렸기에 더욱 그러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마흔 시간 동안 꼬박 기차를 탄 후 지독하게 몸살을 앓았던 중국에서, 피 같은 여행경비를 사기당한 인도에서, 발톱이 빠져 죽을 거 같이 아픈 채로 올라섰던 히말라야에서, 한밤중 숙소를 찾아 낯선 골목을 헤매던 콜롬비아에서, 뜨겁고 건조한 모래바람에 숨 쉬기조차 버거웠던 중동의 사막에서, 먹을거리가 없어 주린 배를 부여잡아야 했던 쿠바에서, 밤새 모기에 뜯긴 채 혹여나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았을까 전전긍긍하던 아프리카 초원에서, 저는 늘 집 생각을 했습니다.

멋쩍고 객쩍은 고백이지만 10kg이 빠져 수척해진 모습을 거울 속에서 마주하고는 펑펑 운 적도 있습니다. 약비나도록 여행했으니 당분간은 꼼짝 안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일까요. 돌아온 지 열흘 만에 좀이 쑤십니다. 떠나 간 곳에서는 제자리를 그리더니, 이제는 제자리에서 떠나갔던 곳을 그리고 있습니다. 뼛속까지 짙게 밴 이 역마살을 어찌하리오.

아프리카 나미비아 모래언덕 듄45에서.


여행이 끝났습니다. 끝나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무엇을 보고 배우느라 그 오랜 시간 동안 여행을 했느냐고. 질문 앞에서 번번이 말문이 막힙니다.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단숨에 토해내기에 벅찹니다. 어쩌면 혼란스러워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십 수 년 동안 3자로부터 주입돼 제 속에서 굳어진 것들이 당사자 앞에서 무너져 내리길 반복했으니까요.

제 눈은 보았습니다. 서구사관에 익숙한 탓에 편견 일색이던 이슬람국가를 '달리' 보았습니다. 식민지배의 아픔이 남아있는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바로' 보았습니다. 미약한 힘이나마 정체성을 지키려 투쟁하는 소수민족을 '아프게' 보았습니다. 어디 이뿐일까요. 역사는 참으로 약자에게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행이 끝났습니다. 이제는 제 스스로에게 물을 차례입니다. 저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여행 떠나기 전 다짐했었습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비우고, 또 채워오겠다고. 내 안에 쌓인 낡고 묵은 것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참신한 가치들을 담아 오겠다고.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부끄러워 낯빛이 빨개집니다. 깜냥 부족한 저는 예전 그대로입니다. 여행만 다녀오면 시야가 탁 트이고, 대번에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제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다행입니다. 제가 무엇을 버려야 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 지를 깨달았으니까요. 살면서 청산해야 할 빚이자,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아시아 네팔 히말라야에서.



남미 볼리비아 소금사막


여행이 끝났습니다. 아닙니다.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세계일주보다 훨씬 길고 긴 인생 여정이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인생 여정에서 느낄 고단함은 지난 1년 동안 길 위에서 감내해야 했던 그것보다 훨씬 클지 모릅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세계일주를 끝낸 지금 그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좋은 기억만 가득합니다. 힘들었던 순간조차 술자리 안줏거리로 거듭납니다. 인생여정도 다르지 않겠지요.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후에 웃으며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겠죠. 어느 시인의 말처럼 소풍 끝내고 돌아가는 날 아름다웠더라고 말할 날이 올 테죠.


여행이 끝났습니다. 감사한 분들이 많습니다. 장도에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독자여러분의 응원과 질책이 힘이 됐습니다. 부족한 글임에도 기꺼이 지면을 허락한 <경남도민일보> 덕에 여행을 좀 더 풍성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길 위에서 만나 함께 여행했던 동지들, 한국에서 안위를 걱정해준 친구들, 선·후배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가족들, 그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여행이 끝났습니다. 아닙니다.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세계일주보다 훨씬 길고 긴 인생 여정이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인생 여정에서 느낄 고단함은 지난 1년 동안 길 위에서 감내해야 했던 그것보다 훨씬 클지 모릅니다.  -윤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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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endeva.tistory.com BlogIcon 베쯔니 2009.05.04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3. Favicon of http://lelocle.tistory.com BlogIcon 악랄가츠 2009.05.04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멋집니다!
    정말... 저는 맨날 생각만 해봤지....
    실천을 못하는데!!
    정말 멋지다는 말밖에.....

  4. Favicon of http://nizistyle.tistory.com BlogIcon 한량이 2009.05.04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부럽고.. 멋집니다.^^

    언제나 저렇게 해볼수 있을까요..

  5. Favicon of http://skyelove.tistory.com/ BlogIcon 수우 2009.05.04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럽고... 즐겁고.. 멋지다는 생각만 드네요
    잘 돌아오셨어요 ^^ ~

  6. Favicon of http://oravy.tistory.com/ BlogIcon 하수 2009.05.04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십니다. 30개국이라니...^^

  7. Favicon of http://blog.daum.net/wl0242 BlogIcon 트레이너강 2009.05.04 1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지세요!! 저도 꼭 한번 해보고싶습니다.!! 남은 인생여행도 꼭 성공하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8. 오호라 2009.05.04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무지하게 부러운 1년이네요... 저는 우리나라 전국 방방 곡곡 찾아보는 게 꿈인데... 지금 주말 산행하며 근처 다니기 시작한지 한 3년... 우리나라의 숨은 매력에 늘 행복한데 세계의 매력은 더 행복감을 줄까나요? 세계에 나가서도 당당하도록 우리나라 매력을 더 찾아봐야겠습니다. 정말 갈 곳 많은 나라니까요.. 늘 배워가는 인생여정 되시길 기원합니다.

    • 탄타로스 2009.05.07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리나라에도 외국 못지 않게 좋은 곳이 많은 것 같아요. 이제 국내여행에 힘쓰려고요...감사합니다^^

  9. 이봉섭 2009.05.04 1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 실례가 안된다면 질문하나해도될까요??^^;;
    여행에관심이많고 슴살학생인데요
    1년동안 세계일주(?) 를 하셨는데 비용은 얼마나드셨는지...
    답변드리기 곤란하신가요^^;;;ㅋ

  10. 희소니 2009.05.04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1.5년씩 두차례 여행을 마치고 몇달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어딜어딜 갔다왔다는 느낌보다 여행지 곳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이
    더욱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군요. 지금은 여행다니면서 빠졌던 체중도 다시 늘고
    생활에 적응하며 일을 하지만 지금도 여행 이야기만 들면 흥분되고 좀이 쑤십니다.
    모쪼록 현실생활에 잘 적응하시고 건투를 빕니다~

  11. 2009.05.07 14: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12. 태남이 2009.05.07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푸하하하하.
    오불들어갔다가 깜짝놀랐어요 오빠.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블로그인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기 나미비아 사막에서 뛰는 사진 초큼 웃기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3. 맨큐 2009.05.08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30분 짬을 내어 이 블로그에 들릅니다.

    탄타로스님의 사진과 수기가 마음에 들어서요..

    정말,,글은 읽을수록 곱씹어지게 됩니다. 여러가지를요..

    감사합니다.

    참, 이런 멋진 경험을 책으로 출판하실 계획은 없으신지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갈텐데요..^^''

  14. Favicon of http://blog.daum.net/eunbeekc BlogIcon 은비 2009.05.09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사진도 좋지만 글은 더더욱 좋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한국생활 적응도 문제없죠?
    긴 여정의 인생길이 밝음과 신나는 일로 가득차기를...

  15. Favicon of http://bacon.tistory.com BlogIcon Bacon 2009.07.08 09: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주행 중입니다. 지금 비가 많이 내려서 저녁 먹으러 나가는 거 거르기로 했는데.. 글이 88개니..
    왠지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ㅎㅎ
    여행 정보들도 공유하시는 것은 어떤가요? 전 한국부들이 미국 여행 너무 재미없게 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 여행 다닌 곳들을 좀 정리해서 올리고 있는데.. @_@

  16. Favicon of http://blog.naver.com/ympro79 BlogIcon 맑은바람 2009.07.16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감동입니다.

    님의 글을 읽고, 떠나려고 망설이던 마음이 점점 확고해짐을 느낍니다.
    하나 하나 새겨 읽겠습니다.
    그 1년, 그 어떤 시간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행복하셨겠죠?
    전 단 한달로 몇 년간을, 단 2주로 1년을 버틸 수 있었는데,
    1년이면 30년은 거뜬히 그 추억으로 그 거름으로 버틸 수 있겠네요
    정말 멋지십니다!!

  17. 2009.07.20 0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igubon.idomin.com BlogIcon 탄타로스 2009.07.22 00: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세계여행이란게 워낙 방대해서리, 구체적으로 궁금한 점 말씀해 주시면 그때 그때 답변드릴게요.

  18.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19.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fitch-sal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uk 2011.11.11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20. Favicon of http://www.burberrysalesbags.com BlogIcon burberry outlet 2011.11.11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 만들었네 블로그 ^ ^ ; 링크할겡

  21.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sale 2011.11.1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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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용의주도하다. 수풀에 바짝 엎드린 채 꼼짝하지 않는다. 바람결에 사람의 체취가 묻어나는지 어쩌다 코를 킁킁거릴 뿐이다.

우리 역시 신중하긴 마찬가지. 녀석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차량 옆 창문에 붙은 마흔 네 개의 눈동자는 깜박거림조차 잊은 채 한 곳을 향해 있다. 숨소리마저 죄악이다. 지독하게 고요하다.

30분째다. 아이 키 만 한 갈대숲을 사이에 두고 '금수의 왕' 사자와 '영장류의 최상층부' 사람 간의 기 싸움이 팽팽하다. 전선은 2m 안팎의 가까운 거리에 형성돼 있다. 지구력이 관건이다. 녀석은 우리가 떠나길, 우리는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느 한 쪽은 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남부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동물서식지인 나미비아 에토샤 국립공원에 온 지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동물을 봤다. 영화 <마라톤>의 주인공 초원이가 그토록 닮고자 했던 얼룩말을 비롯해 기린, 톰슨가젤, 임팔라, 스프링복, 타조, 자칼, 오릭스, 야생멧돼지, 독수리, 하이에나 등이 에토샤를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얼룩말 부부의 사랑.


그네들은 우리를 열광시켰다. 끝 간 데 없이 너른 초원을 달리다 물웅덩이에서 자맥질을 하는 야생동물을 발견할 때마다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동물을 소재로 한 영상물이야 인간의 입맛대로 가공되기 일쑤지만 이곳엔 꾸밈이 없다. 동물원 철장 속 금수에게 채워진 속박의 굴레도 없다. 모든 게 진짜다. 어떤 종류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이유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에토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모두의 마음이 뒤숭숭하다.

뒷간에서 일 처리를 확실히 못한 것처럼 뒤가 개운치 않다. 아직 사자를 못 본 탓이다.

사파리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맹금류를 호령하는 사자를 마주하는 일일게다. 주로 밤에 사냥하는 사자는 웬만해선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경계심 많은 녀석이 사파리가 이뤄지는 새벽이나 낮 시간대에 수풀이나 나무 둥치에 몸을 숨기기 때문.

남부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에토샤 국립공원은 수많은 동물들의 터전이다.

탐사 팀은 에토샤를 떠나기 직전 행한 마지막 사파리에 기대를 걸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사자가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끝나는 시간이 다가올 즈음 팀장 가이드 타바니가 입을 뗐다. 목소리에 힘이 없다.

"이번 탐사에선 사자를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저희에게 운이 따르지 않는 모양…."

"사자다!"

그가 말을 끝내기 전에 누군가 소리쳤다. 이목이 집중됐다. 먼발치 수풀 사이로 샛노란 갈기가 흩날린다. 수사자다. 캠핑차 안이 술렁였다. 타바니가 모두에게 주의를 준다. 극도로 민감한 사자를 자극하지 말란다. 이내 차 안에 정적이 감돈다. 우리를 태운 마릴린은 조용히 사자에게 다가갔다. 첫 대면이다. 하지만 녀석은 쉽사리 그 자태를 내보이지 않았다. 수풀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도무지 승패가 나지 않을 것 같던 기 싸움에 변화가 일었다. 사자 쪽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뒤척이던 녀석이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우리 쪽을 바라보더니 우렁차게 포효한다.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차량 안이 다시 떠들썩하다. 스무여 대의 카메라가 사자를 정조준한다.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오래도록 수풀에 숨어있던 수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라이온킹'의 심바처럼 위엄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린 녀석에게 이름을 붙여줬다. 영화 <라이온킹>의 주인공 심바를 닮았기에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녀석은 바위산 꼭대기에 올라 동물들을 굽어보던 영화 속 심바의 위엄을 지녔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심바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고리모양의 눈과 얼굴을 뒤덮은 갈기가 강한 인상을 풍겼다. 마릴린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녀석은 풀숲을 따라 어디론가 향했다. 주위에 있던 초식동물들이 놀라 사방팔방으로 뛴다.

모두들 역동적인 사냥 장면을 기대하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심바는 달아나는 임팔라 무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심바는 지금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젯밤 사냥에서 고기를 섭취한 모양이지요. 이곳 야생에선 결코 쓸데없이 사냥하는 일이 없습니다. 딱 필요한 만큼만 얻고 더 이상은 욕심내지 않지요."

가이드의 말이다.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들른 힘바부족의 사람들.

우리는 숲 속 저편으로 사라질 때까지 심바의 흔적을 좇았다. 그리고는 미련 없이 에토샤를 떠날 수 있었다. 심바를 마주한 까닭에 예정보다 늦게 국립공원을 빠져나왔다. 지평선 너머 지는 해가 주위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초원은 검은 융단을 덮어 놓은 것처럼 어두웠다. 상념에 잠기기에 분위기가 그만이다.

나는 심바를 떠올렸다. 딱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한다는, 그 이상은 욕심 부리지 않는다는 녀석을 말이다. 어쩐지 그의 포효가 호통처럼 느껴졌다. 덕지덕지 욕심이 들어찬 내 마음을 녀석은 알고 있던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아프리카 초원 위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은 부끄러워 빨개진 낯빛을 가려줄 만큼 충분히 어두웠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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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eunbeekc BlogIcon 은비 2009.04.29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것들을 멋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해 주시니
    늘 고맙습니다. 자주 다녀갑니다.

    • 탄타로스 2009.04.30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런 소통이 있어서 저는 블로그가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2. Favicon of http://rubygarden.tistory.com BlogIcon 루비 2009.04.29 15: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어케 이런 사진을 다 찍을 수 있는겁니까...
    특히 아래 힘바 부족 아가씨...
    저도 한번 사진으로 담아보고 싶군요.

    • 탄타로스 2009.04.30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풍경이 좋아 셔터 누르면 그냥 예술입니다.^^제가 사진에 도통 어두운데다가 똑딱이였던 탓에 본래 모습을 많이 살리지 못했어요. 사진에 조외 깊은 분이라면 진짜 예술사진 나왔을텐데...감사합니다^^

  3. 낙무아이 2009.04.29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오타가 있어서...

    맹금류X, 맹수류O...
    '금'은 날짐승을, '수'는 길짐승을 말합니다...
    해서, 독수리나 매를 맹금류라고 하고, 호랑이나 사자는 맹수...

  4. 모나리자 2009.04.29 15: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5. 김준호 2009.04.29 15: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참 다들 맛나게 생겼네 ㅋㅋ

  6. 저도, 2009.04.29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프리카는 정말 가보고 싶어요 ㅎ
    너무 멋져요 부럽네요 ㅠㅋ

  7. rod777 2009.04.29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저도요... 점심으로 밥한공기 먹고나면 불필요하게 한공기 더 먹지 않습니다.
    저한테도 배우세요. 농담입니다.

    • 탄타로스 2009.04.30 0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배워야겠네요. 1년 동안 한식에 굶주려 있다보니 요새 식탐이ㅋ

  8. 내고향논실 2009.04.29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바부족의 사람들 순박하게 생겼네요 한번 가보고 싶은데 우리마을에서 바로 가는 버스도 없고 멀미가 심해서..

  9. eee 2009.04.29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자가 호통친다고 얼굴까지 빨개질건 또 뭐임..

  10. Mr.Children 2009.04.30 0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야말로 가공되지 않은 태고적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신 이미지와 무게감 있는 내용의 글귀가 제 눈과 마음을 매료시킵니다~~~ 잘 보고 갑니다^^

  11. 저기여 2009.07.15 1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타바니..
    제가 케이프타운부터 빅폴까지 트럭킹 할 때 두두와 로이드가 스탶이었고
    나중에 탄자니아에서 만난 노매드 팀의 스탶이 나타샤와 타바니였어요.
    신기한 인연이라 글 남기고 갑니다~

  12.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13.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fitch-sal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uk 2011.11.11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을 왜 저는 케이온이라고 읽을까요..?

  14. Favicon of http://www.burberrysalesbags.com BlogIcon burberry outlet 2011.11.11 15: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15. Favicon of http://www.abercrombie-uk.org.uk BlogIcon abercrombie and fitch sale 2011.11.11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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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릴린 먼로', 멀리서 그녀가 다가온다. 이름에서 풍기는 요염한 이미지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육중한 몸이 꽤 듬직하다는 인상을 준다. 한 차례 굉음과 함께 그녀가 멈춰 섰다. 마릴린은 우리를 오지로 이끌 캠핑차다.

안전과 직결된 주요 임무를 띤 만큼 구성원 모두 그녀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우리가 이름을 지어준 이유다.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스왑콥문트. 산악 오토바이로 사막을 횡단하자, 저 멀리 바다가 보인다.


'트럭킹'을 통해 본격적으로 남부아프리카 나미비아 여행에 나섰다. 트럭킹(Trucking)이란, 트럭을 개조해 만든 캠핑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종·횡단하는 것을 뜻한다. 텐트 한 동에 의지해 잠을 자고, 직접 끼니를 지어먹는 야영생활이 어떨지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수천 종의 동식물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보고, 문명을 등진 채 살아가는 원주민,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사막과 초원 등 가공되지 않은 자연 속에 몸을 내맡기는 일은 분명 짜릿한 경험이다. 이런 까닭에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아프리카로 몰려들고 있다.

8개국 여행자 22명 일주일간 나미비아 '트럭킹'

우리 팀은 짐바브웨 출신 가이드 타바니를 중심으로 한국, 독일, 네덜란드, 스위스, 대만, 영국, 미국 등 8개국 22명으로 꾸려졌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끝내고 마릴린에 올랐다. 모두 말이 없다. 문화와 언어의 높다란 벽은 첫 만남의 어색함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나미비아로 넘어가는 길목인 서더버그(Cederberg)에서 첫 야영을 시작했다. 텐트를 치는 일부터 밥 짓고 배식하는 일까지 낯설지 않은 게 없다. 그나마 군 생활을 마친 한국 젊은이 3인방의 손놀림이 가장 빠르다. 우리는 서둘러 텐트를 치고 외국 친구들을 도왔다.

8개국 22명의 젊은이로 구성된 오지 탐험 팀.


네덜란드에서 온 로즈가 물었다.

"너희는 야영생활을 많이 해봤나봐. 굉장히 익숙해 보이네."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서 지겹도록 텐트치고, 밥도 지어먹고 그래."

"군대? 다들 직업이 군인이야?"

"그런 게 아니고…"

로즈에게 한국의 특수한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외국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한국에 대해 잘 아는 대만인 인디가 중간 중간 부연 설명을 도왔다. 다들 고개를 주억거린다.

한번 풀어 헤쳐진 '이야기 보따리'는 닫힐 줄 몰랐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며 웃음꽃이 핀다. 어느새 악수를 청하고 어깨동무 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우리 앞의 벽은 그렇게 하나 둘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쏟아지는 별 빛 아래서.

"내일은 새벽 일찌감치 출발해야 합니다. 늦어도 5시 30분까지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릴린에 탑승해야 해요."

"어휴~"

팀장 가이드 타바니의 말에 여기저기서 한 숨이 새어 나왔다. 출발시간에 맞추려면 적어도 새벽 4시 30분엔 일어나야했기 때문.

'듄45' 해돋이 장관·스왑콥문트 풍경에 넋 잃어

여정 닷새 째, 이번 트럭킹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인 '듄(Dune)45'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모두들 내일 펼쳐질 장관의 가치를 알기에 토를 달지 않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사막 모래언덕인 듄45.


듄45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막 모래언덕이다. 벌건 해를 머금은 사구 앞에 서면, 경험 많은 사진작가들조차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그 모습이 경이롭단다.

"어이! 다들 일어나라고."

이른 새벽녘, 먼저 일어난 친구들이 텐트 사이를 오가며 잠에 취한 이들을 깨웠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둡다. 여기저기서 손전등 빛이 어지러이 춤춘다. 마른 숨을 헐떡이던 마릴린이 힘겹게 엔진을 가동했다. 그녀 역시 장도에 지친 모양이다. 일제히 차에 올랐다. 피곤할 법도 한데, 다들 눈이 반짝인다. 마음들은 벌써 듄45를 오르고 있는 듯했다.

황량한 사막을 40분 남짓 달리자, 눈앞에 거대한 사구의 형체가 느껴졌다. 듄45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도도한 녀석이다.

애타는 마음으로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먼발치서 동이 터 올랐다. 벌건 빛이 모래언덕 한 쪽 면을 붉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반대편 경사면엔 검게 그림자가 졌다. 한 쪽은 빛을 받아 눈이 부실정도로 반짝이고, 다른 쪽은 칠흑처럼 어둡다. 선명한 색의 대비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듄45가 자리한 소쑤스플라이. 현지 가이드가 사막에서 생존하기 위한 법을 설명하던 중 도마뱀을 잡아먹는 시늉을 하고 있다.

듄45의 감동을 뒤로한 채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스왑콥문트(Swakopmund), 나미비아 휴양도시로 유명한 이곳은 사막과 바다가 공존하는 도시다. 메마른 사막 너머 일렁이는 바다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사막 옆에 바다라니!

그 생경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사막을 횡단, 해안까지 가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쿼드바이크(Quad Bike)라 불리는 네 발 달린 산악용 오토바이를 빌렸다. 구불구불한 모래언덕을 넘어 사막 한 가운데를 달리자니, 그 옛날의 카라반이라도 된 기분이다. 낙타대신 성능 좋은 오토바이가 있고, 교역품을 싣는 대신 한 가득 모험심을 실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뜨거운 모래 바람에 숨이 막힐 즈음, 어디선가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풍겨왔다. 바다다. 진짜 사막 코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다. 금방이라도 마른 땅을 적실 기세로 파도가 밀려든다. 그 광경에 넋을 잃었다. 그 사이 여정 일주일이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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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nizistyle.tistory.com BlogIcon 한량이 2009.04.28 16: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프리카 여행.. 꼭 해보고 싶네요.

  2. 2009.06.25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 신문 여행기사나 잡지의 칼럼같아요~

"믹스! 너 공사장에서 백인 본 적 있냐?"

"아니"

"그럼 주차요원 중에는? 아님 청소부, 경비원, 구걸하는 사람…, 아무튼 3D 업종 중에서."

"3D가 뭔데?"

"Dirty, Difficult, Dangerous에 해당하는 험한 일을 뜻하잖아."

"못 본 거 같은데."

"그렇지? 죄다 흑인이지. 왜 그럴까?"

"그야 흑인이 많으니까 그렇지. 남아공 인구의 80% 이상이 흑인이잖아. 신문사에서 일한 놈이 그것도 몰라?"

"근데 왜 호텔이나 레스토랑 사장, 좋은 차 주인은 몽땅 백인이지? 네 말대로 흑인이 다수면 그 중에 잘사는 사람도 많아야 하잖아?"

"유빈! 그게 뭐가 대수라고 발끈 하냐? 라디오 볼륨이나 높여봐. Bloody hell, bloody hell, blah blah…."

희망봉이 있는 케이프반도 끝자락. 이곳에서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난다.

애초 기대하지 않았지만, 녀석의 성의 없는 대답에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케이프타운 숙소에서 만난 호주 청년 믹스. 동갑내기 그 역시 '나 홀로 여행자'다. 죽이 잘 맞았던지라 우리는 곧잘 함께 여행하곤 했다.

그 날은 차를 빌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케이프타운에서 느낀 바, 구체적으로 '흑인과 백인의 관계'에 대해 백인인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영어 사전을 뒤적이며 준비했건만, 그와의 토론은 이렇듯 허무하게 끝을 맺었다. 심통이 나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휙휙 지나가는 풍경을 보고 있자니, 케이프타운에서 보냈던 지난날이 머리를 스쳤다.

일주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아래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도착했다. 그 즈음 내 심신 상태는 만신창이였다. 여행 끝자락의 얼마 남지 않은 기력을 중동과 이집트 여행에 쏟은 탓이다. 하필 마지막 여정지가 오지 중에 오지로 꼽히는 남부 아프리카라니. 무뎌진 여행자의 촉수는 벼린들 벼려질까나.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다. 근심과 걱정, 무기력 사이로 언뜻언뜻 다른 성격의 감정이 비친다. 딱 꼬집어 설명하긴 힘들지만, 일종의 설렘 같은 거다. 두근거리고 흥분되는 그런 감정 말이다. 이 복잡함의 실체는 뭔가.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아프리카'였다.

'아, 프, 리, 카', 이 넉자를 되뇔 때면 내 안에 서로 다른 감정이 충돌한다. 오랜 식민통치로 말미암아 '홀로서기'가 서툰 검은 대륙은 기아와 질병, 내전까지 더해져 지구촌에서 발전 속도가 가장 더디다. 문명과 거리를 둔 만큼 소심한 여행자에게 이곳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고운 모래로 유명한 캠스베이.

반면 수천 종의 동식물이 천연 그대로 보존된 생태계, 디지털 세상 속 아날로그 삶을 사는 아프리카 원주민 등 오직 아프리카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인류·생태학의 가치를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듯 벅차오른다.

양면의 감정을 끌어안은 채 발을 디딘 케이프타운은 남부 아프리카의 관문이다. 백인의 오랜 지배를 말해주듯 도처에 유럽 색채가 짙다. 이곳을 베이스캠프 삼아 본격적으로 남부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할 계획이다. 각국 비자부터 교통편 마련까지 생각보다 준비할 사항이 많다. 뜻하지 않게 체류일이 길어진 김에, 나는 케이프타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년에 월드컵을 개최하는 남아공은 지금 축구 열기로 뜨겁다. 전역에서 경기장, 숙소 등 인프라를 다지는 일이 한창이다. 케이프타운 국제공항 청사에선 월드컵 성공개최를 염원하는 입간판이 제일 먼저 관광객을 맞는다. 도심 곳곳에서도 이런저런 월드컵 관련 공사가 분주하게 진행 중이다.

내가 눈여겨 본 것은 공사현장의 인부다. 뙤약볕 아래 마른땀을 흘리는 이들 중 백인은 없다. 하나같이 흑인이다. 물론 전체인구의 84%가 흑인인 까닭에, 그만큼 흑인노동자가 많을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성립하려면, 화이트칼라 집단에도 흑인이 많아야 하는데 이건 또 그렇지 않다. 마치 흑인과 백인 사이에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사현장의 인부나 주차요원, 식당종업원, 환경미화원, 사설경비원 등 이른바 3D업종 종사자는 어김없이 흑인인 반면 이들을 부리는 윗선은 죄다 백인이란 얘기다. 적어도 내가 본 현실은 한 번도 이 공식을 벗어난 적이 없다.

케이프 반도의 펭귄섬.


역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떠올릴 수밖에. 남아공의 극단적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1948~1994년 사이 유색인종을 합법적으로 옥죄기 위해 시행된 악법이다.

1652년 네덜란드계 동인도회사를 시작으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패권주의 야욕에 사로잡힌 서구인이 앞 다퉈 남아공으로 밀려들었다. 그들은 백인우월주의를 바탕으로 유색인종을 탄압했다. 그저 피부색이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수 백 년 간 이어져 온 차별은 20세기 들어 아파르트헤이트란 이름으로 제도화됐다. 이 시기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은 '참정권 부정', '이인종간 혼인금지', '거주이전의 제한' 등의 사슬에 묶여야 했다. 노예제도가 성행했던 '고릿적' 얘기가 아니다. 우주선이 은하계를 누비던 최근의 일이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폐기되고 남아공 최초의 흑인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집권한 후 많은 이들이 희망에 들떴다. 그들의 바람처럼 분명 남아공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오후 6시면 집 밖 통행이 금지됐던 흑인들은 이제 밤늦도록 거리를 활보할 수 있다. 극소수지만 백인들의 전유물이던 고급주택에도 흑인 거주자가 들어서고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애석하게도 변화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아직도 남아공에서 흑백의 역할과 지위는 분명한 경계선 하에 놓여있다. 360년 간 사회전반을 장악해온 악습이 15년 만에 근절되기란 힘든 일일 터.

테이블마운틴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의 전경.


문제는 남아공의 변화를 저해하는 게 비단 시간 따위의 물리적 요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된 시기, 백인의 절반가량이 흑인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며 남아공을 떠났다. 현재 거주하는 백인들은 특정 지역을 요새화, 여전히 그들만의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악명 높던 백인 인종차별주의자를 명확하게 단죄하지 못한 것 역시 변화를 방해하는 요소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와 화합을 위한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헤이! 유빈! 무슨 생각을 그리 하는 거야? 이제 다 왔다고."

믹스가 퉁을 놓는 바람에 나는 회상의 장막을 걷어야 했다. 눈앞에 희망봉이 펼쳐져 있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 15세기 포르투갈 항해자가 이곳을 발견하고는 이렇게 이름 붙였단다.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길목인 이곳은 식민지 건설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거점이었다. 그들에겐 '희망'이었을지언정, 아프리카와 아시아 대륙엔 '절망'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희망봉은 대서양과 인도양이 만나는 곳이다. 케이프 포인트에 올라 그들의 조우를 가만히 지켜본다. 두 바다는 소리 없이 몸을 섞는다. 그 모습이 자연스럽다. 물 색깔이나 지류의 배경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나 보다. 피부색으로 인종을 나누고, 국가의 배경을 따져가며 섞이지 못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입맛이 씁쓸하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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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v8o8v.com/06/usr/kkk00/index.html BlogIcon 424 2009.04.21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enguin可愛い

  2. 똘레랑스 2009.04.25 1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기행문이군요....

  3. Favicon of http://333hun.tistory.com BlogIcon 세미예 2009.04.26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생각을 만드는 여행 잘 다녀오셨네요. 잘보고 갑니다.

  4. 사족하나 2009.04.26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아공의 인종차별은 백인과 흑인사이의 그것만은 아닙니다

    백인을 제외한 모든 유색인을 차별하죠

    특히나 인종차별에 익숙지 않은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5. 글쎄요... 2009.04.26 15: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어이없는 글인데요... ㅡㅡ;;; 저도 조벅에서 1년 살았는데... 여행자가 겉만 보고 기행문쓰면 이런식의 글이 나올것 같습니다.

    물론 백인들 잘 살아요. 각종 가게(SHOP)오너, 중간관리자는 백인 많은데 회사,광산등 부자들이 누군지 한번 찾아보면 이야기 다를거에요.. 그리고 요즘은 흑인이 차별받는게 아니라 백인이 차별을 받아요... 최소한 BEE에 대해 적으면 이런식의 이분법적인 글은 나오지 않는데...

    그리고 조벅도 아니고 케이프타운데서 찾으면 더더욱 없지요... 제주도에서 한국을 이야기하는것과 비슷한 논리..

    • 탄타로스 2009.04.26 2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백인에 대한 역차별 얘기는 심심찮게 들었으나, 제가 여행하며 목격한 바는 위와 같습니다. 말씀대로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이다보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나봅니다. 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이니 이해해 주시길^^. 이분법적 사고로 오해받을 소지가 분명 있습니다. 고견 감사합니다.

  6. so 2009.04.26 16: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남아공에 살지는 않지만 아프리카 생활 5년 반이군요.
    남아공에 대해서도 알고요..

    요즘의 남아공은 흑인이 차별받는것이 아니라. 백인이 차별을 받습니다.

    요세화 된 백인 밀집 지역은 차별받는 백인들을 방어하기 위한 지역이고요..
    제가 살고 있는 곳도 마찬가지 입니다.

    돈있는 백인들은 개인주택의 경우에는 몇명의 가드를 두고 살고, 돈이 없으면 아파트나 공동 마을을 통해서 공동의 부담하에 자신의 주거를 지키죠..

    백인들이 잘사는 이유는 한국과 같습니다.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에 잘사는 것입니다.

    돈이 돈을 번다는 말이 있던가요?
    식민지때부터 시작된 돈과 정보망으로 지금까지 돈을 벌고 있는 셈이죠.
    제가 살고 있는 곳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재벌은 망해도 삼년은 간다.
    조선일보 사장일가는 대대손손 권력을 이룬다.
    등등..

    그리고..
    백인거지들에 대해선..
    모르겠네요. 케이프타운엔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조하네스버그(중간기착지기 때문에 자주가는 곳입니다)에는 종종 찾아볼수 있고.
    또 부유하지 못한 백인들도 볼수 있습니다.

    오히려 백인들의 차별은 밤에 더욱더 심화 됩니다.
    시내 중심가 같은 경우에느 오후 6시 이후에는 백인들을 볼 수가 없습니다.

    백인들이 사고가 나서 경찰에게 신고를 해도 경찰들은 신고한 백인을 어떻게 하면 더 울궈먹을수 있는지 고민을 하죠.(제가 사는 곳에서는 차라리 서면적인 신고만 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진 않습니다.)

    아프리카지역의 낙오나 후진성은 백인들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때문이 아니라.
    자주적인 독립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에 의해서 갑자기 얻은 자유를 어떻게 하지 못하는 흑인들의 근시안적인 행동과 그런 근시안적인 행동으로인한 흑인들의 역차별에 의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그런 근 시안적인 생각은 식민지 시절부터 재대로 교육하지 않고 그저 착취할려고만 하는 백인들의 정책에 기인한게 아닌가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똑똑한 흑인들도 많고요..
    그러한 똑똑한 흑인들이 자신의 민족을 발전시킬려고 하지 않고 정권만 잡으면 장기 집권할려고만 생각한다는게 문제 입니다.


    개인적으로 만델라를 평가하자면..
    흑인들의 인권운동을 했다는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남아공문제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는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정리하면
    잘한점 : 흑인들의 인권향상
    못한점 : 대안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자유를 부여해 역차별과 무질서한 사회를 만든 장본인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짧은 생각이었습니다.

    여기 살면서 한국인 배낭여행객들을 종종 보곤 합니다.
    연이 되면 뵐수도 아니면 뵈지 못할수도 있겠지요.

    즐겁고 건강한 여행을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7. ^* 2009.04.26 1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아공.....................
    몇년 살아봐서 알지만.........
    인종차별 심각하죠~ 백인흑인을 떠나서 동양인 인도인..... 다 차별하고....
    그래도
    나라는 참 좋은 곳이였다^ 공기도 좋고~
    나중엔 제대로 놀러가야지~

  8. .... 2009.04.26 17: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지금 케이프타운에 이민온지 5년째되는 학생인데요.....
    확실이 노동쪽일은 흑인이 많이 한다고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그런쪽 일하는 상당수의 흑인들이 다른나라에서온 흑인들로
    알고있어요.....
    그리고 요즘은 반대로 인종차별을 해서
    오히려 백인들이 더 취직하기가 어렵고
    대학교 들어가기도 어렵운걸요..
    흑인정부로 바뀌면서 법을 흑인이 우선순위에 들도록 바꿔버렸다는.....
    예로들자면 의대에 들어가고싶을때 흑인은 성적이 평균 60~70만 되도 합격이 되지만
    백인은 평균 90을 넘어도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9. 후후후 2009.04.26 1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굴이 더 유익하군요. 숲과 나무는 같이 봐야죠.한 가지만 보면 안되는 거군요.

  10. 참나.. 2009.04.26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슨 인간도 좀 웃기는군....흑인들 정권 잡게 해주었더니..어떻게 하는지 한번 살펴봐봐..그리고 자기들 일 자리 줄어든다고 다른 주변국에서 온 흑인들 불태워 죽이고 테러한게 남아공 흑인들이야...그저 며칠 여행한거 가지고 잘난척 이런글 쓴 당신보면 웃음만 나온다,,시간나면 좀 더 인터넷 검새이라 더해보던가?? 참 이런글 볼때마다 슬퍼진다...기것 해외여행가는 애들 그나라에 대한 주변지식은 전무하니..인도는 환상 ..?? 이런글이나 주구장창 블로그에 올리지;;;

    • 탄타로스 2009.04.26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윗분들처럼 좀 논리적으로 충고했음 좋았을텐데, ㅋㅋ 이 글은 뭥미...

  11. ** 2009.04.26 2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조벅에 잠깐 살았었는데요...
    흑인들 때문에 백인들이 두려워 하며 살고 있는 건 맞지만...
    흑인들 삶을 보면.. (그들의 현재의 강도짓과 도둑질은 정말 옳지 않지만...)
    흑인들 다니는 학교는 아주 저렴한 곳 같은 경우에는 일년에 200란드만 내면 되는데..
    백인들이 다니는 학교는 한분기에 4000천 란드 하는 곳도 많아요...4000천 란드가 심하게 비싼 곳은 아니구요...
    교육 자체가 많이 다르고... 중고등학생들... 그닥 공부 안해요... 백인들은 할 필요가 없어서...
    흑인들은 해도 달라질 게 없어서...
    흑인들의 경우 남아공에 한 분기에 4000천 란드 하는 학교가 있는 줄도 모르더라구요...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서로를 너무 모르며 살아가는 곳이 바로 남아공이라 느꼈어요...
    제가 살던 집의 백인은 개인적으로 참 좋은 사람이었지만...
    이 사람과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얘기 했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 조차도 흑인들에겐 에외라고 말하더군요... 아무리 설명해도 흑인들에겐 종교조차도 예외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더라구요...
    지금도 남아공을 생각하면 뭔가 가슴 한 켠이 찌르르 해요..

    • 탄타로스 2009.04.26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 역시 아파르트헤이트 폐지는 아직 외형에 많이 치우쳐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한 뿌리 깊은 차별은 언제쯤 사라질런지...의견 감사해요^^

  12. coco 2009.04.26 21: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깊이가 없는 삼류글인 듯..
    입은 꽤 잘 놀리지만 수백년간 내려온 네덜란드계 보어 백인들의 아파르트헤이트 (네덜란드어로 인종 차별정책)에 대한 역사학적인 고민과 깊이는 박약한 글이랄까... 원래 빈수레가 요란하게 설친다고^^
    이사람 글을 보면 사회우월론이니 코드 기어스에서 식민시대때 유페미아처럼 일본과 한국이 한마음으로 화합해야 한다느니 하는 (왜정 총독부나 김활란, 이광수 등이 선전하던 일종의 내선일체론) 애니동의 윤영준 글을 보는것 같다는..

    • 탄타로스 2009.04.26 21: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께서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학적~~블라블라"에 대해서 좀 깊이있는 댓글 좀 달던가.^^

  13. alycia 2009.04.26 2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남아공가셨네요.. 다른 글들을 보니.. 가슴두근거리는곳도 많이 가셨구요..
    많이 부럽습니다.. 저도 시댁이 남아공이라 첫번갔을때.. 느꼈던것과 같아.. 글을 남김니다..
    아래 많은분(??)들이 말씀하셨듯.. 지금 3%밖에 안된다고 그런답니다..
    이유는 백인에대한 세금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
    와.. 공무원이라는직업이 백인에게는 허용이 안된다는군요(아주 소수봤습니다)
    물론 흑인정권이 인정이 안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떠난경우도 있지만.. 저의 신랑처럼 대학과 석사를 거쳐도 직업다운 직업을 가질수없어서.. 보통 부모님이 온 유럽으로 다시 직업을 찾아 가는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떤분들이 말씁하셨는데.. 안전문제.. 밤6시가 아니라.. 백인들이 길을걸어다니는경우가 드물죠..
    잘사는 백인구역이 아니고야.. 저의 시댁도 담이 상당히 높습니다.. 경비시설도 돈이 많이 들구요..
    넬슨만델라 그어른(??)이 좋은일을하셨는데.. 결과는 좋지않죠.. 언젠가는 다 같이 잘사는 때가 있을듯.
    그래도 20대 초반은 피부색에 상관없이 칭구 또는 연인하는경우를 종종봅니다..
    3D업종은 다른나라에서 온분이 하는경우가 많구요..
    이나라분들도 있지만.. 흑인이 아니라.. colored라고불리우는 혼혈인입니다..
    신랑한테 물어봤습니다.. 이런안전문제는 그럼 백인들만 당하냐??
    답은 그것도 아니랍니다.. 잘사는 흑인이 있다면 백인이 아니더라도 도둑질 당한다네요.
    그래도 남아공 떠나산지15년이나 흐른 세월 (저의 신랑)동안 많은것들이 변했다고 하네요..
    물론 해안가를 따라있는 도시나 관광지에 한해서이지만.. 백인들과 흑인들이 대화도 하고 무시하는 태도나
    악감정을 보이는경우는 없습니다.. (속은달라도 ... )
    상당히 다정하고 친절하죠... 저는 이부분에 반했습니다. (그런다음에 나 거진데 너 많아보이니까.. 나 돈줘 뭐.. 이렇게 합니다.. 구걸도 참.. 귀엽게.. )
    두서없이 글썼네요 아무튼 요는 백인살기 정말 어려운곳이 남아공입니다
    아 그리고 coco님 말을 왜 그렇게 차갑고 정떨어지게 하세요??
    그렇게 잘아시면 교양있게 정보올려줘봐요 그럼.. 당신이 삼류같아.. 말좀 이쁘게 하고 살아요
    똑똑하면 뭐하나.. 정떨어지네 증말..

    • 탄타로스 2009.04.29 0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든 백인에 대한 역차별이든 어쨌든 인종차별이 사라지길 바랄뿐이죠.

  14. roy 2009.04.27 06: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더러운 양키 새끼들이 인종차별을 만들었죠.
    세계 어디를 가나 마찮가지인 것 같습니다.

  15. 꿈꾸는식물 2009.04.27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전부터 님 홈피를 알게 되었는데, 올리는 글도 아래 맺히는 댓글도 다 유익해서 좋아요^^
    다 읽어보려면 시간좀 걸리겠어요. 워낙 많이 다니셔서.ㅎㅎ
    부럽기도 하구요.
    전 식견이 없어서 양질의 글 그냥 얻어먹을게요.
    감사합니다.

  16. Favicon of http://kbar.tistory.com BlogIcon 홍련의불꽃 2009.04.27 1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길게 쓰신 분 말씀에 공감합니다.

    요즘 남아공에서는 백인이 역차별 당하고 있죠. 그 동안 남아공에서 흑인이 차별당해 온 것 때문에
    백인, 특히 외국인은 모든 기회에서 우선 순위가 뒤로 밀립니다.

    남아공에서 체류하고 있는 제 친구들도 모두 남아공을 떠나려고 하더군요.
    제이콥 주마도 한 몫하고 있고......

    • 탄타로스 2009.04.29 0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하루빨리 인종차별이 사라지길 고대할 뿐이죠. 의견 감사해요^^

  17. Favicon of http://bacon.tistory.com BlogIcon Bacon 2009.07.08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들을 보니.. 왜 이렇게 박식한 분들이 많은지.. @_@
    반성하고 좀 배워야 할 것 같다는..;;

  18. BlogIcon young teacher 2010.01.22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빅터스라는 영화를 보며 만델라와 남아공에 대해 그리고 한국의 역사, 정치, 경제 등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봤어요. 구글에서 만델라 검색을 하니 이 블로그가 뜨더라구요. 일단 1년동안 세계여행하시는 거 너무 대단해보이고, 멋있고, 부럽네요. 글이 편협하던 아니던 교류하는 댓글과 일일이 답변해주신 또 댓글.. 좋아보였습니다.^^ 인류를 위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나라인 거 같아요 아프리카는.. 저도 꼭 남아공에 가보고 싶습니다. 2013년쯤에 가볼 생각이에요~. 여행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여행기를 쓰다보면 종종 곤란한 경우가 생긴다. 쓸 만한 글감이 없거나, 반대로 거리가 넘쳐날 때 그렇다.

기나긴 여정으로 여행 자체가 일상이 돼버린 상황에서 1년 365일 매일이 특별할 순 없다. 팔자 좋게 빈둥거리거나, 혹은 며칠 씩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처럼 딱히 한 일이 없는 경우 마땅한 글 소재를 찾기 힘들다. 머리를 쥐어 짜 본들 글 한 단락 쓰는데 하 세월이다.

반면, 글감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이 얘길 담자니 저 얘기가 아쉽다. 뭐 하나 버릴 게 없다. 이래저래 닥치는 대로 쓰다보면 배는 어느새 산으로 간다. 글에 두서가 없다. 횡설수설한 글이 되기 십상이다.

이집트는 어떤가? 후자에 속한다. 쓸 내용이 너무 많다. 이집트를 대표하는 '피라미드와 스핑크스'가 수도 카이로 근교의 기자 지구에 있다. 이걸 쓰자니 신전의 백미로 꼽히는 아스완 근교의 '아부심벨'이 걸린다.

파라오의 무덤으로 유명한 룩소르 '왕가의 계곡' 역시 외면하기 힘들다. 망자의 저주로 알려진 '투탕카문의 황금마스크'도 아쉽다. '람세스 2세', '클레오파트라', '오벨리스크'도 있다. 모세가 십계를 받은 시나위 산은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의 성지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나일 강'도 써야겠다. 알렉산더 대왕의 흔적이 숨 쉬는 알렉산드리아가 빠지면 섭섭하다.

난감하다. 도무지 어느 것 하나 솎아낼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글감 모두를 조화롭게 버무릴 깜냥 또한 없다.

이집트 여행이 끝나가는 지금,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지러이 떠오르던 글감은 의외로 손쉽게 정리됐다. 여정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소재 하나가 '딱' 걸려든 것.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선택된 글감은 고대 이집트 문명도, 알렉산더의 대제국도, 모세의 성지도 아닌 이집트인의 '바가지 상술'이다. 좀 뜬금없이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집트의 널뛰는 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집트에서 정가란 존재하지 않는다. 호텔, 음식점, 상점, 기차역, 버스터미널, 여행사 등 어디서 무얼 하건 흥정을 통해 값을 치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집트인은 원래 가치보다 수십 배나 비싼 가격을 부르곤 한다. 어수룩하게 행동하다간 순식간에 여행경비가 바닥날 지경에 이른다.

람세스2세의 치적을 기린 아부심벨 신전


사실 바가지 상술은 이집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도나 네팔,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 개발도상국에서 흔하게 겪는 일이다. 하지만 앞서 여행한 나라에서 기껏해야 정가보다 2~3배 정도 높은 가격을 부르는 것과 달리 이집트에선 보통이 20배요, 많게는 80배에 달하는 바가지를 경험하곤 한다.

룩소르에서 유적지를 여행할 때 일이다. 한 손에 기념품을 든 장사치가 뒤따라오더니 물품을 건넨다. 돌로 만든 조각인데 괜찮아 보인다. 가격을 물어보니 400EP(EP는 이집트 화폐단위로 1EP가 우리 돈 300원에 해당)를 달란다. 손가락 크기만 한 돌조각이 우리 돈 12만 원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가 보여준 기념품의 적정 가격은 단돈 5EP였다. 무려 80배의 가격 상승이다.

기념품이야 안사면 그만이라지만 생필품의 경우엔 골치가 아프다. 한날 치약을 사러갔더니, 20EP를 부른다. 한 뼘 크기의 조그만 치약이었다. 이집트 물가를 감안할 때 말도 안 되는 가격이다. 치약의 원래 가격은 2EP에도 못 미쳤지만, 주인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값을 속인다. 식당에서 밥을 먹거나 택시를 탈 때도 어김없이 가격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일강을 누비는 무동력 돛단배 펠루카


이집트를 여행하기 전까지 흥정에도 나름의 묘미가 있다고 생각했더랬다. 한 푼이라도 더 받으려는 현지인과 지갑사정을 고려해야 하는 가난한 여행자, 둘 사이엔 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실랑이 끝에 적정선의 타협이 이뤄지면 어김없이 악수와 포옹이 오간다. '어쨌든' 정가보다 더 받고 판 쪽이나, '그나마' 정가에 가까운 가격에 산 쪽이나 흡족해 하긴 마찬가지다.

여행자는 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무얼 하든 현지인보단 비싼 값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상 저들이 외국인을 상대로 많은 이문을 남기려 한다는 것을.

다행히 현지 물가가 저렴한 까닭에 어느 정도의 바가지 상술은 여행자에게 크게 부담되지 않는다. 이집트의 경우는 다르다. 정가와 판매가의 골이 천 길 낭떠러지만큼 깊다. 그 간극을 생각하면 흥정은 더 이상 '사람내음 풍기는 경제활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쟁'이 된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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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pjini.tistory.com BlogIcon 고냉 2009.04.23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너무 잘쓰셔서 부럽습니다.
    전 여행갔다온 후에 여행기를 마쳐본 기억이 없어요.
    글을 쓰다보면 글들이 산으로 가는 사태가 종종 발생해서...;;
    6대륙 여행...무사히 잘 마치시길 바래요^^

    • 탄타로스 2009.04.24 1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이세요^^, 한국 돌아온지 일주일 정도 됐네요.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2. Favicon of http://333hun.tistory.com BlogIcon 세미예 2009.04.24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의 그런 면들이 있었군요.
    여행을 할때 주의해야 겠군요.
    피라미드 잘보고 갑니다.
    저곳에 언제 가보나. 부럽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3. Favicon of http://younghwan12.tistory.com BlogIcon younghwan 2009.04.24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집트에서는 그런면이 있어서 힘들기는 하지만, 워낙 힘들게 사는 사람이니까 내가 한번 당하면 적어도 이집트사람 한가족이 하루는 운이 좋았다고 행복해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것 같네요. 저도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지만 기껏해야 1~2만원 바가지 쓰는 건데, 마음을 바꿔 먹으니 괜찮은 것 같더라구요...

  4. 알렉스 2009.04.27 0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0배면 아프리카에선 모 양심적으로 부풀리는거 같다는 ㅡ.,ㅡㅋ

    짐바브웨서는 100배부터 시작합니다 ㅋㅋ

    재밌는 여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근데...


    카이로에 KFC아직 있나욤?

  5. Favicon of http://bacon.tistory.com BlogIcon Bacon 2009.07.08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친구도 이집트 다녀와서 그 얘기를 하더라구요.
    한 번은 가 볼만 하다고 하더라구요. 바가지 때문에 짜증이 나서 두 번은 가기 싫을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_-;;

  6. haha 2010.01.23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라미드네 나일강이네 해서 낭만적인 것 처럼 방송에는 묘사되지만...

    두번 다시 가기 싫은 나라입니다. 지독한 매연때문에 공기는 꼭 최루가스같고, 낙타 한번 탈랬더니 가격을 300파운드부터 부르기에.... 흥정 안하고 개겼더니 나중에는 15 파운드까지 가격이 내려가더군요...

    물 한병, 빵 한조각을 살때도 가격을 속이는 나라, 이집트라는....

편견은 잔인하다. 대상을 생각의 틀에 가둔 채, 멋대로 재단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경험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자, 특히 언론처럼 공신력 있는 기관을 맹신할 경우 편견의 벽은 더욱 견고해 진다.

한 번 굳어진 편견은 좀체 무너지지 않는다. 마치 딱딱한 껍데기에 쌓인 견과류 같다. 그 외벽을 깨기 위해선 커다란 충격이 필요하다. '망치'로 호두 껍데기를 두드리듯, '경험'이란 공이로 힘차게 두드려야 한다.

돌이켜 보면, 시리아 여행은 내 머릿속 호두 껍데기를 부수는 과정이었다.

마을 어귀의 모습이 우리나라 70~80년대 시절을 연상케 한다.



'악의 축' 선입견으로 시작한 여행
현지인의 따뜻한 마음 몸으로 느껴

서구 언론의 편향된 보도와 이를 여과 없이 전하는 국내언론에 익숙한 탓에 시리아 여행을 앞두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악의 축', '불량국가', '인권 사각 지대' 등 타자로부터 주입된 살벌한 이미지가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터키의 국경도시 안타키야에서 육로를 통해 시리아 측 알레포로 넘어오는 내내 흉흉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상상 속에서 나는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자에게 끌려가 개종을 강요당하거나,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당한 후 갖은 고문에 시달리는 처지에 놓이곤 했다.

머리를 흔들어 도리질 쳐보지만, 망상은 쉬 물러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시리아 국경을 통과한 버스가 길 한 편에 정차하고 있었다. 곧 차장이 낯선 아랍어로 뭐라 뭐라 소리친다. 사람들이 짐을 꾸리더니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현지인만 가득한 탓에 영어가 통하질 않았다.

상황으로 짐작건대 여기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라는 말인 듯 했다. 다른 이들의 꽁무니를 쫓아 밖으로 나오자, 황토 빛 중동 풍경이 시선을압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에서 만난 아이들은 해맑은 미소로 이방인을 환대했다.


간이 정류소엔 변변한 의자 하나 없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기약 없이 버스를 기다렸다. 지평선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는데, 지나가던 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춰 섰다. 운전자가 차에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덜컥 겁이 나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무안한 듯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떠났다. 두 번째는 트럭이다. 여지없이 나는 험한 인상으로 손사래를 쳤다.

얼룩진 창으론 풍경을 볼 수 없어

버스를 기다리는 30분 동안 스무 대가량의 차를 상대로 같은 일을 반복했다. 뒤늦게 깨달았다. 그들이 낯선 이방인을 도우려 했다는 사실을. 저물녘 허허벌판을 서성이는 내게 대가없이 차편을 제공하려던 것을. 괜한 의심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국경에서 마주한 시리아인의 호의는 시작에 불과했다. 알레포와 하마, 다마스쿠스 등 시리아 주요 도시를 여행하며 나는 현지인의 따뜻한 마음을 온 몸으로 느꼈다.

시리아 중부 도시 하마의 풍경.

국경도시 알레포에 자리한 모스크.


하마에선 단 한 번도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 적이 없다. 손짓만 하면 지나가던 차량이 멈춰 선다. 같은 방향이면 그들은 어김없이 나를 태워다 준다. 커피나 차를 돈 내고 마신 기억도 별로 없다.

거리를 걷다보면 발길을 붙잡고 차 한 잔 마시고 가라는 상점 주인이 지천이다. 행여나 길이라도 물어볼라치면 서로들 데려다주겠다고 아우성이다. 동양인이 낯선 아이들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웬일인지 흘끔거릴 뿐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수줍은 탓이다. 그저 먼발치에서 바라보다 눈길이 마주치면 세차게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이 해맑다.

여정을 통틀어 가장 착한 민족을 꼽으라면 난 주저 없이 시리아인을 택할 것이다. 그들이 내게 베푼 환대와 호의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이들에게 '악의 축'이란 주홍글씨를 새겼다. 특정 세력에게 쓰일 법한 용어가 한 나라를 통째로 옭아맸다. 그 때부터 이 나라 국민 전체가 악의 무리처럼 여겨졌다. 시리아를 여행하기 전 내 속에 자리하던 편견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위정자들의 정치적 논리에 따라 선량한 시리아인은 하루아침에 폭력적인 민족으로 낙인찍혔다. 안타까운 일이다.

시리아를 여행한 후 나는 편견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았다. 일방으로 전해지는 정보에 매달려 왜곡된 시선으로 시리아를 바라봤단 생각에 소름이 돋는다. 얼룩진 창으론 제대로 된 풍경을 감상할 수 없다. 마찬가지다. 생각의 창에 덕지덕지 붙은 편견의 때를 벗겨 낼 때 비로소 창 너머 진실이 보인다. 시리아가 내게 준 소중한 교훈이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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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반부 어딘가 2009.04.21 05: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부럽네요.. 저도 언젠가는 세계를 여행하고 싶어요. 어렸을때 부터 한비야 씨의 여행기를 읽으며 많은 것들을 꿈꾸고 기대 했는데 지금 성인이 되고난 후로는 그 옛날 가고 싶었던곳들, 먹고 싶었던것들, 하고 싶었던것들이 잘 기억도 안나고 그냥 기억속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았네요.. 탄타로스님 글보면서 어디로 떠나면 가장 좋을까 다시한번 꿈꿔봅니다. 좋은 그리고 안전한 여행 보내시길! 아 그리고 시리아는 아직 한국과 국교를 시작하지 않은 나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입국하셨나요?

    • 탄타로스 2009.04.23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북반부 어딘가>님 감사합니다. 님처럼 염려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무사히 여행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제 글이 역마살을 부추겼다니 영광입니다.^^ 참! 중동 입국은 비교적 쉽습니다. 오히려 미국이나 영국 친구들이 중동 입국에 애를 먹더군요.

  2. Favicon of http://nizistyle.tistory.com BlogIcon 한량이 2009.04.22 15: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미얀마를 다녀오기 전에는 선입견이 많았습니다.

    미국이 정해 놓은 악의축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래도 국가에서 가지 말라는 곳은 않갔으면 좋겠습니다.^^

    • 탄타로스 2009.04.23 0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역시 여행은 안전이 최우선이죠.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큰 소득은 역시 내 안에 자리했던 선입견을 와장창 무너뜨렸다는 거...

  3. Favicon of http://metalrcn.tistory.com BlogIcon Metalrcn 2009.04.22 22: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경험하신것 같습니다. 역시 편견이란 무서운 것 이네요

  4. Favicon of http://mame-can.tistory.com BlogIcon 마메군 2009.04.22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보고갑니다. 솔직히 이세상은 선입견 뿐이라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경험하신 탄타로스님이 부럽습니다.

    후에 대학생활하게되면 휴학하고 세계여행한번 해봐야 할 것같네요

    • 탄타로스 2009.04.23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감사합니다. 댓글로 미루어 아직 젊으신거 같은데 기회가 닿으시면 꼭 도전하시길...

  5. 2009.04.23 06: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동쪽에 관심이 많은 고등학생입니다

    친한 언니가 선교를 다녀온 시리아는 저에게 다른 국가들보다는 조금 더 친근한 국가인데요

    그래서 저도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국가 중 하나인데 정말 부럽습니다!

    원래 무슬림들은 종교적으로 이방인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이 당연한 것 이라고 해요

    하지만 특히나 한국인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그래서 한국에서의 중동에 대한 이미지는 잘 알 수가 없지만

    확실히 여기와는 다른 듯 하네요

    • 탄타로스 2009.04.24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시리아 사람들 참 좋더군요. 후에 꼭 한 번 중동 여행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6. dafds 2009.04.23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 영○ㅓ가 이렇게 비효율적인 것은
    우리가 배우는 문법이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ㄷ ┣음 ㅋ ┣페
    “이 제 영○ㅓ 의 의 문 이 풀 렸 다”로 들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7. Favicon of http://ee@d BlogIcon 우리나라만의시각 2009.04.23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외신의대부분은 다른나라통신사나 방송 번역해서 보내주는게 우리나라현실이지요 그러니 당연히 우리의시각이아니라 그녀석들에 시각일수밖에없지요 그나마 경제사정으로 있던 특파원들도 줄이는형편이니 앞으론 더하면더하지 덜하지는않겠지요 얼마전 과연 스탈린치하에서 아님 구소련치하에서 수천만명이죽었는지에대한 의문점에대해 쓴글을읽었는데 참 어처구니없는 왜곡과 그걸과장해서 정치적으로이용하는서구언론들 우리가 위대한인물로알고있는 솔제니친의 파시즘적인사상과 행동들 그모든것들을 자기들입맛에맞게 왜곡하는 서구언론들이 무섭더라구요..맨위사진보니 집집마다 위성안테나가 다있네요 저들도 서구의시각으로 우리를 판단하지않을까 걱정되네요...

  8. Favicon of http://ppjini.tistory.com BlogIcon 고냉 2009.04.23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저번주에 미얀마를 갔다오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골든 트라이앵글, 혹은 악의 축의 하나로 알려진 미얀마.
    군부 독재 정권의 영향으로 폭력적이고 가난하고 음울한 분위기일거라고 생각햇는데..
    실제 그게 아니더라구요.
    더 해맑고 순수한 사람들의 수줍은 미소가 가득한 나라였드랬습니다.
    정보에 의한 편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여행이었어요.
    시리아...갔다온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곳이던데...부럽습니다!!

    기회되시면 꼭 미얀마도 다녀오시길...^^

  9. 121 2009.04.23 1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온』『라』『인』『야』『마』『토』『오』『픈』 ▶▶『k』『b』『s』『c』『a』『s』『i』『n』『o』『.』『c』『o』『m』◀◀ 야마토클럽

  10. ming 2009.04.24 1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아가 인심도 좋고 물가도 싸죠.
    다마스커스 쪽은 이라크 난민들 때문에 인플레가 심해서 택시값이 꽤 올랐지만 먹을 건 참 싸더군요.
    그리고 혹시 아직도 계신다면 석류쥬스를 드셔보세요. 한국에서 참 비싼데 거기서 사면 가장 싸고 질이 좋은 편이예요. 터키랑은 비교도 안되죠. 당연히 숫자를 읽으실테니 바가지는 안쓰실거예요.
    즐거운 여행 하시길 바래요.

  11. fma 2009.04.25 0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가지는 이슬람 국가의 인상과 달리 직접 그들을 대하면 참 순박하고 아낌없이 나누어 주려고 한다더군요..제 지인이 개신교도로 터어키 같은 곳에 선교하기 위해 갔는데 참 잘해 주더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친구의 해석은 야박하더군요. 이슬람 경전에 뭐 나그네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라는 구절 때문에 순전히 그러는 거라나...그렇게 환대를 받았다고 자랑하면서 ...또 한편으로 저렇게 해석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솔직히 이슬람 국가에서 하는 개신교 전도라는 것이 걱정스럽더군요.
    일전에 예멘의 자살폭탄테러의 씨앗을 한국 개신교 전도가 심은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 탄타로스 2009.04.26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참 종교때문에 탈이 많은 것 같아요. 다들 행복하게 살자고 믿는건데...어쨌든 의견 감사합니다.

    • bona8608 2009.04.29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가톨릭신자 이지만 성경에도 그런말씀은 있어요. "미소한(병들고,배고프고,헐벗은) 형제에게 해준것이 곧 나에게 한것"이라고 말이죠. 우리가 실행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실천하는 그들이 존경스럽습니다.

  12. bona8608 2009.04.29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랬었어요. 오십이 넘어서 그런 편견들을 깨고 세상을 봅니다. 나 이제는 중동의 형제들을 사랑하렵니다.그들은 정말 순수한것 같아요. 미국인들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인권을 유린하고 지금은 그것을 덮으려하면서 남의 나라에는 인권 운운합니다.이제 균형잡힌 눈으로 보아야 겠습니다. 전쟁의 참화속에서 신음하는 이웃들을 도웁시다.우리가 예전에 받았듯이 말이죠.

  13. Favicon of http://ipodart.tistory.com BlogIcon iPod Art 2009.05.01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디어는 정말 무섭죠...균형잡힌 보도를 접해야 하는데.

  14. kicee 2009.05.04 2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저도 올 봄에 시리아로 여행가려다가
    회사분위기가 아무래도 안좋아져서 우선
    가을로 여행시기를 수정해야 할 듯하네요..
    시리아 관련해서 여행책자나 자료가 많지않아서
    만약 제가 여행갈수있다면 많은 도움 부탁드릴께요..
    항상 건강하세요~

  15. 갔다와서 2009.06.23 23: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리아의 백미는 단연 '팔미라'인데, 한국인들이 자주가는 sun hostel?에서 isic학생증을 10달러에 위조해줍니다. 일반인의 1/15가격의 파격적 할인을 해주니, 유적지, 박물관 자주가면 유용하죠.
    그것보다 이런걸 야매로 만들어주는거 자체가 좀 웃기죠. 확실한건 현지인들 아주 친절합니다.
    미국때문에 현지여행지가 파리날리는게 비극이죠.

  16. 이븐바투타 2009.06.28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시리아 여행기찾다가 들어와서 보게되었는데요..잘읽고갑니다..

  17. Favicon of http://bacon.tistory.com BlogIcon Bacon 2009.07.08 0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을 쓰면서 가다보니.. 시간이 좀 많이 지난 댓글은 안 보시나봐요. @_@

  18. 보라곰 2009.09.24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한마디 안하고도 그사람을 눈으로 보지도 못한채 사람과 사람을 완벽히 미워할 수 있게끔 하는 선입견이란 놈 참 무섭죠...나또한 내 맘에 어떠한 선입견을 갖고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는게 무섭기만 합니다.

    • 탄타로스 2009.09.25 0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입견...생각만큼 털어내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보라곰님처럼 선입견을 경계하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19. 나그네 2010.02.02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자분이신가요? 여자분이 아니고 남자분이시라면 비록 반성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애초에 그런 편견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오늘은 엽서를 띄웁니다. 문득 엽서가 쓰고 싶어졌어요. 카파도키아는 그런 곳입니다. 풍경 하나하나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지난밤에 이스탄불에서 밤차를 탔습니다. 많이 피곤했는지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잠이 들었죠. 사부작거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먼발치서 동이 터 오릅니다. 비몽사몽간에 짐을 꾸려 내렸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주변 풍경이 몹시도 생경합니다.

황량한 벌판에 기암석이 삐죽삐죽 솟아 있습니다. 사방이 모두 그렇습니다. 혹성에 온 기분입니다. 우주선 비유에스(BUS) 호는 소행성 카파도키아에 저만 덩그러니 남겨두고서 지구 은하 저편으로 사라집니다.

카파도키아는 한 마디로 규정짓기 힘든 풍경을 지녔다. 외롭고 황량한 듯 보이지만 기암 군락의 어우러짐은 왠지 모를 따스함을 품고 있다.

카파도키아는 터키 아나톨리아의 광대한 지역을 통칭합니다. 제가 도착한 곳은 괴레메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먼 옛날 화산활동으로 이 지역에 셀 수 없이 많은 응회암이 생겨났습니다. 켜켜이 쌓인 화산재가 굳어져 돌덩이가 됐고, 비바람이 이를 깎아 다양한 모양의 기암석 군락을 만든 거죠. '자연이 빚어낸 수작'이란 찬사가 아깝지 않습니다.

며칠 사이 눈이 많이 왔습니다. 숙소를 나서기 전 단단히 채비를 해야 합니다. 밑동 잘린 나무에서 굵은 가지를 꺾어 지팡이를 만들고, 운동화에 짚단을 엮습니다. 이 정도면 눈 쌓인 둔덕도 끄떡 없겠다싶어 혹성탐사를 시작합니다.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동안 오르니, 괴레메 전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너른 공간에 돌무더기가 빽빽합니다. 딱히 뭐라 규정하기 힘든 풍경입니다. 고요한가하면 돌 사이를 헤집는 바람의 울음이 적막을 깹니다. 외로운가하면 눈 덮인 기암 위로 새가 날아들어 친구가 됩니다. 삭막한가하면 사이좋게 어우러진 기암 군락이 온기를 전합니다.

비바람이 깎아 놓은 기암석은 그 모양이 다채롭다. 그 중 낙타를 빼다 박은 암석이 눈을 사로잡는다.

가만히 앉아 솟아오른 돌덩이 하나하나를 관찰합니다. 그 크기와 모양이 참으로 다채롭습니다. 어떤 놈은 크기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고, 어떤 건 제 키 만 하기도 합니다. 버섯 모양의 돌도 있고, 솜사탕같이 생긴 놈도 있습니다. 그 중 한 녀석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낙타모양의 암석입니다. 사람 손으로 빚어도 저리 만들기는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낙타를 빼다 박았습니다.

낙타바위를 보니, 중국에서 낙타를 탄 기억이 납니다. 지난해 막 여행을 시작했을 때였죠. 실크로드가 시작되는 중국 둔황의 사막에서였습니다. 11개월이 흘러 전 터키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터키는 실크로드가 끝나는 곳입니다. 역사의 현장, 그 '시작'과 '끝'을 모두 경험하고 나니, 감회가 남다릅니다.

생각은 꼬리를 물게 마련입니다. '시작'과 '끝'을 떠올리자, 지난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처음 길을 나서며 저는 다짐했습니다. 끊임없이 비우고, 또 채우겠다고. 대한민국 울타리 안에서 굳어진 타 문화·인종에 대한 선입견, 시장논리에 길들여진 배금주의, 소수자·약자를 향한 차별…, 이런 것들을 남김없이 비우고, 그 자리에 좋은 것들만 채워오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카파도키아는 화산이 빚어낸 기암석 군락으로 묘한 풍경을 자아낸다. 은하계를 표류하다가 이름 모를 혹성에 떨어진 기분이 든다.


초심을 돌아보니 마음이 영 불편합니다. 우리 돈 몇 백 원 때문에 목에 핏대를 세우거나, 별거 아닌 일에 '이
러니 너희 나라가 못사는 거야'하는 조롱과 멸시를 퍼부은 적이 많습니다.

접근하는 모든 이를 잠재적 도둑으로 의심하는가 하면, 구걸하는 아이를 매몰차게 내쫓기도 했습니다. 잘 사는 나라에선 공연히 주눅이 들고, 우리보다 못한 나라에선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곤 합니다.

서구를 여행하다 동양인에 대한 차별을 느낄 때면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정작 개발도상국 사람들에 대한 저의 편견엔 눈을 감습니다. 자신을 향한 불편부당함과 남을 향해 스스로가 행한 그것에 '이중 잣대'를 들이댑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석양에 길게 끌린 제 그림자가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상념에 빠진 채 둔덕 아래 기암석의 풍경을 봅니다. 그리고 다시금 제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오랜 세월 쌓인 화산재가 응회암을 만들었듯, 제 마음속에도 버려야 할 것들이 견고하게 굳어져 있습니다.

카파도키아 기암석은 비바람이 깎고 다듬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자리한 편견과 차별, 옹졸함은 무엇으로 닳아 없어지게 해야 할까요?

남은 여정 동안 제가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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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야 2009.04.21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스에 대한 글로 들어왔다가 마침 터어키 여행 준비 중이라 관심깊게 보았습니다. 퇴직한 남편과 함께 그리스 터키 여행을 하려는데 그렇지 않아도 여행위험지역에 속하지 않나 싶어 다른 곳으로 바꾸려는 찰나 카파도키아와 그리스에 대한 님의 글을 읽고 맘을 정합니다. 여행지에서 그 사회의 저변을 보는 자세가 참 깊이있습니다. 지금쯤 여정을 마치셨을 텐데 출발보다 훨씬 성숙해서 돌아오셨을 듯합니다.

    • 탄타로스 2009.04.23 0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아무튼 계획하신 여행 잘 하시길 기원합니다. 참! 터키 굉장히 볼 게 많은 나라에요. 치안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즐거운 여행 하세요.

  2. 은하수 2009.04.21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곳을 오늘 처음 들어와서 자기 성찰적인(?) 여행기를 잘 읽고 있답니다~
    저도 내년 30살이 되면 저 자신에게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을 선물해주고 싶네요^^
    또 놀러올꼐요~

서로 다른 문명이 충돌할 때, 그 끝은 늘 참혹하다. 이긴 자는 사람이든 문화재든 진 자의 모든 것을 도륙한다. 힘의 균형이 기우는 순간 한쪽 문명은 폐허가 된다. 난무하는 살육과 파괴 속에 한 터럭의 자비도 없다.

'승자독식', 지난 10개월의 여정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다. 아시아, 오세아니아, 북미,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대륙을 막론하고 이 명제는 비켜간 적이 없다. 인류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문명이 힘의 논리에 스러져 갔는가. 잔혹하기 그지없는 인간사의 궤적을 훑다보면 번번이 뒷덜미가 서늘해지고 현기증이 인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로 유럽과 아시아 양 대륙에 걸쳐 있다. 유럽대륙 너머 멀리 실크로드의 종착지인 아시아 대륙이 보인다.


그래서일까. 터키 이스탄불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코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던 여러 문명의 어우러짐, 지배와 피지배의 간극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승자의 관용, 2000년 고도 이스탄불은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승자독식'의 틀을 통쾌하게 무너뜨렸다.

이스탄불은 터키 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역사 깊은 도시다. 도심을 관통하는 보스포루스 해협은 동서로 아시아와 유럽 양 대륙을, 남북으로는 흑해와 지중해를 연결한다. 오래전부터 이스탄불은 실크로드의 종착지로서 동·서양의 가교 역할을 해왔다.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던 만큼 이 도시는 끊임없이 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아시아-유럽 사이 보르포루스 해협
동서양의 가교이자 문명충돌의 현장
'승자독식' 틀 깨고 기독-이슬람 공존


영토분쟁의 역사는 도시 이름의 변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티움으로, 로마 지배 하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다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 시대에 접어들어 지금의 이름인 이스탄불로 굳어졌다. 지명과 함께 이스탄불을 둘러싼 패권 역시 변화를 겪었다. 기독교 문명의 그리스·로마 시대에서 이슬람교의 오스만투르크 시대로 권력이 이동한 것이다.

동서양의 가교 이스탄불에는 없는 게 없다. 터키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는 양 문명의 문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인간사에 만연해 있던 '승자독식'의 관행에 비추어 보자면, 패권을 쥔 오스만투르크는 그리스와 로마 문화를 철저히 파괴했어야 한다. 하지만 정복자는 폭력 대신 관용을 택했다. 그 덕에 이스탄불 내 동로마(비잔틴 제국) 시대의 기독교 유적을 비롯해 인근의 그리스 유적까지 온전히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역사의 현장에서 나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관용을 베푼 주체가 다름 아닌 무슬림이었기 때문이다. 서구가 가공한 창을 통해 나는 이슬람이 호전적이고 무자비하다고 생각해왔다. 이곳 이스탄불에서 공고하게 굳어진 선입견의 벽을 허무는 동안 왜곡된 역사관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구시가지에 우뚝 선 '아야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의 포용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비잔틴 제국을 함락한 직후 오스만투르크는 파괴와 약탈을 금했다. 그들은 서구 기독교의 상징이던 소피아 성당을 가리켜 '같은 하느님을 모신 성전'이라며 보존을 명했다. 이후 성당은 무슬림 교회인 모스크로 사용됐다.

동서양의 가교 이스탄불에는 없는 게 없다. 터키 최대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에는 양 문명의 문물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바다를 접한 이스탄불에는 해산물이 넘쳐난다. 낚시꾼들이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고기를 잡고 있다.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의 관용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일 뿐이다. 이스탄불 곳곳에서 목격한 타자에 대한 관대함은 '한 손엔 코란, 한 손엔 칼'로 각인된 이슬람의 이미지를 한 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서구 사관의 왜곡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쩌면 오스만투르크가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개 대륙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지배한 것도 이러한 관용 덕택인지 모른다. 대제국은 결코 총·칼로 유지될 수 없는 게 역사의 진리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배를 탔다. 이스탄불 유럽 측 영토인 '트라키야'를 출발해 아시아 쪽 땅인 '아나톨리아'까지 운행하는 배편이었다. 좁은 해협 사이로 아시아와 유럽이 지척에 놓여있다. 고갯짓만으로 양 대륙을 모두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멀리 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가 마주보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상징물이 조화롭게 서 있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터키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그랜드 바자르와 이집트 바자르도 눈에 띈다. 실크로드의 종착지답게 시장엔 동·서양 문물이 한데 뒤섞여 있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은 동과 서, 고와 금이 함께 숨 쉬는 '관용'과 '공존'의 땅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더불어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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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킈 2009.04.20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거의 글을 읽으면서 항상 유럽역사도 같이 알아가는 거 같아 재밌어요., 유럽역사를 알수 있는 좋은 책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추천좀

    • 탄타로스 2009.04.23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 아래, <북반구어딘가>님 말씀대로,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추천합니다. 또 엄밀히 역사 책은 아니지만, 권삼윤씨의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 추천합니다. 동서양의 차이를 먹거리와 연관지어 꽤 흥미롭게 읽힙니다.

  2. 님의 글을 읽으면 왠지.. 2009.04.20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구는 무조건 악이면 불평등을 만드는 나쁜세력이고 이슬람은 관용을 베푸는 세력인것 같은 느낌이듭니다. 어떻게 소피아 성당이 남아있다고 이슬람이 관용을 배풀었다고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럼 스페인에 있는 수많은 이슬람 사원들은 가톡릭에서 관용을 베풀어 남아있는 것이겠네요.. 공부좀 하세요. 이스탐불에 사는 카토릭 신자들이 피박을 받지 않고 살아왔다고 생각하시면 사람의 외양만 보고 그사람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본래 역사관이라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서구의 역사관이 나쁘다 볼수 많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책보다는 훨씬 객관적이고 방대한 자료가 풍부하니까요.

    • 애비 2009.04.21 1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야 말로 공부를 좀 하세요.
      콘스탄티노플이 침략당한 역사를 볼때 같은 기독교(십자군)에 의한 약탈이 더 무자비하고 잔인했었답니다. 동시대의 무슬림세력은 당시의 서구 기독교(카톨릭) 문명에 비해 과학기술이나 문화면에서 뿐만 아니라 포용력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도 더 선진적인 집단이었습니다. 스페인이 고토회복중에 자행한 심각한 문명파괴가 어느정도였는지도 더 공부좀 하셔야 겠구요.

    • 허걱.. 2009.04.21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뭐병이네요.글쓴이의 글 어디에서 서구는 무조건 악이란 식의 글이 있죠? 서구의 눈에 의해서 왜곡된 이슬람 문명에 대한 반성의 의미가 안보이나요? 님은 공부 이전에 기본적인 글부터 읽는 훈련을 하세요.

    • Conor 2009.04.21 18:32  댓글주소  수정/삭제

      스페인은 아예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의 씨를 말렸지. 다 때려 부수고 간신히 몇 개 남긴 것 중의 하나가 알함브라 정도. 아메리카 대륙에 들어가서는 아즈텍이나 잉카의 문서들을 다 파괴하는 바람에 남아메리카의 고대사를 미스터리로 만들어 놓질 않나.

    • 흐음.. 2009.04.22 03: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사람 왠지 기독교 일 것 같다..

  3. 북반부 어딘가 2009.04.21 0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스페인과 오토만 제국의 타 종교 대우하는 법은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님의 글을 읽으면 왠지' 님,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물론 아나토이아 반도 (지금의 터키) 가 착한사람들만 살았던곳은 절대 아닙니다. (사람사는곳인데 다 똑같죠 뭐.) 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왠지 종교적 관용이 많았어요. 이슬람이 꼭 그렇다고 관용의 종교라는것은 아니지만 이지역에서는 이슬람교들이 굉장히 타 종교를 용납했었더라고요.

    한편 같은 시대 즈음 (16세기? 숫자에 약한터라..) 스페인에서는 Inquisition (한국말로는 뭔지 모르겠네요..)정책을 펼쳐서 이슬람인들이나 유대인을 다 죽이거나 추방시켰다지요.. 물론 종교적이라기 보다는 그당시 스페인을 통일 시키고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Isabella와 Ferdinand의 정치적 목적이였지만 이들이 카톨릭 신자였던것은 부인할수 없겠죠..

    유럽역사는 (땅덩이도 조그만게) 꽤 많은 비극과 인종/종교 차별들로 가득차있는 편입니다. 물론 가장 잘 알려졌기에 가장 심해 보이는것 같을수도 있겠네요..

    유럽인들이 인정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들의 오래된 우방인 북미에서는 인정하는 역사관인것 같네요..

    역사책은... 그냥 여러가지 많이 읽으세요. 손에 닽는대로.. 여러 가지 많은 책을 읽어야 여러가지 역사관을 고르게 경험하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만들수 있으니..

    만일 처음으로 유럽역사를 접하시는 터라 부담스러우시면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만화책 시리즈로 시작하시면 좋겠네요. 저같은 경우는 그 만화책들에서 지금 아는 유럽역사의 기초토대를 다 얻은듯...

    그후에 읽은 책들로는 이책들 내용들에 빠진것을 보충하는 정도였던것 같음... 개인적으로 추천합니다!

  4. 산체스 삐즈후안 2009.04.21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이슬람이 타종교에 관대했던건 사실인데 오스만제국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는 역사적 팩트는 근거가 없는데요.

    스페인 거주하면서 듣고 본 바로 양쪽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그래도 레꽁끼스타 이후의 스페인쪽이 오스만보다는 조금 더 나은거 같네요.

  5. Favicon of http://333hun.tistory.com BlogIcon 세미예 2009.04.21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문명충돌의 지역이었네요. 문명뿐만 아니라 종교의 완충지대이자 충돌지대이기도 하고요.
    그런 역사속을 잘 헤쳐 공존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6. 마야 2009.04.21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고싶던 터키여행을 지금 준비하고 있어서 님의 글이 피부로 다가옵니다. 터키는 제게 '내 이름은 빨강'의 소설가 오르한파묵과 축구선수 '일한'의 나라죠. 그리스에 대한 글도 그렇고 여행 여정 속에서 사회를 읽는 님의 시각이 매우 깊이있어 보입니다.

    • 탄타로스 2009.04.23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이세요^^ 터키... 다시 한번 가고픈 나라입니다. 즐거운 여행하세요.

  7. 가나다 2009.04.21 1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슨 이슬람이 관대해.... 마호메드가 한손에는 칼 한손에는 코란 즉 알라를 믿지 않으면 죽였는데, 또는 큰 세금을 메기거나. 동양에서 서양으로 가는 중간에서 큰 시세차익을 노리고, 유목민인 만큼 강도짓하니 십자군이 만들어졌지.

    • 개독이구만.. 2009.04.21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금화를 삼켰을지도 모른다고 산채로 사람의 배를 갈라대는 돈에 환장한 악마인 십자군을 옹호하다니... 싸이코 개독답구나. 니네 야훼라는 잡귀가 그렇게 가르치디? 교회 목사같이 무식한 친구 말이나 믿고 있으니 그따위지. 불상때려부수는 니네 미개사막종교야 말로 지구에서 사라져야 할 종교다.

  8. abgp123 2009.04.21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스만투르크가 관용적이었던것은
    피정복민의 돈 때문이었지요. 어짜피 시작부터가 상인과 수컷의 종교였던 이슬람에서는
    만약 피 정복민이 금을 바칠수 만있다면 이슬람의 몇개의 계명과 부딪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더랍니다. 그리고 이익이 안된다고 생각했을때 안면에 철판깔고 모조리 뭉게 버렸지요.
    자기에게 반항한다고 "드라큘라"블라드 체뻬시의 아버지와 그 휘하의 보얄(귀족)들을
    개작살낸 화려한 과거가 묻혀서는 안되죠.
    어짜피 이익에 따라 흔들리는것입니다. 그리고 이재의 도가 밝았던 오스만의 술탄들은
    계산을 할줄 알았죠.
    성소피아성당으로 이슬람이 '관용'을 말씀하시는데 저런 아름다운건물을 부수는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 모르시는군요. 게다가 소피아를 둘러싼 4개의 모스크 미나렛은
    배경화면 정도로 보이싶니까?

    • 순진하시네요.... 2009.04.21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면 불국사 불지른 몽골군이나 잉카문명 박살낸 스페인군들도 무슨 대단한 용기가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고대사회에서 전쟁에서 이긴 군대가 약탈과 파괴를 하는 것은 거의 관행이나 다름없었는데 소피아 성당 부수는데 용기가 필요하다니요? 그러면 21세기에 바미얀의 불상들을 박살낸 탈레반은 정말 용감한 사람들이겠군요.

      돈에따라 움직였으면 차라리 다행이지요. 광신적 믿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보다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어차피 교회 목사들도 돈내놓으라고 신도들 세뇌하기 바쁠텐데요?

      그러면 오스만의 술탄들이 이재가 아니라 이슬람 원리주의에 따라 움직여야 했단 말입니까? 기독교 원리주의에 따라 움직여주지 않아서 불만이 있으신 것은 알겠지만 그렇다고 남에 종교를 비방하는 종교는 더 천박해 보이네요.

  9. abgp123 2009.04.21 1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대채 순교하면 70명의 처녀가 기다리고있다는 (여자들은 모조리 레즈비언이 되란 말인지!)
    종교가 무슨 미래가있고 관용이 있다는 말인가요?
    과부 기둥서방한게 원통해서 이빨 부득부득 갈던 마호멧이 만든 종교인데.............

  10. 2009.04.21 2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로 이슬람은 기독교보다는 관대했지요. 유태교,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강제 개종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성전을 믿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스페인에서도 발칸반도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강제개종이 행해진 적 없습니다. 북아프리카(예루살렘,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라라고 하는 로마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교구 중 3개가 있었던)에서도 강제개종은 없었습니다. 7-8세기에 이슬람에 정복되지만 실제로 이지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콥트어, 아람어 등의 언어를 아랍어로 바꾸게 된 것은 오히려 9-10세기 이슬람 분열기예요. 즉 이슬람 정치 세력이 약해 졌을 때 오히려 이 지역의 절대 다수 인구가 아랍화, 이슬람화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는 기독교 단성론자로 낙인찍혀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에 의해 탄압받았던 역사도 한 몫합니다만..)

    지하드(성전) 개념은 오히려 이슬람 초기 아라비아 부족 통일과정에서 생겨난 개념이고, 제국확장기에는 적용안 됩니다. 문명이 아이들 장난이 아니고 그런 강압책만 있었다면 오히려 반발때문에 지배가 불가능해지지요. 그렇게 빠른 시간에 이슬람이 이전의 로마 제국 영토의 절반 이상에 뿌리 내릴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의 관용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그 반대는 전혀 아닙니다.

  11. 2009.04.21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이슬람 통치자(특히 오스만 투르크)는 오히려 이교도를 우대했어요. 왜냐면 이슬람은 이론적으로 '움마'라고 하는 평등한 정치, 종교 공동체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후 술탄(황제)의 전제권력을 확장시키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전제 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고 싶어도 이슬람 교리에 따라 신자는 자선세(자카트)만 내면 의무가 끝나기 때문에 함부로 세금을 부과할 수 없었어요. 그럴 경우 이슬람 공동체 내의 이슬람 신학자, 법학자(셰이크)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그렇지만 이교도들은 인두세를 내기 때문에 술탄의 재정에 플러스 요인이 되지요. 또 이슬람 교리에 고리대와 이자놀이를 금지하기 때문에 유통과정에서 생기는 이익(이슬람 지역은 상업이 발전된 지역이예요. 옛날부터)에 세금을 때리고 싶어도 쉽지 않지요. 그렇지만 이교도들에게는 가능하지요. 그래서 오스만 투르크는 제국 전역에 걸쳐서 그리스인, 유대교도, 아르메니아인,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 이집트 콥트교도, 시리아 기독교도 들을 고용해서 어영상인으로 삼고, 심지어는 세금 징수까지도 시켰어요. 물론 이들은 술탄의 보호를 받았고..(집단 거주 지역이 있었지만,, 유럽의 게토처럼 강제격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형식)

    또 오스만 투르크는 이슬람 세계에 나중에 들어온 투르크계 종족이예요. 따라서 기존의 이슬람 세력 및 아랍인 세력을 누르기 위해서도 이교도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발칸 반도에 대해서도 전혀 개종정책이 행해지지 않았고 발칸 출신들을 '예니체리 부대'로 편성해서 오히려 이집트, 아랍, 메소포타미아의 기성 이슬람세력-아랍인 들을 통제했어요. 심지어 아랍인들의 입김을 차단하기 위해서 루마니아 같은 지역은 콘스탄티노플의 그리스 지도자(그리스 정교회)를 왕으로 보냈지요.

    어쨌든,, 이슬람 지역이 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지역보다 종교적 관용이 많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전근대 유럽보다는 확실히 관용적이었던 것은 사실이니. 그리 아시길... 그리고 모르는 문제에 관해서는 함부로 댓글달지 마세요.. '카더라'는 신물나잖아요? 다들..?

  12. 2009.04.21 2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리고 19세기 중반의 아르메니아, 그리스 대학살은 왜 일어났냐고 묻는다면,,, 그건 이미 그대 '민족주의'에 의한 '정치적 사건'이지 종교랑은 관계없는 거라고 얘기해야 되겠네요. 이전에 '술탄의 평화'아래 잘 지내던 이교도들이 서유럽에서 불어오는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민족의식'이 각성이 되면서 '국가건설'요구-정치적 독립-가 생겨나면서 투르크 술탄의 타격을 받았던... 이건 챠르 러시아 치하의 여러 지역과 같은 상황이니. 종교와는 상관없어요.

  13. 개복치 2009.04.21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은 관용하지 않다로 논쟁이 붙은 거 같은데(반대쪽 사람들은 대부분 기독교인 같고)

    인구통계학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이런 말이 있어요

    '인류가 적정수준으로 머무르는데 제일 큰 공헌을 한 것은 기독교이다'

    기독교가 살인, 방화, 파괴, 약탈, 전쟁 등으로 인간을 많이 죽인 것을 말하는 것이죠

    이슬람이 상술적인 면이 있을지 몰라도 최소한 기독교보다는 수백배 관대합니다

    교회에서 목사들이 가르치는 것만 달달 머리 속에 넣지 말고 세계를 크게 보세요

  14. 사피아 2009.04.22 0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난 애인이 터키에 있어...그를 만나러 갈거야..터키 남자야....역시 이스탄불 살지

  15. Favicon of http://blog.daum.net/ligase BlogIcon ring 2009.04.22 0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히 흥미롭게 잘 보고 갑니다.
    많은 공부가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16. 김대현 2009.04.23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월에 신혼여행으로 이스탄불 갔다왔는데....위 사진을 보니까..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이스탄불만보면 서울하고 비교해도 못사는곳 아니구요...
    사람들도 친절하구 볼것도 많고 한번더 가고 싶네요..ㅎㅎㅎ
    근데 입장료가 생각보다 많이 비쌉니다.. 톨로 시작하는 궁전 26000원정도.아야 저기도 20000만원정도..
    먹는음식도 그렇구.ㅎㅎ

  17. 행인 2009.04.26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하면서 사실보단 이분법 논리만 가득 싣고 오진 마세요

그리스 여정을 코앞에 두고, 비보가 날아들었다. 그리스 전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단다. 지난해 말 경찰의 총격으로 15세 소년이 숨진 뒤 촉발된 청년들의 봉기가 해를 넘어 극렬한 반정부 시위로 번지고 있었다.

이미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피해를 톡톡히 본 터라 불안감이 싹텄다. 지난해 4월과 7월, 티베트와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여행 계획이 어그러진 바 있다. 티베트는 중국 공안의 '문화학살'이, 자이살메르의 경우에는 폭탄테러가 원인이었다. 당시 이들 땅을 밟지 못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다. 이후 일정까지 차질을 빚는 바람에 새판을 짜느라 진땀 뺐던 것.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아테네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며칠 전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고 믿기 힘들만큼. 하지만 도심 곳곳에선 여전히 정부와 청년 간의 팽팽한 긴장이 계속되고 있다.


'혹 이번에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터키와 중동, 아프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육로이동의 거점이 그리스다. 베이스캠프에 발을 딛지 못하면 남은 여정은 물거품이 될 게 뻔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외신에 눈과 귀를 붙박았다.

신들의 축복일까. 다행히도 '신화의 나라'는 내게 여행을 허락했다. 1월 중순 들어 소요가 잦아든 그리스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안도감과 초조함이 뒤섞인 심정으로 수도 아테네에 도착했다.

오로지 입국 여부에만 신경 쓰느라 시위에 대해 톺아볼 여유가 없던 나는 그리스에 발을 딛고서야 사태의 본질을 깨달았다.

이번 시위는 경찰의 총격으로 한 소년이 숨지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한 달여 동안 이어진 반정부 시위의 밑바탕에는 만성적인 청년실업 문제가 깔려 있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낮은 급료의 일용직을 전전해야 하는 '700유로 세대'(우리네 '88만 원 세대'와 같은 개념)의 분노가 공권력을 향해 들불처럼 번진 것이다.

88만 원 세대, 700유로 세대의 분노에 공감하다

소강국면이라고는 하나 여전히 아테네 곳곳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벽면마다 정부를 규탄하는 낙서가 가득했고, 갈기갈기 찢어진 그리스 국기가 을씨년스럽게 펄럭이고 있었다. 공공기관 앞에선 제복의 경찰이 삼엄하게 경비를 섰고, 이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눈에 핏발이 섰다.

혼란의 흔적을 훑는 내내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청년실업', '사상 최악의 취업난', '비정규직'…, 이런 용어들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서양 너머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의 나라에서 온 '88만 원 세대'는 그리스의 '700유로 세대'에게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기린 파르테논 신전. 정녕 청년의 미래를 밝힐 지혜는 없는가? 답을 구해본들 여신은 묵묵부답이다.


문득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언컨대, 청년들이 겪는 실업의 고통은 그리스보다 한국에서 더 크고 깊다. 청년실업의 비율만을 놓고 보면 20%에 달하는 그리스가 7%의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보다 심각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수치가 아니라 취업을 향한 눈물겨운 과정과 그에 따른 상실감 등 현상의 이면으로 고개를 돌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의 상황을 보라. 대학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교육에 가깝다. 적성이나 소질 따윈 헛구호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입시지옥에서 헤맨 후 대학생이 되면 상황이 나아지나? 어림없다.

상아탑은 직업훈련소로 바뀐 지 오래다. 신입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학점관리에 열을 쏟는다. 학점은 상대평가다. A등급을 위해 주저 없이 친구를 밟아야 한다. 교양? 캠퍼스의 낭만? 소가 웃을 일이다.

대학졸업을 앞두고는 취업을 위한 '~스터디'가 판을 친다. '면접대비 스터디', '합숙대비 스터디', '논술대비 스터디'…. 남녀 불문하고 성형 붐까지 인다. 토익 고득점, 고학점, 수 개의 자격증, 다수의 인턴 경험 등 너도 나도 이력서가 화려하다.

10년 세월 한결같이 취업에 매진하는 대한민국 청년, 그럼에도 그들에게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눈높이를 낮추라고? 허영심을 버리라고? 이러한 주문은 책임회피를 위한 '물타기'에 불과하다.

작은 직장에서도 얼마든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환경부터 조성하라. 몇몇 거대집단이 다 해먹는 기형적인 구조론 안 된다. 굳이 서울이 아니더라도, 꼭 대기업에 입사하지 않더라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 달라. 입으로만 지역균형발전이니 중소기업 부양이니 떠들지 말고 이를 실현시켜 달라. 그런 다음 청년들에게 책임을 전가해도 늦지 않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그리스를 포함한 유럽의 여타 나라 청년들 중 대한민국에서처럼 치열한 과정을 겪는 이들이 있는가? 동의할 수 없다. 그리스 청년들이 작은 생채기에 아우성치는 동안, 곪을 대로 곪은 상처를 안고도 대한민국 청년들은 현실에 순응하며 살고 있다. 묵묵히. 이 얼마나 고운 심성인가.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그리스 전역을 휩쓴 반정부 시위가 소강상태를 맞았다. 찢어진 채 을씨년스럽게 펄럭이는 그리스 국기가 당시의 혼란을 말해주고 있다.


바야흐로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청년 수난시대'다. 씁쓸함을 달래고자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올랐다. 눈앞에 거대한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지혜의 여신인 아테나를 기린 곳이다. 난국을 헤쳐 나갈 답을 구해보지만, 그녀는 말이 없다.

미궁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리스신화의 청년 테세우스가 떠올랐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다이달로스의 미로를 헤매는 테세우스처럼 우리 청년들은 꼬일 대로 꼬인 취업시장에서 방황하고 있다.

테세우스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그를 사모하던 아리아드네 공주의 도움으로 청년은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온다. 입구에서부터 공주가 전해준 실타래를 솔솔 풀어가며, 이를 이정표 삼아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우리의 끝은 어떨까? 우리에겐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있나? 무엇을 이정표 삼아 이 미로를 빠져나올 것인가? 영원히 '무한경쟁', '승자독식'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건 아닌가?"

수없이 많은 질문이 머리를 스치고 지난다.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궁금증이 있다. '도대체 누구에게 이런 물음을 던져야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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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냥qt들임 2009.04.20 2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찌질대기나 할 줄 아는 qt청년들임.. 겨우 등록금 내려달라고 삭발이나 하고..

    다른 굵직한 현안엔 관심도 없고..

    딱 지배자들 입맛에 맞는 청년..

    qt들은 걍 88만원으로 PC방에서 라면먹고, 담배나 피워대면서 그렇게 허송생활 열심히 해라.

  3. 김말동 2009.04.20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들 알고 있습니다.단지 나서지 않은 이유는 그가 그녀가 나서므로써 자기한테 기회가 돌아온다는 이기심이죠.

  4. 착한게아니라 이성적인거겠죠. 2009.04.20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 그나마 먹고 살만한 세대의 뒷받침이 있고 불만을 표출할 사이버 공간도 있고... 우리나라 청년들 무기력하지고 사회에 비관적이지도 패배감에 쪄들어 있지도 않고 윗세대 선동질에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분별력과 자제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이든 사람들이나 허송세월에 자기들의 잣대로 도매금 넘기듯 넘기지 마시기를...

  5. 직장인 2009.04.20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요즘 대딩들 사회문제 따위에는 관심없어 보인다. 80년대 초반만 해도 다른지역은 모르겠는데 인천 주안역 같은 경우 허구한날 데모하느라 최루탄 가스 때문에 눈물이 마를날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당시 정권의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던 몸부림이었겠지. 근데 지금은 그런것도 없어 보인다. 아니 한국인들 전체가 정부에서 까면 까이는대로, 잘해주면 잘해주는대로...무슨 소 마냥 어느 누군가는 하겠지...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에 어느 순간부터 젖어있는듯 하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정부 관계자들이라고 해서 제대로 된 인간들만 있으라는 법은 없어서 그게 잘못됐다는걸 인식하면 온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좀 일깨워주고 해야 하는데 이건 뭐 술에 물탄듯, 물에 술탄듯..아주 불감증에 걸린지 오랜듯 하다. 난 솔직히 국민연금을 정부에서 시행하겠다고 했을때 전국에서 들고 일어났었으면 했다. 근데 그런게 아니더라. 아 정말 아니라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들고 일어날수 있는 한국인들이 됐으면 좋겠다. 정말이지 20년 전부터 한국인들...너무 물러터졌다는 생각밖에는 안든다.

    • 착한게아니라 이성적인거겠죠. 2009.04.20 2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때랑은 시대가 다르지요. 그때는 어디 불만이라도 같이 토로하고 할 장소라도 있었나요??
      그리고 데모에만 젖어있다가 실력을 못쌓았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다썩었어. 부자들 다 드러버. 하면서 성공하려고 부자가 되려고 권력자가 되려고 다들 그러면 좀 웃기지요? 깨끗하게 성실하게를 삶의 목표로 산다면 부하지도 권력자가 못되도 계속 그길을 가야지 그나마 자기에게 떳떳하지 않을까?
      어떤 사항에 감정적으로 와~~~~외치기 보다. 해결방안을 찾고 그러한 일이 안생기도록 실력으로 그자리에 올라가면 그리 살지말고 낮으자리로 흘려보내고 낮은자리에서 떠받쳐야지요.
      아무리 고함지르고 난리쳐도 역사의 흐름이 그들때문에 변화한 것은 아니죠. 도리에 더 큰 파괴와 분노로 파괴된후에 협력하고 타협하고 서로 양보하는 자들에 의해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죠. 그렇다고 역사가 항상 진보하지는 않지만. 그 시대에 어떠한 사람들이 주도했느냐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한 것뿐. 그러한 특성이 있기에 영화에서의 미래는 장미빛으로 그려지지 않고 불안한 모습이 자주 그려지는것.

  6. 20대 청년 2009.04.20 2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솔직히 말해서 저는 20대.
    하지만 그렇게 취업전선에도 나가있지않고,
    또한 정치적, 사회적 개념마저 전무한 그런 부끄러운 청년입니다.

    하지만,
    20대가 아닌 사람들.. 대부분이 기성세대 겠지요.
    이렇게 인터넷을 통해 20대 청년들을 무기력하고 나태하고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에
    참으로 슬퍼져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누군가 의견 올려주신 것처럼
    20대가 이렇게 자라게 된 환경을 돌아봐 주십시오.
    누가 저희에게 거리에 나서서 세상을 바꾸라고 다독이기는 했습니까.
    지금 읽는 책과, 수능 공부를 접고 세상에 소리치라고 누가 우리에게 꿈을 불어넣어 주었습니까.

    오히려 제가 배운 것은 결국 폭도와 빨갱이로 몰려(진실은 모르겠습니다만)
    더욱 어려운 미래를 걷게 된 몇 안되는 젊은이들과,
    사회책에서만 가끔 민주화 운동이니 배우지만,
    결국 실패한 인생으로 몰아가는 이 세상입니다.
    기성세대를 보면 늘 서로 헐뜯고, 서로의 의견에 반대하고, 협력하는 일을 보여준적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렇지않은 분들도 있겠지만,
    마치 몇몇분이 이렇게 저희를 매도하는 것처럼 저 또한 그렇게 느낍니다.

    제가 정치에 대해서 가장 충격을 받았던 때가,
    청와대 안에서, 그 국회안에서 싸움판이 벌어지고, 욕설이 난무한 것을 티비를 통해 접했을 때입니다.
    아직 고등학생이던 때에 ..
    저는 그래도 어른인데, 국회인데, 나라의 중심인데...라는 생각으로
    아무리 서로의 의견이 맞지않는다 해도 논리적으로 서로 토론하고 비판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말이지요.
    정말, 한 국민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었고,
    그러한 정치에 대해 회의가 들었습니다.

    어차피 정치에 관심도 없었기에,
    이러한 환경에서 저는 공부에만 충실했고,
    지금 이렇게 다시 어른들의 꾸중을 듣습니다... 왜 이렇게 착하냐고.. 하하.

    그런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이 아닙니다.
    제가 정말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 저희가 아니라
    저희 아래에 자라나는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은 저희 보다 더욱 공부에 매여,
    아무런 꿈도 갖지 못한채,
    오로지 점수에 매여 살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기심과 멍청함을 탓할 것이 아니라,
    지금은 바로 기성세대가 일어나 세상을 바꾸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거리에 나서든지,
    그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정에서 그 아이들을 바로 세우든지,
    저 또한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한 가지 질문으로 글을 마칩니다.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이 글을 보고, 거리에 뛰쳐나가 자유를 부르짖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의 자녀가 독서실에서 수능정리집을 덮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국가를 위해 소리내기를 원하십니까?
    당신의 자녀가 취업 준비를 위해 토익학원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진보 모임에 나가길 허락하십니까?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는 분부터
    저희가 멍청하다, 이기적이다, 미래가 없다 탓하십시오.

    다소 저도 흥분해서 글을 적었으니,
    한번 생각 해보아 주시고, 단지 하나의 댓글 게시판일지 모르나,
    단지 누군가를 비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함께 협력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토론으로 이끌어 주시길 감히 청합니다.

    • 트미 2009.04.20 2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바로 거리로 뛰어나가 시위에 참가하라는 극단적인 이야기는 아닌것같습니다.

      외국과 비교하기에 사회, 문화적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세상을 바꾸기에는 너무 무기력한것이 사실입니다.
      기존 세대가 만들어 놓은 입시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할 일들이 부조리를 알고도 참거나 키보드 워리어로 끝나야하는 현실로 만드는 것이겠지요.

      국제적으로도 우리나라는 착한국민컴플랙스에 걸렸다고 표현하는 거 아시나요?

      대의를 위해 개인은 당연히 참고, 성공을 위해 비리도 눈감고,, 이런 것들이 다 사회적 변혁과 가치 재창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변화는 젊은이의 반격과 기존 세대의 협조로 이루어져왔습니다.

      지금 당장 뛰쳐나가라는거냐! 라고 반문하시기 보다는,
      기존 세대의 할일이 아니냐! 라고 말하기 보다는,
      지금 사회적 문제를 당당히 얘기하고 고쳐나갈 수 없는 젊은이들의 비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혁에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자꾸만 거꾸로가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 변명일뿐입니다. 2009.04.21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20대 정도면 스스로 사고할 능력이 있습니다.

      이렇게 남탓만 하는거...

      솔직히 30대로서 20대가 스스로 무기력할 수록 좋습니다.

      젋은사람 치고 안 올라오는게 좋죠...

      자기일은 스스로 하세요..20대 젊은이들...

    • arcane 2009.04.21 0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는 30대야말로 변명 아닌가?? 우린스스로 사고해서 시위를 안하고 공부해서 위로올라가서 바꾸는게 낫다고 생각해서 그럴수도 있는건데 그걸 그리 치부해버리시나..남탓?? 이건 엄연히 우리의 잘못과 기성세대의 잘못이 같이있는겁니다. 마치 20대의 잘못인양 떠넘기지 않았으면 하네요.

    • tankcrew 2009.04.21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삼 형제 아빠입니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어리지만, 훗날 스스로 가치판단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사회에 늘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보태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한 글자의 공부 보다는 한 가지의 올바른 가치관을 머리 속에 심는 것이 천 배 만 배의 가치가 있습니다.

  7. 착한게아니라 이성적인거겠죠. 2009.04.20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분 글에 동감합니다. 젊은이들 운운하지 말고. 실력을 키우게. 감정에 치우치기 쉬운 아이들 선동하지 말고. 젊은이들 피끓게 하지 말고. 그들은 이미 피가 끓고 있습니다. 열정이 필요한 것은 세상사에 찌든 기성세대지. 젊은이들이 아닙니다.
    젊은 이들은 노회한 이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고 자기들의 말을 하고 또한 말속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는 냉철한 이성이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지십시요. 하지만 젊은 때에는 그야먕을 뒷받침할 실력과 정직함을 배우는 시기이며, 또한 다른 이들과의 조화를 꾀하도록 연습할 시기입니다. 그때도 다른이들을 포용하지 못하고 실력도 키우지 못했다면 결국에는 나이들어서도 지금의 세대와 똑같은 모습에 빠질 뿐입니다.
    냉철하게 휘둘리지 말고 자기의 자리에 계십시요.
    그리고 젊은이 어쩌구 하는 기성세대들은 청년의 열정을 좀 가지란 말입니다.
    젊은이들이 거리에서 외치는 소리보다 자리를 잡은 당신이 그 자리에서 책임있게 기존의 모순들에 저항하여 방패막이가 되어줄때 젊은이들의 자라나는 꿈에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기성세대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더이상 젊은이..아직 어린 이들을 방패 막이로 몰지 마십시요.

  8. 누구도변화하지않는다면.. 2009.04.21 0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구도 변화하지않는다면 대체 이 사회는 누가 바꾸죠?
    누구도 열정을 다하지 않는다면
    에너지는 쏟지 않으면서 누가, 왜, 기존의 문제를 바꾼답니까?

    기성세대는 그들의 것을 지키고 유지하기 위해 힘쓸것이며, 젊은이들도 그것을 승계하기 위해 기존의 틀에 안주한다면,
    지금 우리가 격는 어려움 부조리는 누가 개인적 이득보다는 앞으로 사회의 발전과 나은 미래를 위해서, 누가 나서는거죠?

    방패막이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기존 지배구조에 아직 반기를 들 수 있는 젊은이들의 패기와 투쟁으로 변화를 가져왔고,
    역사적으로도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걸 누가 부인하겠습니까.

  9. 디디에 2009.04.21 0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착한 것 보다 잘 길들여진게 아닐까요?

  10. 이유는 2009.04.21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터넷과 게임에 혈기를 낭비하고있다

  11. mayz 2009.04.21 0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착하다.,..라고 표현하면 그럴수도 있지만,,
    그리스, 또는 유럽의 청년들과 우리네 청년들의 생각의 차이겠죠,,,


    대한민국 청년들은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남들보다 잘살수 있는 날이 올것이다,,,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현 상황의 불합리함을 인정해버립니다...

    예컨대, 부의 지나친 편중, 자본만이 이익을 창출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를 가진 현 상황에서,,
    청년들은,,,나도 언젠가 죽도록 일하면 저런 사람처럼 대 자본을 소유하고 저들처럼 떵떵거리며 살수 있어,,라는 좋게말하면 희망, 나쁘게 말하면 헛된 욕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유럽의 청년들,,,아니 지난 수세기동안 불합리함과 지배계층에 대한 끊임없는 항거와 저항으로 지금에 이르른 유럽의 사람들은 생각이 다르죠,,
    불합리한 것은 불합리한것이고,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그 누구도 그 누구위에 올라앉을수 없으며, 일한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사회를 원합니다...
    그리스 청년들이 봉기한 이유는 하나죠,,
    열심히 공부한 만큼, 그만한 대가를 사회가 해달라...라는 단순한 논리입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대한민국 청년들은 더럽고 아니꼽더라도 이런게 인생이겠거니 하며 꾹참고, 언젠가는 나도 저들처럼 떵떵거리며 살아야지 하며 살아갑니다..

    뭐가 옳은것일지는,,,,,,,,,,,,,,,,,,,,,,,,각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다만 저는, 저 스스로도 청년중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네 청년들이 좀더 날카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행복한 사회를 만들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12. 딴소리 2009.04.21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대학다닐때만 해도(불과 몇 년전)총장 사퇴등 요구하면서 총장실 점거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등록금 좀 내려달라면서 울면서 삭발하는걸 보고 있자니 30대인 저도 참 오래산 것

    같다는 생각이듭니다.

    제가 초등학교 무렵에는(국민학교겠죠;;) 화염병 던지고 쇠파이프 휘두르는 대학생들이 있었구요.

    더 오래사신 분들이 하실말씀도 많으시겠지만..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가 있는게 아니라 그냥 그 세대에 맞는 역할이 있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여지

    는게 전부도 아니고..

    그래도 에이 더러운것들~,다 똑같지.. 하면서 정치에 등돌리기 보다는 관심은 가지고.. 그 관심으로 최선의 선택을 투표로서 나타냈으면 좋겠네요.

    • 저 역시 2009.04.21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요즘 아이들 너무 순종적인거 같아요..저희 땐 아예
      등록금 납부 거부운동까지 했어요.. 학기 1/3 전까지
      등록금 납부 안내도 된다는 학교규정을 이용한거죠..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어차피 등록금 낼꺼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수십억 아니 수백억이라 해야겠죠.. 그 돈의 한달 이자를 한번 생각해보세요..ㅋㅋ그 때 등록금 인상분 돌려받았었는데..

  13. 낭만에 대하여... 2009.04.21 0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학에 낭만이 없다뇨. 있습니다. 다만 낭만을 즐기고 나면 4년 뒤가 힘들뿐...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후에 엄청 힘들거란 사실을 늦게 깨닫습니다...

  14. 나그네 2009.04.21 04: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인실업 -> 20대 청년실업 -> 여성실업 -> 30,40대 가장들의 실업
    20대 청년실업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일 아닙니다, 여성실업도 남의일이라고
    그저 능력이 없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자신에게는 그런일이 안닥칠거라 생각안하시나요?

    가장힘이 약한 장애인, 노인, 20대청년, 여성.. 순으로 짤리고 결국은
    30, 40대 가장들이 짤리는 상황입니다 88만원세대를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하지 마세요.
    실업율은 점점 높아지고 자신은 아닐거란 생각은 하지 마세요 ㅎㅎ

  15. 루피팡 2009.04.21 06: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유럽 사람들 용감해요....... 정부가 잘못하면 바로 과격하게 항의하죠.... 미국 사람들은 자기네들 유럽사람들에 비해서는 잘못산다는 사실도 모르고, 탄압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대규모로... 데모조차 할생각도 안하죠.....유럽 사람들은 삶의 질이 그렇게 높아도 더, 평등해지기 위해서 과격하게 시위합니다. 과연 그리스 답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 풋... 2009.04.21 2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유럽사람이 용감하다고? 유럽에서 제일 못사는 듣보잡국가에서 과격하게 항의하지. 유럽중에서 잘나가는 선진국에서 과격 데모 하디?

      딱 이야기하는 수준 보니까, 능력은 없고 눈만 높은 20대 백수구먼.... 정말 불쌍하다...

  16. 너무 뻔한 결론이네요 2009.04.21 07: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제가 쓴 답글은 데모나 과격한 시위가 결과를 바꾸지 못할것이라는 저의 생각을 바탕으로 쓴것이고 다른분들을 보니 글쓴이와 같이 과격한 시위나 데모가 결과를 바꿀수 있다고 생각하는것 같네요. 제 생각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에 영향을 주는 가능 합리적으로 효과적인 방법은 선거를 통해서 라고 생각되며, 데모와 시위는 정당화 될수 없다고 봅니다. 데모와 시위가 정당화 될수 없을뿐만 아니라 과연 현재 사회에서 성공할수 있을지는 더욱 의문이고요. 제가 비록 대통령 선거는 했지만, 선거에 별관심이 없는이유는 도대체 우리나라 대통령중에 잘했다고 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정치에 자신의 미래를 거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드네요.

    • ㅋㅋㅋㅋ 2009.04.21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무도 항의를 안하고 선거만 하니까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정치를 막하죠
      하다못해 일본같은 정치 후진국도
      정치인들이 우리나라처럼 국민을 자기집 개보듯이
      보지는 않습니다

    • 루피팡 2009.04.21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이 잘모르시나본데.... 과격한 시위나 데모 만큼 효과있는게 없습니다. 본론적으로, 인간은 이성이 통하지 않으면 무력 이외에는 통하는게 없죠.... 그러나 님말씀이 맞습니다. 투표를 잘하면 될텐데.... 데모나 시위도 소수단체가 자신들만을 위해서 하는건, 오히려 반대저항에 마주치게 마련이죠..... 그러나 지배계층이 절대 다수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면 마지막 방법은 무력적 시위밖에 없습니다.

  17. 왜? 저리 난리치냐... 2009.04.21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에 오면 편히 먹고 살 수 있는데...홍대에서 즐기면서 돈대주고...
    전 세계 걸인들이 한국에서 먹고 산다,,,,

  18. 수퍼베어 2009.04.21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글요지 이해는 하겠는데...
    전 솔직히 요즘 젊은이들에게 아무리 세상 돌아가는게 못마땅할지라도...
    아무것도 안하면서 불평을 할게 아니라...
    뭐라도 하면서 불평을 했으면 합니다...
    세상 부조리가 어제오늘일도 아니고... 다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겁니다...
    사람 뇌에 강제이식을 통해서 사회 맞춤형 인간으로 복제되는 세상이 오기전엔...
    언제 어떤 인간들이 물을 흐려놓을지는...
    자유가 보장되는 이상 최소화할순 있어도 제거는 절대 불가능한거죠...
    늘 그런 병폐가 있는 가운데 자기 할일 하며 살아가고...
    그에 만족하며 살아갈줄도 알아야하고...
    나중에 기회가 오면 바짝 당겨 기회를 잡을줄도 알고...
    뭐~ 그런거 아닙니까?
    그리이스 청년에 비해 한국청년들이 특별히 착하다거나 순둥이라거나 그런건 사회적으로 놓여있는 상태가 달라서이지 한국청년들이 사회를 회피하거나 하진 않았죠...
    419,516을 비롯 629선언을 끌어낸 6월항쟁도 전부 청년층이 주도를 했죠...
    청년들이여~ 기회는 게으른자에겐 찾아오지 않습니다...
    지금이라도 하고계신 알바 때려치우시고... 조그맣더라도 회사라는 조직에 몸을 담아서 생활하는 버릇부터 들이세요...
    개같이 일해서 박봉을 받더라도... 그게 젊음을 의미있게 보내는 일입니다...
    알바가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젊은분들은... 제발 정신차리시고... 회사 다니세요...
    알바는 젊음을 놀고 있는것과 마찬가집니다... 회사 다니는 사람들과 마인드 자체가 틀려서 드리는 말씀이니까 그렇게 하세요...

  19. wlsflrudckf 2009.05.19 18: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안]대한통운 사랑 범 자유시민 운동을 제안합니다!


    작년 촛불좀비들의 본색이 드디어 드러났습니다.
    저들은 드디어 북괴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입니다.
    지난번 북괴군 총참모부의 전면대결태세돌입선언이 본격적으로 실행된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전의경 전사는 목숨을 걸고 폭도와 싸워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조국의 번영, 저탄소녹색성장의 반석을 놓아야 합니다.

    5월16일 화물연대의 폭동은 대한통운 지입차주 계약해지가 그 구실이 되고 있습니다.
    지입차주는 자기가 좋은때는 사장노릇을 하면서, 정작 밥줄이 끓길때는 자기가 노동자라고 우기며
    비굴하면서도 흉악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불의에 맞서 우리 살아있는 정의 대한 전의경 전사는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대한통운 역시 불의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라 싸워 이간다 한들, 대한통운이 무릎꿇으면
    우리의 목숨을 건 항전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하여 제안합니다!!!!!!!!!!!!!!!

    대한통운이 친북좌익폭도에 무릎꿇지 않도록
    대한통운 택배서비스를 애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폭도와 맞서 싸울 수 없지만,
    대한통운이 폭도에 무릎꿇지 않도록 도울 수는 있습니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는 꼭 대한통운으로 배송하는지 반드시 확인합시다.
    단골 쇼핑몰이 있는데 혹 대한통운이 아닐 경우 전화를 걸러 반드시 대한통운으로 바꾸어 놓읍시다.
    누군가 짐을 보낼 일이 있으면 반드시 대한통운 택배를 사용합시다.
    특히 제대를 앞두고 개인짐을 집에 보낼때는 반드시 대한통운택배로 보냅시다.

    택배신청전화번호 1588-1255!
    편의점 택배 GS25, 패밀리마트, 바이더웨이!

    비록 전장에 나갈 수는 없어도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전사들, 그리고 자유시민들은 마땅히 대한통운을 애용해야 할 것입니다!
    대한통운이 적들에게 무릎꿇지 않도록!

    대한민국 만세! 대한통운 만세!

  20. wlsflrudckf 2009.05.19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진국의 평화시위문화는 어찌 확립되었는가?



    [만물상] 도심 시위
    2006년 11월 8일 (수) 19:44 조선일보

    [조선일보]

    1960~70년대 미국·유럽의 대학가와 거리는 반전과 혁명을 외치는 시위대가 점령했다. 60년대 후반부터는 과격해진 시위대와 중무장한 진압경찰 사이에 무력충돌이 잦아졌다. 1970년 5월 미국 오하이오 켄트주립대에서 베트남전 반대 시위를 하던 학생들에게 주방위군이 총격을 퍼부어 4명이 죽고 9명이 다쳤다. 이 ‘13초간의 난사(13 seconds of gunfire)’는 폭력시위를 줄이는 계기가 됐다.

    ▶시위에서 소규모·비폭력 양상은 80년대 들어 뚜렷해졌다. 1995년 미국 워싱턴의 사상 최대 흑인운동시위 ‘100만명의 행진’에선 사고는커녕 교통혼잡도 없었다. 올봄 텍사스 댈러스에서 ‘이민자 차별 반대시위’를 벌인 50만명은 대행진 후 시청 광장 집회까지를 경찰과 약속한 1시간 반 만에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경찰병력 750명에 앰뷸런스 7대만 동원됐고 병원 후송자 2명, 연행자 1명이 나왔을 뿐이다.

    ▶불법폭력시위를 막기 위해 뉴욕경찰은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무관용정책을 쓴다.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도 행진을 허락할 뿐 차도 행진은 99% 불허한다. 시위장소도 덜 붐비는 곳으로 제한하고 타임스퀘어나 5번가 같은 중심가는 아예 허가를 안 내준다. 법을 어긴 시위자는 무자비하게 체포한다. 뉴욕경찰은 이를 ‘삶의 질 경찰활동(Quality of life policing)’이라고 부른다.

    ▶경찰청이 시민에게 극심한 불편을 주는 서울 도심시위를 금지하겠다고 하자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자유롭게 집회를 열 권리를 빼앗지 말라”는 것이다. 자기네만 나라의 주인이고 생업을 위해 휴일에도 시내에 나와야 하는 서민들, 지친 심신을 달래러 모처럼 도심 나들이 나온 시민들은 들러리란 말인가. 기본권 논쟁을 하기 앞서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오만한 발상이다.

    ▶서구에선 60~70년대에 지나간 불법·과격·폭력 난장판을 우리는 21세기에 와서도 지긋지긋하게 보며 살고 있다. 시위를 주도하는 개인과 집단이 대부분 건전한 상식, 건전한 사고, 건전한 직장생활과는 거리가 먼 사회의 일탈자(逸脫者)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의 이목을 못 끄는 평화시위는 이빨 빠진 시위고 맥빠진 시위라는 생각에 젖어 있다. 난폭한 시위를 해야만 귀를 기울이는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우리에게도 다수 국민을 위한 ‘삶의 질 시위정책’이 필요하다.

    (김형기 · 논설위원 hgkim@chosun.com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1/08/2006110860471.html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2006110901509

    선진국의 평화시위문화는 오직
    불법시위를 하면 죽음뿐이라는 공감대에서 나온다!

  21. ㅜㅜ 2009.06.06 1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이 버릇은 평생 못 고칠듯 .. 어떻게 바꿔버리겟어요.
    지금도 시위 하면 20대 연령 분들은 별로 없는데.

    생각없이 착하고
    쓸데없는 시간에 투자해 멍청하고
    한 없이 미래만 바라본다는 이기적인 생각에........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금 20대는 이리저리 치이는 불쌍한 세대가 될듯

"어이! 후세인, 진짜 반갑다. 나 또 길을 잃었어. 도대체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네. 시장 골목이 이쪽이던가?"

불과 몇 시간 전에 안면을 튼 그다. 수년지기 대하 듯 호들갑을 떨자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무슨 상관이랴. 거미줄처럼 복잡한 메디나 골목에서 구세주를 만난 것을.

체면도 차릴 때와 버릴 때를 알아야 한다. 그의 싸늘한 시선에 아랑 곳 없이, 계속 친한 척을 했다.

"꼬레아! 시장은 저쪽이라고. 나 지금 일해야 하니까 알아서 찾아."

손수레에 잡동사니를 늘어놓던 후세인이 퉁을 놓는다.

그럴 만도 하다. 두 시간 전, 미로 속을 헤매다가 행상하던 그에게 도움을 청했더랬다. 바쁜 와중에 그는 약도까지 그려가며 성의껏 길을 일러 주었다. 그런 호의를 무용지물로 만들며, 결국 나는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인 페스의 메디나에는 수 백 갈래의 골목길이 나있다. 좁은 길 사이로 행상과 행인이 뒤섞인 메디나는 항상 북적거리고 활기차다.


발을 디딘 지 닷새가 넘었건만, 모로코 페스의 뒷골목은 마냥 낯설기만 하다. 페스는 수 천 년 전 조성된 아랍의 전통주거지로 유명한 도시다. '메디나'로 불리는 이 주거지는 지역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다. 특히 꼬인 실타래처럼 어지러이 펼쳐진 메디나의 골목길은 '이색 풍경'을 쫓는 전 세계 배낭족의 역마살을 자극한다.

메디나는 수백 갈래의 좁은 길을 품고 있다. 규칙이나 기준을 거부한 채 제 멋대로 뻗은 골목길 앞에서 방향감각 따윈 의미가 없다. 영화 <큐브>의 움직이는 미로처럼 메디나는 좀체 목적지를 내주지 않는다.

복잡하기로 이름 난 까닭에 많은 이들이 나름의 채비 끝에 메디나를 찾는다. 현지 안내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고, 지도나 안내책자를 구입하기도 한다. 굴지의 여행사에서 내놓는 메디나 관련 상품도 많다. 모로코에 도착하기 전까지 골목길의 존재조차 몰랐던 나에게 시련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모로코는 원래 예정에 없던 여행지다.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을 여행하던 중 뜬금없이 모로코 행을 결정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 유로화의 부담과 혹독한 추위를 피하고 싶었다. 유럽 물가의 절반 수준으로 지중해 이남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모로코가 단연 매력적일 수밖에.

모로코 전통의상을 입은 노인.

하지만 이는 부차적 이유에 달하지 않는다. 모로코를 택한 결정적인 이유는 유럽 여행이 지루했기 때문이다.

교통, 통신, 숙박 등 어디하나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관광인프라, 호객행위는 고사하고 뭘 하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개인주의, 유럽의 이런 요소들이 처음엔 편안함으로 다가왔다.

시간이 흐르자 편안함은 곧 지루함으로 변했다. 매너리즘에 빠져들 시기, 새로운 자극이 절실했다.

모로코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로 스페인과 마주하고 있다. 스페인의 항구도시 알헤시라스에서 배로 3시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

당긴 김에 쇠뿔을 뽑기로 마음먹은 나는 곧장 모로코 행 배에 몸을 실었다.

이슬람 국가인 모로코는 지정학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다. 이베리아 반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 유럽의 영향 또한 강하게 받았다.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배 하에 놓인 전력도 있다.

아랍과 아프리카, 유럽 등 각기 다른 문명이 녹아든 모로코의 문화는 다채롭기 그지없다. 무뎌진 여행자의 촉수에 날이 섰고, 다시금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온종일 메디나의 미로 속에서 발품을 팔아야 할망정, 나는 유럽의 단조로움보다 모로코의 혼잡함이 좋다. 때 이른 소소리바람을 맞으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자면, 눈과 귀가 무료할 새 없다. 히잡과 차도르를 걸친 여인네, 때마다 모스크에서 들려오는 코란의 읊조림, 영화 <스타워즈>에서 '제다이'가 입었던 모로코 전통복장 등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하나같이 생경하고 흥미롭다.

가장 인상이 깊었던 건 '찻집 문화'다. 메디나에는 차를 파는 곳이 많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남정네들이 허브 차나 커피를 홀짝이며 담소를 나눈다. 아마도 금주를 권하는 이슬람교의 특성 상 이런 문화가 생겨난 듯하다.

유흥문화에 익숙한 내게 남자끼리 차 마시며 수다 떠는 모습이 영 낯설다. 찻집 한 귀퉁이에 엉덩이를 붙이고 허브 차를 시켰다. 오지랖 넓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모로코인, 그들의 뜨거운 시선을 예상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내가 들어온 것조차 모른다. 모두들 찻집 천장에 매달린 TV에 빠져있다.

아랍의 전통주거지답게 페스의 메디나는 중세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가죽으로 유명한 모로코인 만큼 페스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죽염색공장이 있다.


아랍방송은 아비규환의 가자지구를 비추고 있었다. 장면 장면이 섬뜩해 현기증이 일었다. 백린탄 파편에 살이 타들어간 노인과 흰 천에 둘둘 말린 아이의 시체를 보도하던 앵커의 목소리가 격앙된다. 찻집 안이 술렁인다.

속보는 끝났지만,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원성은 잦아들지 않는다. 그들은 둘러앉아 한참 동안 토론을 벌였다. 낯선 아랍어 사이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USA, UN 등 귀에 익은 단어가 들린다.

문득 나 혼자만 길을 잃고 헤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 인권, 도덕, 이성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 역시 방향을 상실한 채 가자지구의 뒷골목을 표류하고 있는 듯하다.

한낱 여행자야 발품 팔면 그만이라지만, 대의야 어디 그런가. 보편적 가치가 제 길을 찾지 못하는 동안 무고한 희생만 늘어가는 것을.

단상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갈 요량으로 서둘러 찻집을 나왔다. 성벽 사이로 퍼져가는 노을이 아름다웠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해질녘의 여유였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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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희선 2009.04.17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

  2.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9.04.19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년 여정이시면 지금도 여행중이신거죠?
    대단하세요~
    여행하면서 글쓰는 것이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이렇게 글 올리시는 것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드네요~
    추천~~

    • 탄타로스 2009.04.23 0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찬이세요^^, 도꾸리님 같은 분들의 응원 덕에 무사히 여행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앞으로 자주 놀러오세요. 저도 놀러 갈게요.

  3. Favicon of http://ipodart.tistory.com BlogIcon iPod Art 2009.04.19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어 보이는 곳이네요. 꼭 가보고 싶어요.

    • 탄타로스 2009.04.23 0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모로코 잼나는 곳입니다. 기회되면 한 번 쯤 다녀오시길...

  4. avis3 2009.04.20 2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행에서 오는 느낌을 문학적 혹은 현실적 우리네세태와 관련지어 글을 쓰셔서 먼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생생하게 느껴지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5. 북반부 어딘가 2009.04.21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고민없이 발품만 팔고싶네요.

나는 '길치'다. 초행길은 물론이고, 한두 번 다닌 곳에서도 헤맬 만큼 증상이 심각하다. 공간과 방향을 관장하는 우뇌반구에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한달음으로 목적지에 닿는 이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존경심마저 든다.

여행 전 신문사에서 일할 때 항상 남보다 먼저 취재현장으로 향해야 했다. 길에서 허비할 시간을 고려해서다.

이러한 노력에도 자주 길을 잃고, 제 시간에 늦곤 했다. 먼저 도착해 취재기자를 기다리는 사진부 선배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연히 세계일주 소식을 처음 접한 주변사람들의 걱정은 대단했다. 그들의 우려를 비웃으며 당차게 집을 떠났건만, 지난 9개월 동안 여기저기서 무던히도 헤매고 다녔다.

△ 밀과 고기를 주식으로 한 유목민의 후예답게 유럽인은 길을 중심으로 삶의 터전을 꾸려왔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어느 건물이든 문만 열면 눈앞에 길이 펼쳐진다.


목적지 코앞에서 하염없이 방황하다가 택시를 잡아타는 일이 허다했다. 같은 자리만 맴돌다 현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미로를 빠져나온 적도 많다. 객쩍고 멋쩍은 고백이지만, 안에서 새던 바가지는 밖에서도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랬던 내가 요즘 들어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한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며, 나는 단 한 번도 길 때문에 고민한 적이 없다.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조차 지도 한 장으로 어디든 찾을 수 있었다.

'갑자기 우뇌 전두엽의 움직임이 활발해진 걸까? 숨겨져 있던 잠재력이 뒤늦게 빛을 발하는 건가?'

행복한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공감각 기능에 문제가 있는 '길치'란 얘기다.

그동안 내가 헤매지 않은 까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길이 그만큼 체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베리아 반도만 그런 게 아니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 먼저 둘러본 유럽 국가들 역시 잘 닦은 길을 소유하고 있었다. 유럽의 길은 광장을 중심으로 곧게 뻗어 있다. 종횡의 길엔 이름과 숫자가 표기돼, 다니기가 수월하다.

'유럽의 발코니'라 불리는 스페인의 네르하. 언제나 길을 만들어 떠나야 했던 서양인들에게 바닷길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대서양을 길 삼아 새 터전을 향해 떠났다.

정방형으로 가지런히 난 길을 보면 와플파이가 떠오른다. 동이나 마을 등 큰 단위에 익숙한 우리에게 생경한 모습이다.

권삼윤 씨가 지은 <빵은 길을 만들고, 밥은 마을을 만든다>는 책이 있다. 그 내용이 떠올라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책의 제목은 메타포다. 저자는 주식 개념을 들어 빵을 서양에, 밥을 동양에 비유하고 있다.

즉 서양에선 길이, 동양에선 마을이 중시된다는 뜻이다.

빵과 밥은 각각 밀과 쌀로 만든다. 건조한 유럽에서 잘 자라는 밀은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적은데다 영양분이 부족하다. 균형 잡힌 식단을 위해선 고기를 곁들여야 한다. 밀은 또한 지력을 약화시키는 까닭에 윤작이 힘들다. 가축에게 먹일 풀을 찾거나, 새로운 밀밭을 찾아 서양인은 끊임 없이 이동해야 했다. 그들 유목민에게 '길'은 숙명이었다.

스페인 마드리드. 많은 사람들이 무표정하게 스쳐지나간다. 개인주의를 가치관으로 하는 유럽인 사이에서 '나 홀로 여행자'의 고독감은 전에 없이 짙다.

반면 몬순지대의 혜택으로 물이 풍부한 동아시아는 벼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지녔다. 벼는 밀에 비해 수확량이 많고 영양소가 풍부한 완전식품이다. 특히 지력을 떨어뜨리지 않아 한 자리에서 윤작이 가능하다. 벼농사에 필요한 저수지나 댐 등의 관개시설 역시 정착생활을 부추겼다. 동양의 농경민에게 '마을'은 생존을 위한 단위였다.

주식이 낳은 양 문명의 특성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모든 건물은 문을 열면 바로 길과 맞닿는다. 큰 길과 거리를 두고 주거지를 형성하고 있는 우리네와 사뭇 다르다. 주소를 적는 방법 역시 마찬가지. 유럽에선 길 이름을 주소 맨 앞에 적어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동', '~번지'에 익숙한 나에겐 낯선 체계다.

'빵과 밥', '길과 마을'의 차이는 양 문명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하기에 유목민은 공동체보다 '개인'을 우선시 한다. 대를 이어 한 곳에 머무는 농경민이 '우리'에 초점을 맞추는 것과 상반된다.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고 있는 요즘, 전에 없던 향수병에 시달리고 있다. 집을 나선 지 9개월이 넘은 까닭도 있겠지만, 그보단 전혀 다른 가치관을 마주한 탓이 크리라.

유럽에서 나는 철저히 혼자다. 개인주의로 무장한 유목민의 후손들과 길을 걸을 때면, 고독감은 더 짙어진다.

문득 밥 짓는 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빵이 만든 길 위에서, 나는 밥이 만든 마을을 사무치게 그리고 있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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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9.04.18 1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래도 동양적인 것을 중시하는 문화속에서 자란
    저희로서는 빵과 함께 전통적인 가족애를 추구하게 되는 것 같아요~

  2. 똘레랑스 2009.04.25 1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착민 출신민족이 유목민족의 풍습과 문화를 이해한다는것이 참으로 어려운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 합니다... 님의 글 잘읽고 있읍니다. 건필하시길......

  3. 행인 2009.04.26 17: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러곳을 여행하시나 봐요 부럽군요....
    근데 하나, 과학적으로 쌀보다는 밀이 완전식품에 가깝다고
    들었어여..^^

  4. Peter 2009.10.13 16: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쓰는 사람인가요....? 부럽네요 이렇게 잘쓰시는거 보니까.. ㅎ

    • 탄타로스 2009.10.26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때 글로 밥벌어 먹고 살았습니다.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5. 다윗 2010.09.12 19: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문체가 참 지적이고 아름답네요.

  6.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 위에서 나이 한 살을 더했다. 서른이다.

서른이란 놈은 참 고약하다. 유랑생활에 정신없던 내 뒷덜미를 녀석은 인정사정없이 붙들었다. 무방비 상태였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느라 녀석이 다가오는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피 끓는 젊음', '눈부시게 푸른 청춘'에 이별을 고하자면, 무언가를 정리하고 결의해야 하지 않는가. 녀석의 기습에 그저 멍하게 20대를 떠나보내야 했다. 느닷없이.

이 글은 서른을 맞은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의 단상이다. 아니 그보단 푸념 혹은 끼적임에 가깝다.

'서른이 뭐 별거냐!', 일찍이 서른을 맞이한 선배들의 질책이 귓전을 맴돈다. 하지만 초보에겐 뭐든 두렵고 막막한 법. 당신들의 격려를 바란다. 아울러 올해 서른이 된 1980년 생 동지들의 공감을, 예비 서른의 기로에 선 후배들의 위로를 기대해 본다.

볼리비아의 우유니는 20억 톤이 넘는 소금으로 가득하다. 천지가 온통 하얀 소금사막에 서서 서른의 삶을 생각했다.


남미 여정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 한달, 나는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다. 고생은 자초한 측면이 컸다.
 
남미에 관심이 많던 나는 세계일주 전체 일정 중 많은 날을 이곳에 할애했다. 좀 여유 있게 돌아 볼 요량이었다. 그 여유가 과했나 보다. 남미 여정 초·중반에 늑장을 부린 탓에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한 달 남짓한 시간 안에 볼리비아와 파라과이를 거쳐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까지 가야했다. 넓디넓은 남미대륙임을 감안할 때 이동하는 것 만해도 벅찬 동선이다. 하물며 봐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당에….

이 기간 나는 침대에서 잔 날보다 버스에서 눈을 붙인 날이 더 많다. 시간을 벌기 위해 야간 버스에 올라 새우잠을 잤다. 50시간에 달하는 장거리 국제버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수면부족으로 머릿속은 늘 공허했고,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여행이라기보단 차라리 극기훈련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서른은 줄기차게 내 뒤를 밟았다. 먹잇감을 노리는 승냥이처럼 까치발을 하고 슬금슬금 거리를 좁혀왔던 것이다.

소금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버려진 철길이 있다. 소금과 함께 광물을 실어 나르던 열차가 운행을 멈추자, 철길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혔다. 철길을 위로하려는 듯 두 사람이 선로 위를 걷고 있다.

이를 자각했을 때 나는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에 서있었다. 서른 즈음, 정확히 새해를 열흘 앞둔 시점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세계 최대 규모의 염호다. 염분을 가득 머금은 호수가 뜨거운 태양아래 증발, 20억 톤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소금밭이 생겨났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새하얀 소금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사이에 서 있자니 천지를 구분하기 힘들었다. 허공에 발을 디딘 듯 몽롱한 기분이 드는가 하면, '하얀 방'에 갇힌 듯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공감각 기능을 담당하는 뇌 일부가 녹슨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소금 결정체가 반사하는 볕 때문에 부신 눈을 뜰 수 없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다. 하루아침에 눈이 먼 사람들, 모든 게 새하얗게 보이는 '백색공포'가 책의 소재였다. 문득 눈이 멀까 두려워졌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 있다가 문득 서른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돌아보니 녀석은 이미 목전에 와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서둘러 소금사막을 캔버스 삼아 서른의 삶을 그려보지만 허사다. 볕을 머금은 소금처럼 머릿속이 온통 회백색이다. 그 와중에도 불안감만은 고개를 쳐들고 생각의 언저리에 자리 잡는다.

'여행 끝나고 돌아가면 뭘 해야 하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이라는데 이대로 백수로 늙는 것은 아닐까? 친구들 중엔 벌써 대리를 단 놈도 있고, 가정을 꾸린 놈도 있는데 이대로 뒤처지는 건 아닐까? 여행 후 내게 남는 건 뭘까?'

사치스런 감상을 접고 다시 길에 섰다. 숨 가쁘게 내달려 겨우 목적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서른을 하루 남겨둔 12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신은 6일을 만든 후 마지막 7일째인 휴일을 브라질에 주셨다."

놀기 좋아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브라질 국민의 한량 기질은 세계 최고임이 틀림없다. 맥주를 홀짝이며 삼바 음악에 몸을 흔드는 이들이 지천에 널렸다. 2월의 카니발과 더불어 브라질 최고의 축제로 꼽히는 신년행사가 어떨지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의 해안가는 새해를 맞으려 몰려든 수 만 명의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불꽃은 밤하늘을 수놓았고, 삼바리듬에 맞춘 물라토의 몸짓은 지상을 수놓았다. 축제가 최고조에 달할 즈음, 모두가 한 목소리로 숫자를 셌다.

브라질의 이구아수 폭포. 세계 최대라는 수식어답게 낙폭과 물량이 어마어마하다. 물 떨어지는 굉음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다.


"열, 아홉, 여덟, 일곱, 여섯…"

축포가 터졌다. 2009년 새해가 밝은 것이다. 백사장을 가득 메운 인파의 함성이 파도소리를 잠재웠다. 여기저기 얼싸안은 사람들이 새로운 한해를 축복하며 볼인사를 나눴다.

그 열기에 휘둘려 잠시 내가 서른이 됐다는 사실을 잊었다. 북적거림은 새벽 동이 틀 무렵에야 잦아들었다. 다시금 서른의 무게가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코파카바나 해변에 앉아 밤을 꼬박 새웠다.

바다는 수 만 명이 버리고 간 부유물로 가득했다. 이른 새벽 출렁이는 파도에 부유물이 춤을 춘다. 앞선 파도가 해안가로 가져다 놓은 부유물을 뒤이은 파도가 다시 바다로 쓸어간다.

공자는 서른을 일컬어 '이립'이라 했다.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란다. 그의 바람과 달리 서른을 맞은 나의 마음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코파카바나 해변을 떠도는 부유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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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희선 2009.04.17 14: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ㅎㅎ 고약한 녀석이죠
    아무리 생각안하려고 해도 조금 있으면 이녀석이 거울속에 그대로 보이고.. 체력도.. 열정도..
    근데 걱정마 그게 인간이고 우리는 조금씩 관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
    좀 천천히 가자

  2. Favicon of http://go.idomin.com BlogIcon 파비 2009.04.17 2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른! 그 나이에!! 정말 성공하신 거에요. 부럽군요. 그 젊음이... 그리고 그 용기와 패기!!! 세상을 다 담고도 앞으로 더 담을 넓은 가슴!!!!
    물론 저도 아직 젊긴 합니다만. ㅎㅎ

    • 탄타로스 2009.04.23 0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자주 들러주셔서 넘넘넘 감사합니다.^^ 파비님 댓글 덕에 힘내서 여행했어요.

  3. 2009.04.18 18: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jigubon.idomin.com BlogIcon 탄타로스 2009.04.23 01: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우선 모자라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 계신 인도를 저 역시 여행 초반에 2개월 정도 여행했어요. 뭐랄까...참 규정짓기 힘든 곳이 인도라는 생각이 들어요. 전 일주일 전에 한국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제가 님을 응원할게요. 필요하신 정보 문의 주시면, 최선을 다해 답변드릴게요.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동갑내기 친구-

  4. 사일라. 2009.04.18 1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은 이 여행으로 그 친구들과는 비할바가 없는 소중한 경험을 얻을거에요.
    먼저 대리가 되었다고 해서 가정을 꾸렸다고 해서..그들이 앞서나가는 것이 아니죠
    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지금 현명한 행동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

  5. 루나 2009.04.22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나이 서른... 결혼까지 하고 회사에서는 대리이지만 마음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답니다. 많은 생각과 열정을 가진 님이 오히려 부럽네요.^^

    • 탄타로스 2009.04.23 0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갑이네요^^친구~~막상 한국오니까 걱정이 많아요. 우리 힘냅시당. 80 화이링~~

  6. 김효진 2009.04.23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쩌다 이 블로그에 글을 읽게 됐는데요. 다른 사람의 여행이지만 읽기만 해도 정말 좋네요.
    전 서른들이랑 친구인데 아직 서른은 아닌데요. 지난해 여행을 가려다 여러가지 이유로 여행을
    결국 못갔어요. 여기 블로그 글들을 잘 메모해 뒀다가 제가 여행갈 때 꼭 참고하고 싶네요.
    혼자서 여행할 수 있는 그런 시간, 정말 좋은 시간인 것 같아요!

  7. Favicon of http://blog.daum.net/crazycatj BlogIcon 냐옹양냥 2009.04.23 1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부터 10여년 전, 제가 20대에.. 지구의 반바퀴를 돌았지만 남미는 차마 가지 못했습니다.
    정말 가보고 싶긴 했지만...
    들려오는 소문이 하도 흉흉하여, 불안해서 결국 발걸음을 떼지 못했어요.

    결국 포기하게 만들었던 게 미국에서 단체로 여행간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단체로 윤간을 당했다는 소문이 여행자들 사이에 돌았더랬죠. 남미는 그게 제일 무서웠어요... (사실인지는 모르죠. 여행길에 쫓기다 보면 뉴스나 신문을 제대로 들여다보기 힘들었거든요;)

    부럽습니다...

    이럴 땐, 남자들이 참 부러워요... ^^;;;

    좋은 시간 되세요. 친구도 많이 사귀시고요~~~

  8.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난 태양은 천지간 만물을 녹일 기세다. 머리 꼭대기에 똬리를 튼 볕 앞에 자외선 차단제 따윈 조소 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반나절이 못돼 피부 곳곳에 붉은 반점이 돋더니, 생채기에 소금을 댄 듯 따끔거린다.

사람뿐이랴. 철옹성처럼 우뚝 선 건물도, 강철처럼 단단한 아스팔트 도로도 대자연의 공세에 무력하게 아지랑이 숨만 토해낸다.

무엇이 페루 하늘의 태양을 진노하게 만들었을까?

우루밤바 강을 따라 형성된 정글을 헤치고, 다시 한참 동안 험준한 산맥을 오르고서야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천연의 요새는 스페인의 파괴를 피해 그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었다.


페루는 태양 신의 후손인 잉카족이 세운 나라다. 13세기 말 페루에서 제국의 초석을 다진 잉카인은 선진문명을 바탕으로 주변 부족을 통합해 갔다. 200년 동안 발전을 거듭한 끝에 잉카제국은 페루를 중심으로 지금의 에콰도르·아르헨티나·칠레에 이르는 너른 땅을 다스린다. 짧은 시간에 남미 최대의 문명으로 거듭난 것이다.

그들은 제국 곳곳에 태양신을 섬기는 신전을 짓고, 제물을 바쳤다. 정성스레 쌓은 석조 건물에 태양 문양을 수놓고, 제단을 만들어 기도를 올렸다.

태양신은 화답했다. 따뜻한 볕을 선사하는가 하면, 때론 비구름 뒤로 물러나 시원한 빗줄기를 내렸다. 곡식은 풍부했고, 가축은 살이 올랐다. 모든 게 평화로웠다. 제국은 영원할 것처럼 보였다.

16세기 초반 한 무리의 이방인이 제국을 찾았다. 잉카인은 그들을 환대했다. 태양신의 후손들은 하얀 피부에 가려진 이방인의 속내를 간파하지 못했다.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침략군은 그렇게 손쉽게 제국을 손아귀에 넣었다.

태양신을 섬기던 신전이 허물어지고, 성당이 지어졌다. 해체된 제단은 침략군 막사의 돌담으로 전락했다. 뒤늦게 제국을 지키려 봉기한 잉카인은 무시무시한 살상무기 앞에 맥없이 스러져갔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본 태양신의 분노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잉카문명의 발상지 '티티카카' 호수에서, 최후의 보루 '마추픽추'에 이르는 긴 여정을 통해 나는 하나의 문명이 탄생하고, 발전하고 결국엔 한낱 박물관의 소장품으로 전락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잔혹한 인간사를 보고 있자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푸노의 티티카카는 해발 4000m 상당에 자리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다. 잉카의 전설에 따르면 하늘과 맞닿은 이 호수에 태양신의 아들인 망코 카파크가 내려와 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강림 전설'에 걸맞게 티티카카는 신비감이 짙게 깔린 호수였다. 하늘을 담은 호수 위에는 갈대의 일종인 토토라로 만든 인공섬이 점점이 떠있다.

잉카 전설에 따라 태양신의 아들이 내려왔다는 푸노의 티티카카 호수. 갈대로 만든 집과 배가 인상적이다.


갈대를 꺾어 만든 보금자리에서 잉카의 후예들은 물결을 따라 유유자적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와 호수 위를 거닐던 태양신의 아들 망코 카파크를 보는 듯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하늘 호수'는 사람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한없이 머물고 싶은 마음을 추스르고 쿠스코로 향했다. 잉카 문명의 정수로 꼽히는 마추픽추를 보기 위해서였다.

'늙은 봉우리'란 뜻의 마추픽추는 '공중도시' 혹은 '잃어버린 도시'로 불린다. 쿠스코에서 우루밤바 강을 따라 한참을 내려간 정글지대. 이곳에서 다시 험한 산맥을 거슬러 올라간 곳에 마추픽추가 자리하고 있다.

표고 2400m의 마추픽추는 잉카문명이 끝을 맞고 400년이 지난 1911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잉카 최후의 도시답게 첩첩산중에 꼭꼭 숨겨진 도시는 스페인의 야만적인 파괴를 피해 오롯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기차와 버스, 도보로 이어진 힘든 여정 끝에 마추픽추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의 감동은 쉬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찼다. 험한 정글을 헤치고 1만 명을 수용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도시를 건설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칼 한 자루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지어진 건축물은 가히 잉카문명의 정수라 불릴 만했다.

페루에서 나는 잉카문명의 '시작'과 '끝'을 보았다. 단순히 '보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잠깐의 시간 동안에 명치끝이 아려왔다. 여정 8개월 동안 힘의 논리에 스러져간 문명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탓이다.

아시아의 티베탄과 위구르족이, 오세아니아의 어보리진과 마오리족이, 북·중미의 마야문명과 아스텍문명이 그랬다. 그리고 남미의 잉카문명까지.

우위를 점한 자들의 논리는 판에 박은 듯 똑같다. 그들은 언제나 파괴와 살육의 이유로 문명의 미개함을 든다. 자신들의 생활양식을 바탕으로 제멋대로 상대 문명을 재단한 후 개화라는 미명 아래 수백 년간 이어온 소중한 문화유산을 짓밟는다. 잔혹한 파시즘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패권주의의 망령은 지금도 세계 곳곳을 떠돌고 있다. 스러져간 문명을 보며 그저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이다.

생각 한 편에 자리한 신영복 선생의 글귀가 도무지 지워지질 않는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돼 지키자고. 강자의 지배 논리에 맞서 공존과 평화의 원리를 지키고, 자본의 논리에 맞서 인간의 논리를 지키자고."

과연 우리는 숲이 돼 지킬 수 있을까? 깜냥이 부족한 여행자에겐 참으로 어려운 담론이다.


[지구별 단상]내 머리가 하늘에 닿았을까?

티티카카는 세상에서 제일 높은 호수다. 해발 4000m의 고지대에 자리한 만큼 어디가 호수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조차 하기 힘들다.

가만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구름이 코앞에 있다. 손을 뻗으면 이내 닿을 듯이 가깝다.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유유자적 호수 위를 떠돌자니 엉뚱한 상상이 든다.

'이대로 펄쩍 뛰면 머리가 하늘에 닿지나 않을까? 정수리를 쿵하고 찧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지. 까짓것 뛰어 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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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ogguli.net BlogIcon 도꾸리 2009.04.17 1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멋진 곳을 여행하셨군요~
    부럽습니다~

  2. 2009.04.17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boksuni.tistory.com BlogIcon 복돌이 2009.04.17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완전 부럽네요^^

    세상의 하늘을 보고 오셨네요^^

    저도...꿈만 꾸어 봤는데^^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4. 2009.04.20 15: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저..저기요... 2009.04.21 0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과는 별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마추픽추에는 화장실이 없고 취사한 흔적도 없으며 우기 외에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물을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물론 지금은 수도관을 연결했지만...) 도시 내에 사람이 살았다고 하기에 의문점이 많아서 사실상 학계에서도 인구가 거주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6. 조미영 2010.10.12 1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보구 가요..감사합니다. 너무 좋으네요.

  7.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구 자전축과 직각을 이루는 위도 0도의 선', 적도다.

역시 딱딱한 용어를 사용한 정의는 잘 와 닿지 않는다. 쉽게 설명해 보자.

스케치북에 지구를 그린 후 이를 반으로 접을 때 생기는 종이 자국, 지구본의 어느 한 가운데 굵은 펜을 갖다 대고 빙그르르 돌릴 때 그려지는 선, 지구 정중앙을 가르는 선이 적도란 얘기다.

다른 남미 국가에 비해 원주민 비율이 높은 에콰도르. 하지만 패권주의의 희생양이 된 원주민의 삶은 고달프다. 키토 구시가지에서 전통춤을 추는 여인네의 치맛자락이 구슬프게 휘날린다.

스페인어로 에콰도르(Equador)는 적도를 뜻한다. 남미 북서부의 작은 나라 에콰도르는 국명에서 알 수 있듯 적도에 자리하고 있다.

'위도0도 적도에 위치한 그곳은 아마 덜함과 더함이 없는 평등함을 간직하고 있겠지?'

적도는 치우침이 없다. 북극점과 남극점 사이에서 지구를 정확히 두 개의 반구로 나눈다. 위도 0도…, 덜함과 더함이 없는 숫자 0처럼 적도는 공명정대한 선이다.

스페인 풍의 건물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에콰도르. 사진은 키토 구시가지의 대성당.


그래서일까. 에콰도르에서 불평등을 감지하고서,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종·횡을 공평하게 가르는 적도국이건만, 그 속에 내재된 민중들의 삶은 결코 공평하지 않았다. 마치 굳게 믿던 친구에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 도착했을 때 생경한 풍경이 눈을 사로잡았다. 물론 도시의 겉모습은 3개월 동안 보아온 다른 남미 국가와 다를 바 없었다. 스페인 건축 양식을 그대로 옮겨 놓은 대성당과 국회의사당, 유럽풍 광장과 골목 등 키토는 눈에 익은 전형적인 콜로니얼(식민) 도시였다.

내가 낯설게 느낀 건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지금껏 칠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 남미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동안 에콰도르에서처럼 많은 수의 원주민을 본 적이 없다. 백인 비율이 높은 칠레와 아르헨티나에선 이곳이 유럽이 아닌가하는 착각마저 들었더랬다.

행상 원주민의 모습에선 고단함이 묻어난다.

에콰도르는 달랐다. 순수 원주민의 비율이 25%로, 국민 4명 중 1명이 잉카의 후예였다.

거리 곳곳에서 전통 복장을 입고, 고유 언어인 케추아어로 얘기하는 원주민을 보니 가슴이 설렜다.

오래지 않아 설렘은 안타까움으로 변했다. 원주민의 고단한 삶을 오롯이 느꼈기 때문이다. 볕 좋은 날 구시가지의 한 광장. 망중한을 즐기는 동안 나는 수십 명의 원주민과 마주했다.

아이를 들쳐 업은 채 필사적으로 수제품을 펼쳐놓던 아낙, 먼지가 뽀얗게 쌓인 엠빠나다(남미 고유의 음식, 만두와 비슷함)를 들이밀던 남자, 새까만 고사리 손을 내밀며 구걸하던 아이들, 모두 남루한 행색의 원주민이다.

아낙은 30분이 지나도록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번번이 거절하기 미안해 펼쳐 놓은 물건을 집어 드는 순간, 여기저기서 다른 행상들이 몰려들었다. 제 것을 사라고 아우성치는 통에 결국 아낙의 물건을 사주지 못했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등에 업힌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하지만 가난과 싸우고 있는 잉카 후예들의 삶은 결코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늦은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데 문 앞이 소란스럽다. 식당 주인이 한 사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듯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운 사내가 초콜릿이 가득 담긴 광주리를 들고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주인이 막아섰다. 손님들에게 초콜릿을 팔려다 문전박대당한 이 사내 역시 원주민이다.

16세기,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지휘하는 침략군이 잉카문명을 집어 삼킨 이래, 잉카의 후예들은 지배자의 핍박과 억압 속에 숨죽여 살아야 했다. 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원주민은 고단한 삶을 대물림하고 있다. 인간사는 약자에게 한없이 가혹하다.


에콰도르에서는 계란이 선다. 과학에 문외한인지라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중력과 관계가 있단다. 아무튼 많은 여행자들이 적도가 지나는 산안토니오 마을을 찾아 계란을 세운다. 심지어는 못 머리 위에서도 계란이 선다.

원주민은 계란과 닮았다. 그들은 쉽게 깨지고 상처 받는다. 식단의 언저리에 오르는 계란처럼 원주민의 삶도 늘 주변부에서 겉돈다.

좀처럼 세우기 힘든 계란이 적도에서 섰다. 잉카의 후손들 역시 언젠가는 우뚝 서리라 믿는다. 아니 그러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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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흠... 2009.04.17 0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어디 살짝 놀러갔다와서 인터넷에 글적거리지 말고 아에 가서 살며 현지인들과 평등을 위한 시위라도 하는게 어떨까???

  2. 위에 님... 2009.04.17 0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위에 님은 사회 불합리 볼때마다 다 맞서 싸우시나요?
    느낀 점이나 생각을 쓴 것을 "글적거린다"라고 치부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네요.

  3. 체스터 2009.04.17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_-..못도 모르면서 끄적거린다니..

    그러는넌 한게 뭐가 있는데? 니가 직접 해보지 그러냐...?

  4. 주현이아빠 2009.04.17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불평등이란 너무 광범위하죠. 너무나 많이있고 거의 다 힘없는자들이 불평등을 당하는것은 그곳이나 이곳이나 비슷하네요.
    그러나 외국까지 가서 불평등을 비교는것보다 가까이에 있는 독립군 후손과 친일후손을 비교했으면 더 실감이 나겠네요. 좋은글 부탁할께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5. 잠많은넘 2009.04.20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원주민들이나 옛 것을 지켜나가는 소수민족들은
    선진국이나 몇몇나라 빼고는 어렵게 사는거 같습니다.

    아 우리나라도 아직 갈길이 멀었지만 더 어렵고 불평등한
    나라도 많다는게 씁쓸합니다.

    다 같이 잘 사는 세계는 동화에서나 나올법한 건가 하는
    생각이 글을 읽으면 문득 났습니다.

  6. 북반부 어딘가 2009.04.21 0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참 잘쓰시네요. 금년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을 지구별 누비기님의 여행기를 읽으며 다시한번 되새깁니다. Colonialism, Imperialism, Neocolonialism 등으로 참 북쪽에 있는 많은 나라들이 남쪽 나라들을 많이도 착취했죠... 지금도 이런 저런 Multi-National Corporation들로 착취하고 있는 이런 상황.. 참 바꾸기 힘든거 같아요. 지금 이렇게 전기를 먹어가는 제 컴퓨터도 남쪽 나라 어딘가에서 착취한 금속과 광물로 만들어졌겠죠.. 흠..... 어떻하면 이러한 불공평함을 고칠수 있을까 고민하는거 그만둔지 좀 됬는데 님 의 글을 읽으니 다시 새록새록 생각나네요.. 에구..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러한 사람들과 나라들에게 주는 삶을 살아야 겠어요...

  7. ㅁㅁㅁ 2010.08.09 17: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도라서 평등함을 간직하고 있을거다? 애초에 말이 안되네요. 적도랑 평등한거랑 무슨상관인지.. '경제저격수의 고백'이라는 책을읽어보세요. 에콰도르가 왜 가난한지. 그냥 겉만 훓는다고 그 나라를 아는건 아니죠. 눈으로 보이는게 다가 아니니까.

  8.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정한 상황에서 악재가 반복될 때 이를 징크스라 한다. '국경 징크스'…, 거듭 찾아드는 불운의 사태를 나는 이렇게 부르기로 했다.

나라 사이 경계가 곧 국경이다. 한 대륙 안에 여러 나라가 더부살이하는 만큼 남미에는 국경이 참 많다. 남미 지도를 펼쳐놓고 국경을 표시하면, 요리조리 그려진 빗금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베네수엘라에서 콜롬비아를 거쳐, 에콰도르 국경에 도착하기까지 험난한 여정이 이어졌다. '국경 징크스'는 여행 7개월 만에 찾아온 최대 난적이다.



대개 국경 폭은 수백 미터를 넘지 않는다. 걸어서 5분이면 건널 수 있는 짧은 거리지만,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내겐 망망대해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한 짧은 거리…돈에 눈먼 '부패 경찰'과 실랑이
저렴한 요금에 현혹, 버스 잘못 타…거액 벌금에 복잡한 행정절차까지

베네수엘라에서 콜롬비아로 향하는 길목. 국경을 앞두고 느닷없이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탓이다. 수개월 전 네팔·인도 국경에서 사기를 당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땐 그저 운이 없었을 뿐이지, 설마 또 그런 일이 생기겠어?'

스스로 위로하며 국경행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베네수엘라 경찰 두 명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 명은 땅딸막한 키에 바싹 말랐고, 다른 이는 지나치게 체격이 컸다. 고목과 매미가 떠올랐다. 썩 좋은 인상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여권을 보여 달라고 했다. 으레 하는 검문이겠거니 하고 요구에 응했다. 이어 짐을 풀란다. 1년 치 생필품으로 가득 찬 배낭을 풀어헤치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양말 한 켤레, 팬티 한 장, 칫솔, 치약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통에 슬쩍 부아가 치밀었다.

'거참! 직업 정신 한 번 투철한 양반들이군.'

겨우 짐을 추스르고 돌아서는 찰나 '매미' 쪽이 나를 붙잡는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우니 다시 짐 검사를 해야겠단다.

황당함과 분노가 밀려왔다. 쏘아 보는 내게 '고목' 쪽이 지폐 한 장을 꺼내 흔들었다. 통과하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의미였다.

여행 전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다. 베네수엘라에서는 경찰의 부패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 검문을 빌미로 여행자의 돈을 갈취한다는 소문이었다.

'아무렴, 그래도 경찰인데'라고 생각했던 믿음이 순식간에 허물어졌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일을 당한 이들이 워낙 많다 보니 여행자 사이에선 '베네수엘라 경찰 퇴치법'이 전해지고 있었다. 나는 수첩과 펜을 꺼내 더듬거리는 스페인어로 물었다.

"당신들 이름이 뭐야? 이거 불법이잖아. 한국 대사관에 연락할 거야."

제복에 새겨진 이름을 적자, '고목'과 '매미'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기세가 오른 나는 과장된 몸짓과 말투로 그들을 몰아쳤다. 효과가 있었다. 귀엣말을 주고받더니 두 경찰은 슬그머니 꽁지를 내뺐다.

당시엔 몰랐다. 그 일이 '국경 징크스'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것을.

새벽녘에 베네수엘라 국경마을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했다. 목적지인 콜롬비아 국경마을 쿠쿠타가 지척에 있다.

이제 두 마을 사이에 자리한 양국의 출입국 사무소만 들르면, 무사히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마을에서 출입국 사무소까지 이동하려고 여행자 대부분은 택시를 탄다. 서둘러 택시를 잡으려는데, 큼지막한 푯말을 단 낡은 버스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푯말에는 '출입국 사무소행'이라고 적혀 있었다. 택시비 삼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저렴한 가격이 구미를 당겼다.

서둘러 차에 올랐다. 버스 안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나를 제외하곤 모두 현지인이었다.

한 시간가량을 달리던 차가 길 한 편에 정차하더니 시동을 껐다. 출입국 사무소라 생각하고 내렸건만, 어째 분위기가 이상했다. 국경의 삼엄함과 엄숙함 대신 저잣거리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행인에게 묻자 경악할 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콜롬비아란다.

버스가 출입국 사무소도 들르지 않고 베네수엘라에서 곧장 콜롬비아로 넘어온 것이다. 비자에 해당하는 출입국 도장을 받지 못한 나는 졸지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됐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생업을 위해 양국을 오가는 현지인은 임의로 국경을 넘나드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하필 내가 탄 버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금전적·정신적·육체적·시간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자리한 이민국을 찾아가 거금의 벌금을 물고, 수일 동안 복잡한 행정절차에 시달리는 동안 몸과 마음은 피폐해졌다.

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 그것도 한밤중에. 일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국경 지역을 넘어가던 일부 차량의 유리창이 파손됐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로에 발이 묶인 채 걱정스레 파손된 차량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비자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나는 콜롬비아를 떠나 에콰도르로 향했다. 예상치 못한 일에 시간을 허비한 탓도 있지만, 그보단 새로운 나라에서 기분 전환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소박한 바람은 수포로 돌아갔다. '국경 징크스'가 또다시 발목을 잡은 것.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간 국경 근처에서 나는 사흘 동안 발이 묶인 채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폭우로 좁은 산길이 무너져 버스 운행이 중단된 탓이다.

사흘 내내 터미널에서 배수진을 친 끝에 겨우 에콰도르행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한숨 돌리나 싶었건만, '국경 징크스'는 마지막까지 제 임무에 충실하다.

이번엔 한밤중 총격전이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간 국경지대인 루미차카 지역을 한 시간 남짓 남겨두고 국경으로 향하던 모든 차량이 멈춰 섰다.

수십 대의 군·경 차량이 사이렌을 울려대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예전보단 나아졌다지만 아직도 콜롬비아 국경 지역에선 반군 게릴라가 출몰하고 있다. 앞서 국경으로 떠났던 차량 중 일부가 유리창이 깨진 채 돌아오자 사람들의 술렁임은 더해갔다.

결국, 도로에서 새우잠을 잔 채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어슴푸레 새벽이 오자, 그제야 차량운행이 재개됐다. 에콰도르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날은 밝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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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articles.so BlogIcon ezine articles 2011.08.02 0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읽기 실제로 매우 흥미로운 기사 주셔서 감사합니다.

문득 사무치게 책이 그리웠다. 7개월 동안 활자를 접하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그보단 깨달음을 향한 간절함이 더 컸다.

스스로 말하기 겸연쩍지만, 나는 독서를 좋아한다. 취미를 물어오면 주저 없이 책 읽기라고 답하곤 한다. 신에게 밉보여 끝없이 갈증을 느껴야 하는 그리스신화 속 '탄타로스'처럼 나는 항상 배움에 목말라 있다. 독서를 통해 책의 정수를 빨아들일 때면, 한 여름 논바닥처럼 갈라진 내면의 대지가 촉촉이 젖어 옴을 느낀다. 이런 희열 때문에 습관처럼 책을 읽었더랬다.

칼라파테에서 5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칠레령 토레스델파이네. 산은 늘 한 가득 깨달음을 안겨준다.



바다·산·빙하, 그 안에서의 깨달음
짜릿한 희열 안고 또 새로운 곳으로

입에 가시가 돋는 경지까진 오르지 못했지만, 어쨌든 반년이 넘도록 책과 결별한 내게 금단현상이 찾아왔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오가다 만나는 한국 여행객들에게 책을 구걸해 봤지만 허사였다. 어느 나라 건 서점은 있기 마련, 허나 매번 높다란 언어장벽에 막히기 일쑤였다. 무미건조한 가이드북을 몇 번씩 곱씹지만, 그럴수록 독서에 대한 향수만 짙어갔다.

파타고니아의 칼라파테는 이런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준 고마운 도시다. 그곳에서 책을 구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다만 나는 칼라파테에서 흔히들 말하는 책이란 텍스트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독서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파타고니아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지녔다. 동서로 대서양과 태평양이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있고, 내부로는 깎아지른 기암절벽의 안데스 산맥, 광활한 팜파스 지형, 거울처럼 맑은 호수, 신비로운 빙하가 조화를 이룬다. 자연의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나는 파타고니아 중심부인 칼라파테에서 자연을 벗삼아 낚시를 하고 산을 올랐다. 그리고 그 속에서 미처 저술되지 못한 수십 권의 책을 읽고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곧 살아 숨 쉬는 생생한 독서였다.

칼라파테는 송어 낚시로 유명하다. 송어를 잡기 위해선 떡밥이나 지렁이 대신 루어라는 모형을 사용한다. 릴 낚시대에 송어를 자극할 만한 먹이 모양의 루어를 달고, 이를 수면을 향해 멀찌감치 던진다. 이후 줄을 감아 주면 루어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물속을 유영하며 딸려오는데, 송어가 이를 먹이로 착각하고 덥석 문다. 이때 줄을 감는 타이밍과 속도가 중요하다. 너무 늦게 감으면 수면 깊숙이 가라앉은 루어가 물풀이나 바위에 걸려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되고, 결국 줄을 끊어야 한다. 반대로 조급함에 빨리 감으면 송어가 루어를 발견하지 못해 허탕을 치게 된다.

칼라파테에서 송어를 낚던 호수다. 어디가 수면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호수는 맑고 깨끗하다.


루어가 적당한 위치에 침잠했을 때 알맞은 속도로 줄을 감아야 한다. 즉, 완급조절이 송어를 낚는 비결인 것이다. 생전 처음 루어낚시를 접해본 나는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겨우 이를 터득했다.

우리네 삶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본다. 돌이켜 보면 타이밍과 속도, 완급조절에 실패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쳤을까? '뭐든 때가 있다'는 진리를 무시한 채, 늑장을 부리는 동안 수많은 기회가 스쳐 지나갔다. 뒤늦게 줄을 감아본들 소중한 가치들은 이미 수면 아래 있는 바위에 걸려 꿈적도 하지 않는다.

눈앞의 작은 이익에 정신이 팔려 섣불리 행동했다가 낭패를 본 경우도 수두룩하다. 조급하게 줄을 감게 되면 송어는 절대 루어를 물지 않는 이치다. 안타깝게도 '깨달음'은 늘 '후회'보다 반 박자 늦게 찾아온다.

낚시 뿐 아니라 명산 토레스델파이네를 오르는 동안에도, 모레노 빙하를 탐방하는 동안에도 나는 독서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

"태초부터 천지간에 책이 없었던 적은 없다. 동틀 무렵 구름과 바다 사이를 살펴보면 언제나 수억만 권의 문자가 있었다"던 옛 성현의 말씀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책 속의 지식을 흡수하듯, 세계와 만나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이 곧 독서란 얘기다.

나는 어제도 책을 읽었고, 오늘도 책을 읽는 중이며, 내일도 책을 읽을 것이다.

아름답고도 슬픈 사연을 가진 모레노 빙하는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지구별 단상]'아내, 그리고 남편' 빙하 속 시린 사연   
 
2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빙하를 찾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우두커니 앉아 빙하를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그 눈빛이 너무 슬퍼 보여, 누구도 섣불리 말을 걸지 못했다.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매일 여기서 뭘 하는 거요?"

그가 대답했다.

"아내를 기다린다오."

"당신 아내가 어디 있는데, 이렇게 빙하를 찾아오는 거요?"

남자는 손끝으로 빙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아내는 저 빙하 속에 있소."

20년 전 아내와 함께 칼라파테로 신혼여행을 온 이 서양인의 운명은 가혹했다. 빙하 트레킹을 하던 도중 아내가 무너진 빙벽 사이로 떨어져 실종된 것이다. 그는 절규하며 아내의 시신이라도 찾겠다고 다짐했다. 사람들은 그더러 포기하라고 했다. 철옹성 같은 빙하가 삼킨 이상, 시신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내를 기다렸다. 고국에 두고 온 모든 것을 포기하고 칼라파테에 머물며 20년을 한 결 같이 빙하를 찾았다.

기적이 일어났다. 빙하 붕괴로 떨어져 나와 표류하던 유빙 속에서 그녀의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꽁꽁 언 아내를 안은 채 그는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 이야기는 칼라파테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모레노 빙하가 시리도록 슬프고 아름다운 까닭이다.

Posted by 탄타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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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우수아이아에 왔다.

세계의 끝이라…, 어감이 참 멋지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우수아이아는 '지구상에서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의 끝'이라 해야 옳다. 바다 너머 남극이 있기에 우수아이아가 세계의 끝은 아니란 얘기다. 하지만 덕지덕지 토를 단 정의는 운치가 없다. 세계의 끝, 얼마나 간결하고 낭만적인가.

우수아이아 남단에 위치한 우체국. 세계의 끝자락에서 보내는 편지 한통이 운치를 더한다.

우수아이아는 파타고니아 최남단에 자리한 작은 도시다. 파타고니아는 아르헨티나와 칠레 두 나라의 남쪽 지역으로, 세계에서 남극과 가장 가까운 대륙이다. 고로 '우수아이아=세계의 끝'이란 등식이 성립한다.

여정을 앞두고 우수아이아에 대해 여러 가지 상상을 했다. 도대체 세계의 끝은 어떻게 생겼을까? 사람은 살까? 듣도 보도 못한 괴 생명체가 있진 않을까? 날씨가 혹독한 거 아닐까? 하늘과 땅이 맞닿아 있는 거 아닐까? 사막이나 황무지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지지 않을까? 머릿속을 떠다니는 생각들은 하나같이 엉뚱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아마도 오래전에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탓이리라. 다소 염세적인 이 작가는 자신의 저서에서 세계의 끝을 불완전한 곳으로 묘사해 놓았다. 그림자를 잃은 사람들, 일각수(뿔 달린 말, 유니콘)…, 뭐 이런 요소들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계의 끝을 달리는 녹색·빨간색의 미니기차가 앙증맞기 그지 없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은 설렘으로 이어졌다. 우수아이아행 비행기를 손꼽아 기다린 끝에 드디어 신비의 땅에 발을 디뎠다.

애석하게도 상상의 날개는 공항 청사를 나서는 순간 퍼덕거리던 날갯짓을 멈췄다. 세계의 끝은 그저 평화롭고 조용한 동네였다. 살짝 부아가 치밀어 생떼를 부렸다.

"이 봐요 하루키 씨! 세계의 끝이라고 뭐 특별할 게 없잖아요. 그냥 사람 사는 동네군요. 뿔 달린 말도,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도 없단 말이에요."

이런저런 몽상에 빠진 채 동행을 기다렸다. 우수아이아로 오기 직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내 또래의 한국인 여행객을 만났는데, 목적지가 같아 함께 여행하기로 했던 것. 비행시간이 엇갈린 탓에 먼저 도착한 나는 공항 로비를 서성이고 있었다.

이탈리아 친구 엘리자와 한국인 동행 재현. 옷깃이 스친 연으로 동반자가 됐다. 세계의 끝과 어울리는 기묘한 만남이다.

그때, 누군가 어깨를 톡톡 쳤다. 돌아보니 집 채 만 한 배낭을 두른 서양 여자 애가 웃으며 말을 걸었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녀는 함께 여행할 것을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나와 재현, 엘리자, 셋의 동행이 시작됐다. 일면식도 없던 이들과의 기묘한 만남, 세계의 끝과 딱 맞아떨어지는 설정이다.

마을은 고즈넉했다. 바람 한 점 없는 해안을 따라 다닥다닥 붙은 여염집이 촌락을 이루고 있었다. 거울처럼 투명한 호수는 하늘과 산, 배를 수면 위에 담아냈다. 소싯적 미술시간에 배웠던 '데칼코마니' 같다. 하얀 도화지에 물감을 칠하고 이를 반으로 접었다 펴면 똑같은 모양이 나오던.

머물던 숙소에서 솔깃한 얘기를 들었다. 한 히피 청년이 말하길 우수아이아에서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산파블로'라는 곶이 있는데, 그 풍광이 예술이란다. 교통편이 마땅찮아 여행객의 발길이 뜸한 곳이기도 하단다.